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흉상 철거, 홍범도함 이름도 재검토" 불붙은 軍 역사전쟁
국방부가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김좌진ㆍ홍범도ㆍ지청천ㆍ이범석 독립군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철거하고 다른 곳으로 이전하기로 한 데 대해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흉상 철거는 2018년 3월 흉상이 설치된지 5년여만이자,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78년만에 공군의 호위를 받으며 고국으로 돌아온 지 2년만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27일 통화에서 “특히 홍범도 장군의 경우 지난 정부에서 육사 교내에 동상을 설치할 때부터 소련 공산당 가입 이력 등에 대한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며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비롯해 현재 육사에 설치된 동상이 특정 시기에 활동한 인사들에 편중됐다는 지적까지 감안해 이들 동상을 전쟁영웅을 기리는 별도의 장소에 모시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육군에 따르면 동상 이전은 윤석열 정부 출범 첫해인 지난해 시작한 종합발전계획의 일환으로 검토돼왔다.
육사는 이와 관련 지난 25일 “생도들이 학습하는 건물 중앙현관 앞에 설치된 독립군ㆍ광복군 영웅 흉상은 위치의 적절성이나 국난 극복의 역사가 특정 시기에 국한되는 문제 등에 대한 논란이 있다”며 “자유민주주의 수호 및 한ㆍ미동맹의 가치와 의의를 체감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기념물 재정비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날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이종섭 국방장관도 “공산주의 경력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며 흉상 철거 결정의 배경이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가입 전력 때문임을 분명히 했다. 이 장관은 또 “독립운동가의 흉상 철거가 한ㆍ일 관계를 염두에 둔 조치가 아니냐”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는 “가능하면 육군 또는 육사의 창설, 군과 관련된 역사적 인물들을 하는 방향이 좋겠다”면서도 “그렇다고 독립 운동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홍범도 장군은 1920년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 120명을 사살하는 대승을 이끌었다. 같은해 김좌진 장군과 함께 청산리 전투에서도 일본군을 대파했다. 봉오동ㆍ청산리 전투는 지난 7일 배우자의 유해 송환 이후 합장된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물적 지원으로 치러졌다.
역대 정부도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홍범도 장군의 공을 인정했다. 박정희 정부 때인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수여했다. 노태우 정부 이후 지속적으로 홍범도 장군의 유해 송환을 추진한 끝에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8월 카자흐스탄에서 장군의 유해를 국내로 송환한 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고,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했다.
앞서 박근혜 정부도 2016년 해군의 1800t급 최신 잠수함을 ‘홍범도함’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또 육사뿐만 아니라 국방부 청사 앞에도 13개의 흉상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중에는 홍범도ㆍ김좌진 장군의 흉상이 포함돼 있다.
다만 국방부의 주장처럼 홍범도 장군이 1927년 소련 볼셰비키당에 입당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937년 스탈린이 그를 일본인과 닮았다는 이유 등으로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시켰고, 홍범도 장군은 해방 이전인 1943년 카자흐스탄에서 타계했다.
군 관계자는 “과거 홍범도 장군에 대한 서훈 수여 등이 이뤄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후 공산당 가입을 비롯한 그의 과거 행적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져왔다”며 “향후 홍범도 장군에 대한 본격적인 재평가 과정을 거쳐 필요할 경우 국방부 내 흉상과 잠수함의 이름 등에 대한 추가 논의는 물론 과거 서훈 수여 자체에 대한 논의도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기류와 관련 홍범도 장군ㆍ우당 이회영ㆍ신흥무관학교ㆍ백야 김좌진 장군 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은 지난 2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군의 기원인 독립전쟁의 역사를 뒤집으려는 매우 심각하고 엄중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회견엔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찬 광복회장은 물론, 김좌진 장군의 손녀이자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 국회의원을 지낸 김을동 전 의원도 참석했다.
이종찬 회장은 이날 이종섭 장관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민족적 양심을 져버린 귀하는 어느 나라 국방장관이냐"며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으면 자리에서 퇴진하는 것이 조국 대한민국을 위한 길"이라고 촉구했다. 김 전 의원은 “북로군정서 등이 대한민국 국군의 모태가 돼야 하는데, 이를 부정하고 국군의 모태를 철거하는 건 항일 무장투쟁의 위대한 역사인 청산리대첩과 봉오동대첩까지도 부정하는 행위”라며 “이를 부정하려면 헌법부터 바꾸고 임시정부부터 부정하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소속 홍준표 대구시장도 27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항일 독립전쟁의 영웅까지 공산주의 망령을 뒤집어씌워 퇴출시키려고 하는 것은 오버해도 너무 오버한다”며 “그건 반(反) 역사이고, 그렇게 하면 매카시즘으로 오해 받는다”라고 적었다.
일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홍범도 장군의 동상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흉상들은 독립기관념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대신 한·미 동맹을 강조할 수 있는 6·25 전쟁 영웅들의 흉상을 건립하는 방안이 추진될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군 창설의 주역인 백선엽 장군과 맥아더 장군, 4년제 육사 창설을 이끈 밴플리트 미국 장군의 흉상 건립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기존 흉상의 철거 시점 등에 대해선 여론의 추이 등을 조금 더 검토한 뒤 결정할 방침이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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