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제목 바꿔"…지역명 사용한 영화들, 창작물과 편견 사이 [D:영화 뷰]
영화의 첫 인상과 마찬가지인 제목은 관객에게 호기심을 유발하고,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고심 끝에 지어진다. 이에 지역명이나 나라명을 제목으로 내세워 짧고 굵게 강렬한 인상을 내세우는 수를 두기도 한다. '해운대', '밀양', '부산행', '곡성', '곤지암'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 등 적지 않은 영화들이 테마나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지역명을 가져다 썼다. 하지만 영상 미디어는 일반 대중의 정서에 영향을 미쳐 대중에게 그대로 각인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특정 지역에 대한 표현이나 묘사가 부적절하거나 민감한 주제를 다룰 경우, 편견을 조장할 수 있다는 반발을 살 수 있다. 최근 공포 영화 '치악산'이 개봉을 앞두고 원주시의 항의를 받고 난감한 입장에 처했다.
'치악산'은 40년 전, 의문의 토막 시체가 발견된 치악산에 방문한 산악바이크 동아리 ‘산가자’ 멤버들에게 일어난 기이한 일들을 그린 리얼리티 호러 영화다. 영화는 개봉 고지 후 보도자료를 통해 "대한민국 3대 미스터리 중 첫 번째, 치악산 괴담"이라면서 실제 괴담이 스크린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홍보했다.
제작사 도호 엔터테인먼트 따르면 '치악산 괴담'은 1980년 국가 시국이 어수선하던 때 우리나라 명산 중 하나로 손꼽히는 치악산에서 벌어진 연쇄 토막 살인 사건을 이르는 말이며, 대한민국 3대 미스터리 중 하나로 손꼽히는 사건이다. 등산을 하던 것으로 추정되는 40대 남성의 열여덟 토막 난 시체가 발견된 것을 시작으로 무려 열 구의 시신아 일주일 간격으로 발견되는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제작사 측은 "사건 당시 시체의 훼손 정도가 너무 잔혹해서, 언론에 공개되지 못한 채 수사가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치악산 괴담 속 사체를 절단한 도구가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며 사건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다"라고 전했다.
이에 '치악산 괴담'이 실제 일어난 사건인지를 묻는 문의가 온라인과 경찰에 이어졌고,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원주시는 사실이 아닌 괴담인 토막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가 지역과 치악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해 제목 변경, 영화 속 '치악산'이라는 대사가 등장하는 부분 삭제 , 또는 묵음 처리, 본편 내 실제 지역과 사건이 무관하며 허구의 내용을 가공하였음을 고지, 온라인 상에 확산된 감독 개인 용도의 포스터 삭제를 요구했다.
이틀간 제작사와 원주시 관계자들은 협의를 통해 제목을 변경하지 않기로 했다. 토호 엔터테인먼트 박도영 대표는 "영화의 제목 변경과 본편 내에 등장하는 ‘치악산’을 언급하는 부분을 모두 삭제한다면,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촬영해야 할 정도로 이야기의 연결이 맞지 않으며, 주요 출연 배우 중 한 명이 군 복무 중인 관계로 재촬영 역시 불가한 상황인 점 양해해 주십사 요청드렸다"라고 제목 변경 불가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영화에서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물, 지명, 회사 및 단체 그 외 일체의 명칭 그리고 사건과 에피소드 등은 모두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라는 문구가 기입 돼 있다. 다만, 해당 문구가 영화가 끝난 후 엔딩크레딧 부분에 위치해 있어, 보다 많은 관객분들께 노출될 수 있도록 본편 상영 이후 바로 등장하도록 재편집을 진행하는 방향 역시 함께 고려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갈등은 종종 일어나고는 한다.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은 전남 곡성군의 반발이 거세자 제목을 한자 표기로 바꿨다. 정범식 감독의 공포영화 ‘곤지암’은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곤지암 정신병원’을 무대로 한 공포영화로, 개봉을 앞두고 경기도 광주시는 영화 제목을 변경해달라는 공문을 제작사에 보낸 바 있다. 상영금지가처분까지 갔으나 기각돼 예정대로 개봉했다.
실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실화인 것처럼 홍보하다가, 지역 주민들의 비난을 산 사례도 있다. 김한민 감독의 '극락도 살인사건'은 극락도라는 가상의 섬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영화로 만든 영화다. 그러나 사실 확인 안된 소문을 실제처럼 홍보하고, 영화 홈페이지에 극락도를 전라남도 신안군에 있는 섬이라고 소개했다. 실화 영화로 오해를 받자 신안군 주민들은 제작사 측에 강력한 항의를 했다.
지난해에는 윤종빈 감독이 연출한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이 국가 이미지를 훼손했다며 남미 국가 수리남 외부 장관이 불만을 제기하고, 법적 조치까지 시사했다. 넷플릭스 '수리남'은 마약단들이 대통령과 손을 잡고 코카인 농장을 짓고, 수리남의 전체 인구 70%가 직, 간접적으로 마약과 관련돼 있다고 묘사했다.
반면 시너지를 내기도 한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은 주연 전도연이 한국 배우 최초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영화가 흥행하자, 영화 촬영지를 관광지화 해 지역 홍보로 활용했다.
특정한 지역명이나 도시명의 제목은 영화의 주요 설정 또는 배경을 강조하며, 관객에게 어떤 장소에서 이야기가 벌어지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으며, 해당 지역의 문화, 사회적 특징 등에 대한 관심을 확실히 끌 수 있다. 여기에 관객에게 지역의 문화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고, 해당 지역을 향한 특별한 관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약이 독이 될 수 있어 선택할 때 주의가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부정적인 사례처럼 부정확한 묘사로 해당 지역들과의 갈등으로 번지기 쉽다. 해당 제목이 영화의 주제와 내용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그리고 어떤 타겟 관객을 끌어들일 것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 대중에게 지역명으로 된 제목은 식별력이 있기 때문에 다른 작품과 구별 짓는데 확실한 강점을 가지고 있어 반복되는 갈등 속에도 계속 차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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