[단독] 신원식 중대장 시절 '부대원 사망' 조작 결론
[박현광, 김도균 기자]
▲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3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하는 모습. |
ⓒ 남소연 |
합동참모차장을 지낸 예비역 육군 중장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비례대표)이 과거 중대장 시절 훈련 중 '잘못 발사된' 포탄을 맞고 사망한 부대원의 사인을 '불발탄을 밟은 것'으로 조작·은폐했던 정황이 드러났다.
당시 부대의 소대장은 "(사건 조작·은폐와 관련한) 모든 것은 중대장(신원식)이 처리했다"고 증언했다. 현재 국회 국방위원회 국민의힘 간사로 차기 국방부 장관 물망에 올라있는 신 의원은 <오마이뉴스>에 '군사망위 조사결과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마이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1985년 10월 24일 신 의원이 중대장으로 있던 8사단 21연대 2대대 5중대에선 공지합동훈련(작전명 콥 스트라이크) 도중 A 이병(사망 당시 20세)이 '포탄 폭발 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부대는 A 이병이 유기돼 있던 불발탄(M203 유탄발사기 40mm 고폭탄)을 밟아 사망한 것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당시 사고를 목격했던 부대원 요청으로 최근 재조사를 실시한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아래 군사망위) 결정에 따르면, A 이병은 같은 중대 화기소대에서 쏜 60mm 박격포 포탄을 맞고 사망한 걸로 밝혀졌다. 당시 중대장이었던 신 의원을 포함한 부대 지휘관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사건을 조작·은폐했던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군사망위는 결정문에서 "부대원들의 공통된 진술 등을 고려하면, 망인의 사망은 훈련 과정에서 불발탄을 밟아서 사망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사거리 측정 없이 급격하게 사격된 박격포 포탄에 의해 사망했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망인의 소속 부대 지휘관과 간부들은 망인의 사인을 불발탄을 밟아 사망한 것으로 왜곡·조작함으로써 사고의 지휘 책임을 회피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당시 부대원들 생생한 진술... "망인의 발 옆에 포탄 떨어진 것 봤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군사망위 결정문에 따르면, 당시 신 의원이 중대장으로 있던 5중대를 포함한 2대대 소속 부대는 1985년 10월 21~24일 나흘간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에 위치한 승진훈련장에서 한미 합동으로 이뤄지는 공지합동훈련을 실시했다.
사고는 훈련 마지막 날인 24일 오후 3시 35분께 고지 점령 훈련 도중 발생했다. 해당 훈련은 고지의 7~8부 능선에 공중 지원 폭격과 후방 화기소대의 박격포 포탄 투하 이후, 1~2부 능선에서 대기하던 돌격조 보병이 진격해 고지를 탈환하는 훈련이었다.
이날 사망한 A 이병은 5중대 1소대 소속으로 부대 선임들과 4인 1조 돌격조를 이뤄 1~2부 능선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7~8부 능선에 쏘는 걸로 예정됐던 화기소대의 60mm 박격포 포탄은 A 이병 부근에 떨어졌다.
당시 A 이병 후방 10m 부근에 있었던 1소대 소속 임아무개 상병은 "자리를 잡기 위한 찰나에 내 머리 위로 포탄이 날아가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망인의 앞에 거의 근접해서 포탄이 떨어졌다"며 "훈련장이 오르막길이다 보니 뒤쪽에 있는 내 위치에서 앞쪽이 훤히 보였다"고 진술했다.
A 이병과 4~5m 떨어진 지점에 있었던 이아무개 상병은 "점령해야 할 고지의 목표지점을 바라보며 능선 대기 장소에 소총을 들고 낮은 자세 상태로 대기하고 있었다"며 "쾅 소리와 동시에 포탄이 망인의 발 옆으로 떨어진 것을 봤다"고 설명했다.
박격포 한 번도 다룬 적 없는 선임하사가 화기소대장으로
이는 군사망위 재조사 결과 박격포 사거리 측정 착오로 발생한 오발 사고로 밝혀졌다. 당시 박격포와 1~2부 능선 돌격조 사이의 거리는 500m 정도. 하지만 박격포 사수에겐 사격 거리 600~700m로 쏘라는 명령이 하달됐다. 통상적으로 60mm 박격포 운용 책임은 중대장에게 있고, 발사 명령은 중대장→화기소대장→포반장→박격포 사수 순으로 하달된다.
당시 박격포 사수였던 박아무개 상병은 "박격포 사거리는 1000m를 넘어야 하는데 사격 전 화기소대장이 약 600~700m 사거리를 불러줬다"며 "내가 '사거리가 너무 짧습니다'라고 보고했지만, 화기소대장이 '이 새끼들이 빨리 쏘라면 쏴'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이날 훈련에 참여한 화기소대장은 복무 기간 중 박격포를 단 한 차례도 다뤄본 적 없는 선임하사였다. 당시 기존 화기소대장이 부재한 상황에서 지휘관의 명령으로 훈련에 대체 투입된 것이다.
당시 화기소대장이었던 김아무개 선임하사는 "나는 박격포를 운용해본 적이 없어 관련 지식이나 이해가 전혀 없었는데, 중대장이 고지보다 멀리 한 방 쏘라는 지시만 했을 뿐 어디 지점을 쏘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다"며 "(박격포 위치에서) 공격진이 주둔한 곳은 보이지 않았고, 거리 감각이 없는 상태에서 포반장에게 지시해 목표를 1.5km 정도로 잡고 쐈다"고 진술했다.
당시 중대장이었던 신 의원이 '시계가 확보되지 않았을 때 사격 재촉을 금지하고 박격포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가진 인원을 안전점검관으로 임명한다'는 취지의 < 60mm 박격포 사격 위험성 평가 표준자료 > 안전 기준을 지키지 않았던 것으로, 군사망위는 판단했다.
이같이 무리하게 훈련이 진행된 이유는 당시 부대원의 진술로 추정해볼 수 있다. 당시 2소대 소속 돌격조였던 지아무개 상병은 "개활지 뒤로 높은 곳에 관망대가 있었는데, 상당히 많은 별자리(장성을 지칭)가 보였다. 우리 부대는 5군단 예하이기 때문에 최소 5군단장까지는 왔을 것"이라며 "대대 지휘관들은 훈련을 버벅거리지 않고 계획대로 진행하는 상황을 보여야 하는 압박감이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곧바로 시작된 입단속과 허위 보고
포탄 발사 약 10분 후 훈련은 급히 종료됐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사고의 진상은 바뀌어 있었다. 부대 지휘관들은 훈련장에서 부대로 복귀하기 전 부대원들을 모아둔 상태에서 'A 이병이 불발탄을 밟고 사망했다'고 '입단속'을 시작했다.
1소대 소속 M60 기관총 사수였던 조아무개 병장은 <오마이뉴스>를 만나 "인사계 김아무개 상사가 가장 고참인 내게 후임들 입단속 시키라고 명령했다"며 "사고 이튿날 쯤 신원식 중대장이 직접 부대원을 모아두고 '입 조심하라'고 경고했다"고 회고했다.
A 이병 후방 10m 지점에서 사고를 직접 목격했던 임아무개 상병 역시 "누가 말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전 중대원을 소집한 자리에서 망인이 속한 소대원들 전체를 대상으로 '(망인이) 불발탄을 밟고 사망했다, 그렇게 알아라'고 입단속을 했다"고 기억했다.
당시 중대장이었던 신 의원이 누군가에게 '허위 보고'하는 장면을 본 부대원도 있었다. 사고 당시 망인과 4~5m 떨어진 부근에 있었던 이아무개 상병은 "1소대장 인솔로 장례식장에서 망인의 장례식이 있는 날까지 경호했는데, 중대장 신원식이 미상의 참모에게 사고 경위에 대해 보고하는 것을 목격했다"며 "망인이 박격포 포탄에 의해 사망했는데도, 중대장이 '훈련 중 불발탄을 밟고 사망했다'고 참모에게 보고하는 것에 대해 화가 났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두환 신군부가 집권중이던 1985년 당시 군대에선 누구도 입바른 말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아래는 당시 1소대 M60 부사수였던 김아무개 일병의 진술이다.
"누군가 망인의 이름을 부르자 '이병 OOO'이라고 대답했다. 망인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몸 반쪽이 찢긴 상처를 입은 채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순간적으로 관등성명을 대는 모습을 보고, 당시 엄격한 군기 탓임이 짐작돼 마음이 아팠다."
사고 이후 8사단 헌병대는 당시 부대원 단 2명의 진술(A 이병과 같은 돌격조였던 정아무개 병장, 신원미상의 1명)을 받은 뒤 사건을 종결했다. 헌병대 중요사건보고서엔 '망인이 유기돼 있던 40mm 고폭탄(M203 유탄발사기용)을 우측 발로 밟아 폭발하여 사망한 것'으로 기재됐다. 당시 헌병대 조사를 받았던 정아무개 병장은 "(사망 원인이 달라져 있어서) 헌병대에서 조사 받는 중에 정확한 진술을 할 수가 없었다"며 "(나만) 살아서 미안했던 것밖에 생각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 대북전단 살포 대응에 대해 답변하는 신원식 합참 작전본부장 2014년 10월 13일 당시 신원식 합참 작전본부장(사진 왼쪽)이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합동참모본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따른 북한의 도발에 대한 군의 대응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
ⓒ 유성호 |
신원식 의원은 군사망위 조사에서 "사거리를 잘못 측정하여 1~2부 능선으로 포탄을 쏴 망인이 사망했다는 사실은 있을 수 없다"며 책임을 부인했다.
그는 "저는 사고 당시 OP(관측소) 그 자리에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망 현장이나 환자도 보지 못했다"며 "현병대 수사 결과를 확인하신 대대장님의 설명에 따라 사고 결과를 인지했다. 당시 대대장님이 '망인이 돌격 사격하던 중 M203 불발탄을 밟고 죽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사건의 조작·은폐도 없었고, 만약 있었더라도 본인 책임은 없다는 주장이다.
중대를 지휘하는 중대장이 자신의 중대에서 훈련 중 발생한 사고 정황을 현장에서 인지하지 못했다는 주장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 이는 당시 대대장과 소대장, 부대원들 진술 또한 신 의원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당시 박격포 사수였던 박아무개 상병은 "사고 발생 직후 장소는 정확하지 않은데, 병사들이 모여 있는 상태에서 중대장이 소대장에게 '너 사거리 얼마 줬어'라고 묻고, 소대장이 얼마 줬다고 대답하자 조인트를 깠다"고 기억했다. 신 의원이 당시 오발 사고라는 점을 현장에서 인지했다는 것이다.
'사망 현장이나 환자도 보지 못했다'는 주장도 다른 진술과 배치된다. 사고 당시 현장 지휘소에 있던 김아무개 중령은 군사망위 조사에서 "사고 현장에 갔더니 병사들이 모여 있고 군의관이 지혈하고 있었고 신원식(중대장)도 있었다"며 "불발탄을 밟았다는 (중대장의) 그 말을 믿고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정황상 맞았다"고 진술했다.
사고 원인을 '불발탄 사망'으로 정리한 주체가 당시 중대장인 신 의원이란 진술도 있다. 당시 화기소대장이었던 김아무개 선임하사도 "부대에 복귀하고 나중에 망인이 불발탄을 밟아 사망한 것으로 정리됐다"며 "모든 것은 중대장이 처리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2소대장이었던 강아무개 소위는 "1소대 1분대장이 망인을 업고 개활지로 뛰어 내려가는 중에 중대장과 소대장 간에 어떤 판단이 이뤄진 것이고, 그에 따른 무언가로 조치한 것"이라며 "망인이 불발탄을 밟고 부상했다고 정리한 것도 조치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38년간 은폐... A 이병은 상응하는 보훈도 못받아
군사망위는 조사결과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 1소대장은 자세한 경위를 모르겠다고 하거나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하고 있어 누구의 주도로 사망의 원인이 왜곡·조작됐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면서도 당시 부대 지휘관들의 사인 조작에 따른 책임 회피 사실은 분명히 했다.
결과적으로 A 이병 사망의 진상은 지난 38년 간 철저히 은폐됐고 책임을 져야할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A 이병과 그 유족은 상응하는 보훈·보상도 받지 못했다. A 이병 순직확인증에 따르면, A 이병은 그동안 '공무수행 중 본인의 고의 또는 중과실이 아닌 사고로 사망'했을 때 부여받는 '순직 9항'으로 분류됐다.
군사망위는 "망인의 사망은 부대 단위 공지합동훈련 참가 중 사고에 의해 사망한 것이므로 당시 사망 구분에 따라 '작전 순직'에 해당한다"며 "국방부장관에게 망인의 사망 구분에 관한 사항을 고도의 위험을 무릅쓴 직무수행 중 사망한 사람으로 재심사할 것을 요청하기로 결정한다"고 지난해 12월 국방부에 요청한 상황이다.
신원식 의원 "진상규명 결정, 사실로 인정할 수 없다"
한편 신 의원은 <오마이뉴스>에 군사망위 결정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 의원은 "한순간도 수긍하지 않았으며 사실로 인정할 수 없다"며 "결정문 내용 자체가 당시 군 훈련의 절차, 단계별 병력 편성과 무기 운용, 무기 제원, 정황에 전혀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호 모순된 진술과 검증되지 않은 허위 사실들로 점철돼 있다. '박격포 오폭 사고'로 꿰맞추기 위해서 온갖 무리와 억지를 동원했다"며 "특히 군사망위는 대립되는 진술들에 대해 최소한의 검증과 확인도 없이 입맛대로 취사선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객관성과 공정성에 기초해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야 할 조사관들이 지극히 편파적이고 주관적인 자세로 삼인성호식 사건 조작에 결과적으로 가담 내지 방조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며 "심지어 군사망위 스스로 군 과학수사 전문가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해놓고도 그의 자문의견도 무시한것으로 보인다. 향후 법적조치 등 진실규명을 통한 사필귀정이 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신 의원은 현재 '고 해병대 채수근' 사건 논란으로 교체설이 나오고 있는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후임 국방부 장관으로 거론되고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