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꿈이 있다" 연설 60주년…백인이 쏜 총에 흑인 3명 사망
"나는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마틴 루터 킹(1929~68) 목사의 연설로 유명한 워싱턴 행진 60주년을 기념하는 집회가 26일(현지시간)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열렸다. 하지만 '흑인 인권운동의 아버지'로 불렸던 킹 목사가 꿈꿨던 "인종차별 없는 나라"는 60년이 지난 현재도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념 집회 당일에는 미 플로리다주(州)에서 혐오범죄로 보이는 총격 사건으로 흑인 3명이 숨지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날 AP 통신,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기념 집회에는 킹 목사의 가족 등 수천명이 모였다. 미 인권 운동가 알 샤프턴 목사가 설립한 전국행동네트워크(NAN),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등이 주최한 이날 집회에선 흑인·여성·성소수자 등의 권익 향상을 촉구하는 연설 등이 이어졌다.
워싱턴 행진은 1963년 8월 28일 인종차별 철폐를 요구하기 위해 25만여명이 워싱턴에 집결해 펼친 가두 시위로, 미 역사에서 평등을 강조한 가장 중요한 시위로 꼽힌다. 이듬해 인종과 피부색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민권법을 제정하는 주요 동력이 되기도 했다.
이번 행사 참가자들은 흑인 등 소수집단 차별과 핍박은 끝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킹 목사가 60년 전 연설한 링컨기념관 앞에서 “킹 목사의 꿈이 위협받고 있고, 그의 노력의 과실이 위태롭다”고 주장했다. 참가자들은 "이민은 범죄가 아니다", "성소수자 가족들을 보호하라", "총기 폭력을 근절하자" 등 다양한 주장이 적힌 팻말을 들고 링컨기념관에서 킹 목사 기념관까지 행진했다.
킹 목사의 장남인 마틴 루터 킹 3세와 그의 아내 안드리아 워터스 킹, 손녀 욜란다 킹 등도 참석해 "킹 목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킹 3세는 "미국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매우 우려된다"며 "민주주의와 투표권, 여성과 아동의 권리를 보호해야 하고 총기 폭력을 근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욜란다는 "내가 오늘 할아버지와 대화할 수 있다면, 우리가 아직도 이 자리에 모여 할아버지의 일을 끝내고 할아버지의 숨겨진 꿈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다져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AP는 "60년 전에는 단 한 명의 여성만이 연설 마이크를 잡았지만, 이번에는 많은 여성이 연설과 행진에 참여했다"고 달라진 모습을 조명했다. 다만, "60년 전에 비해 참석자가 뚝 떨어졌다"며 "각종 차별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고 전했다. 플로리다주에서 온 한 참가자는 "우리가 요구하고 필요했던 것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필요한데, 25만명에 달했던 인파가 수천명으로 줄어 씁쓸하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플로리다주 잭슨빌의 한 할인매장에서 '흑인 혐오' 범죄가 발생했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께 달러 제너럴 매장에서 20대 백인 남성이 총격을 가해 흑인 남성 2명과 흑인 여성 1명 등 3명이 숨졌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용의자는 범행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총격범은 독일 나치를 상징하는 갈고리 십자가 형태의 '스와스티카' 문양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새겨진 'AR-15' 계열 반자동 소총과 글록 권총 등을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범행 당시에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총격범은 범행에 나서기 전 언론과 부모, 사법 당국을 상대로 흑인에 대한 증오심을 자세히 설명한 여러 성명서를 작성했다"며 "다만 총격범이 큰 단체에 속해 있던 정황은 없었다"고 밝혔다. 사실상 단독 범행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미 비영리 단체인 총기폭력 아카이브(GVA)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올해 들어 469번째 발생한 총기난사다. 2016년 한해 동안 발생했던 총기난사 사건 수를 이미 넘어섰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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