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한국 청년, 수사의 기본도 안 지킨 일본 경찰
[이준목 기자]
2023년 6월, 일본에서 혼자 배낭여행중이던 26세의 한국인 청년 윤세준씨가 실종된다. 6월 8일, 그는 마지막 행선지인 구시모토초에서 숙소에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끝으로 모든 연락이 두절됐다. 그리고 벌써 두달이 흘렀지만 윤세준씨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다. 과연 그는 어디로 사라졌으며, 왜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8월 26일 방송된 SBS 시사고발 <그것이 알고싶다> 1366회에서는 '미궁으로 남은 마지막 행선지, 윤세준 일본 실종 사건'이라는 부제로 외국에서 벌어진 한국인 청년의 실종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조명했다.
96년생인 윤세준씨는 최근까지 사회복지사로 근무했고, 현재는 사직한후 본가가 있는 원주에서 새로운 직장을 알아볼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는 성실하고 친화적인 성품으로 직원들과 지인들 사이에서 모두 평판이 좋았다.
세준씨는 새 직장을 구하기전 휴식 차원에서 지난 5월에 일본으로 홀로 장기 배낭 여행을 떠났다. 중간에 친구도 합류할 예정이었지만 경비 문제로 합류가 불발됐다. 그럼에도 세준씨는 예정대로 일본 여행을 계속했고 수시로 가족과 친구들에게 메시지와 여행 사진을 보내 소식을 알렸다. 한 달 정도가 흘러 세준씨는 여행 경비가 거의 바닥났다며 조만간 귀국할 예정임을 친구들에게 시사했다.
세준씨의 누나는 6월 8일에 마지막으로 동생의 연락을 받았다. 세준씨는 누나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숙소로 돌아가고 있다며, 어두운 야밤에 인도가 없는 차길을 걷고 있어서 무섭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밝혔다. 원래는 버스를 타고갈 수 있는 곳이지만 시골이라서 버스가 일찍 끊겼다고. 그래도 누나는 잠시 후인 저녁 9시 33분, '숙소에 잘 도착했다'는 동생의 메시지를 받고 안심했다. 하지만 이 메시지는 세준씨가 누나에게 보낸 마지막 연락이 됐다.
가족과 지인들은 며칠이 지나도록 세준씨와 연락이 닿지 않고 휴대폰이 꺼져있는 것을 확인하고 문제가 생겼음을 느꼈다. 실종신고를 접수한 원주경찰서는 가장 먼저 휴대폰 위치추적을 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세준씨는 일본에서 실종되었고 출국 당시 비록 로밍을 해가기는 했지만, 한국에서는 일본 기지국 값을 갖고 있지 않아서 확인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경찰 측은 현재 일본 경찰의 확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경찰은 가족의 동의하에 공개 수사를 시작했고, 세준씨의 신상명세가 일본 방송에도 보도됐다. 세준씨의 실종 당일 행적이 마지막으로 확인된 편의점의 CCTV도 확보하며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일본 경찰은 지난 7월 1일 한국 영사관에서 그동안의 수사결과를 통보한 것을 끝으로 세준 의 행적을 찾지못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 경찰은 세준씨가 실종 당일인 6월 8일 밤에 마지막으로 머문 숙소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일본의 일부 누리꾼이나 혐한들은 현재 무직자인 세준씨가 일본에서 불법체류하기 위하여 행적을 감췄다거나, 신변을 비관하여 극단적 선택을 한게 아니냐는 근거없는 낭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세준씨의 가족과 지인들은 그가 과거에 연락이 두절된 일이 없었고 부정적인 생각을 할 사유도 없다며, 혹시라도 범죄나 사고를 당했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었다.
세준씨는 일본 여행을 좋아했고 이미 배낭 여행을 오기전에도 몇차례나 일본을 방문한 경험이 있었다. 그는 남들이 다 가는 뻔한 관광지나 번잡한 대도시보다는, 오히려 한적한 시골이나 현지 느낌이 강한 곳을 더 선호했다고 한다. 세준씨의 행적이 마지막으로 확인된 와카야마현 구시모토초 역시 한국인 관광객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시골이었다.
제작진은 한달여간 세준씨의 일본 배낭여행 경로를 추적했다. 세준씨는 5월 9일 일본 간사이 공항에 도착하여 후쿠오카-오사카-교토-나라-미에-신구 등 한달여간 일본 곳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다가 6월 7일에 구시모토초에 도착했다. 배낭 여행임을 감안해도 동선이 일관성있는 패턴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세준 씨는 MBTI(성격유형)이 ENFP로 충동적이고 자유분방한 성향이 강했다고 한다. 지인들은 그가 계획적인 것보다 즉흥적인 선택을 선호했고 숙소도 당일의 상황이나 마음이 가는대로 정한 경우가 많았다고 증언했다. 활발하고 붙임성있는 성격으로 현지에서 만난 외국인들과도 금새 친구가 되었다고 할만큼 친화력도 좋았다.
제작진은 일본에서 세준씨가 방문했던 지역을 찾아서 그를 기억하고 있는지 탐문했다. 하지만 평범한 관광객인 세준씨의 인상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게스트하우스에게 세준씨가 만난 외국인 여행객 친구중 한 명을 찾아냈지만, 그는 세준씨와 잠시 대화를 나눈 것이 전부라며 이후 연락처를 교환하거나 다시 만난 일은 없다고 설명했다.
세준씨의 마지막 여행지인 구시모토초는 일본 혼슈의 최남단 지역으로 인구 약 1만 4천 정도가 거주하는 바닷가의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태평양을 바라보는 바다 풍경과 독득한 모양의 바위들이 있어서 현지인들에게는 드라이브 코스와 낚시 명소로 알려진 곳이라고. 해당 지역 주민들은 시골이라 식당이나 숙소도 별로 없고, 범죄자들이 출몰하는 곳과도 거리가 멀다고 설명했다.
제작진은 6월 8일 세준 씨의 마지막 행적을 따라가며 그가 마지막으로 머물렀을만한 숙소를 추적했다. 세준씨는 그날 오후 기이오시마 섬에서 버스에 탑승했고 시내 편의점과 레스토랑에 방문했다. 그리고 다시 버스에 탑승하여 오후 7시 20분에 우체국에서 내린 것까지 확인됐다.
당시 세준씨는 누나와의 통화에서 "1시간 30분을 걸어야 예정된 숙소가 나온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런데 당일 세준씨의 이동 동선과 마지막으로 버스에서 내린 곳, 그가 언급한 도보 이동거리 등을 종합해보면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만일 숙소가 구시모토초 시내에 있었다면 굳이 버스를 탈 이유가 없었고, 기이오시마섬이나 또다른 곳이었다면 동선이 너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가족과 지인들은 세준씨가 '길눈'이 어두워서 종종 어려움을 겪었던 일화나 일본어를 글로 읽는 것이 서툴다는 사실을 밝히며, 어쩌면 그가 버스 노선을 착각하거나 방향감각을 잃고 헤맸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현장에 동행한 범죄심리전문가 표창원은 세준씨의 이상한 행적에 대하여 "목표한 곳이 있긴 있는데, 정확한 지식과 정보없이 막연하게 본인이 생각했던 것과 같은 방향이라고 착각하고 움직였을 수 있다. 자신이 가깝다고 생각한 곳에서 버스를 내려서 걸어가는데 실제로는 생각보다 훨씬 더 거리가 멀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하지만 정작 인근 숙박업소에서 세준씨를 목격했다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표창원은 이에 대하여 '방관자 효과'를 거론하며 "사건 수사를 하다보면 나중에 그런 사람 왔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무척 많다. 영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사건에 얽히기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제로 그 사람을 봤더라도 자기 방어기제 때문에 '그 사람이 아닐 거야' '나만 본게 아닐거야'라고 믿고 싶어지는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로는 세준씨를 목격한 사람들도 굳이 사건에 연루되기 싫어서 회피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세준씨가 현지에서 범죄를 당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표창원은 "'이상 동기 범죄(속칭 묻지마 범죄)'라면 한 건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발생했을 것이다. 세준씨의 경우만 독특한게 한 건만 발생하고 말았을 확률은 낮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구시모토초는 지역내에서도 고령인구비율이 높고, 범죄발생률이 낮은 지역으로 꼽혔다.
한편 실종 당일날 세준씨의 추가적인 행적이 발견됐다. 세준은 8일 오전 4시 반, 전날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에서 8분 정도 거리에 있는 도로에서 발견되었다는 목격담이 나왔다. 목격자인 주민은 이른 시간에 인적도 드문 시골 도로를 걸어다니고 있는 세준씨가 의아해 보였다고 진술했다.
혹시라도 세준씨가 신변을 비관하여 극단적 선택을 생각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하지만 심리전문가는 세준씨의 행적이나 주변의 증언들을 분석할 때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살에 대하여 생각하는 사람들은 언어적-행동적-정서적-상황적으로 주변에 징후를 알려준다. 죽음에 대하여 언급하거나, 대화와 대인관계를 기피하고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다"고 설명하며 "(세준씨는) 신변을 비관하고 포기했다기보다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로 일본을 적격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한편으로 또다른 전문가는 어쩌면 실종된 6월 8일날 세준씨가 어쩌면 '숙소에 도착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새로운 가설을 제기했다. 길을 잃어서 헤메고 있는 것을 누나가 계속 걱정할까봐 '도착했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다는 것. 그렇다면 세준 씨가 머문 숙소가 발견되지 않는 이유도 설명이 된다.
문성준 경찰대 교수는 숙소 주변에서 뭔가 일이 발생했다면 '교통사고'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지역 인근 구시모토 종합병원 측에서는 외국인이나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망자가 호송된 적은 없었다고 답했다.
한편으로 만일 세준씨가 사고를 당했다면 실족하여 '바다에 빠졌을' 가능성이 새롭게 제기됐다. 현지 주민들은 1년에 한두번은 바다에 빠지는 실종사고가 발생한다는 이야기를 고백했다. 발견된다면 그나마 행운이고, 아예 사고를 당하고 시신조차 찾지못하고 행방불명되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세준씨는 바다와 낚시를 유독 좋아했다고 한다. 세준씨가 이동한 동선상 충분히 바닷가로 갈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호기심이 많고 자유분방한 성격의 세준씨가 인적이 드문 시각에 바닷가나 갯바위 인근까지 갔다가 사고를 당했을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지인들은 세준 가 수영에는 그리 능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구시모토초는 겉보기에 평화로운 바닷가 마을이지만 실제로는 너울이 심하고 해류가 빠르게 흐르는 지역이었다. 갯바위에서 낚시를 하던 낚시꾼들이 방심하다가 순간적으로 파도에 휩쓸리는 사고가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또한 구시모토가 있는 시오노미사키 지역은 쿠로시오 해류가 동쪽으로 흐르고 있는 구간이다. 전문가는 만일 바다에 빠져서 해류에 휩쓸렸다면 시신이 태평양까지도 흘러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세준씨 실종사건이 벌어진 이후 일본 경찰도 인근 해안 일대를 수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제작진은 이 사건을 취재하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다. 일본 경찰이 사건 초기 실종자 수사의 기본이라고 할수있는 휴대폰 위치추적조자 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황당하게도 일본 경찰은 오히려 세준씨의 누나에게 한국 통신사로는 위치 파악이 안 되는지 물었고, 일본 통신사측에 '확인해 보겠다'고 약속했으나 아직까지 연락이 없었다.
제작진이 일본 통신사에 문의한 결과, 휴대전화의 전원이 들어와 있을 당시의 위치 기록은 파악할 수 있고, 일본 경찰이 요청만 했다면 언제든 확인이 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정작 통신사는 일본 경찰로부터 어떤 요청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와카야마현 경찰과 상위 기구인 일본 경시청에 문의했으나 모두 명확한 답변을 거부했다. 또한 자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일본 오사카 총영사관은 '수사중인 사항이라 일본 경찰측에 문의하라'는 무성의한 서면 답변만 보내왔다.
이에 대하여 표창원은 "실종자 수색에서 가장 신속하고 우선시되는 건 위치확인이고, 가장 확실하고 좋은 방법은 휴대전화"라고 강조하며 "전세계 어디에서나 경찰의 실종수사에 있어서 원칙에 어울리지않는 0점짜리다. 너무 놀랍고 충격적이다"라고 일본 경찰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만일 일본 경찰이 휴대폰 위치확인만 제대로 했더라도 언제 어디서 마지막으로 생존해있었는지 알수 있었을 것이다. 거기서부터 실종수사를 했더라면 지금쯤 최소한 세준씨의 발견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다른 전문가인 이건수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일본은 아직 우리나라가 이용하는 프로파일링시스템이 없다. 일본 경찰의 실종수사방법은 아주 낙후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5년간 국외에서 실종한 한국인 41명 중 일본에서 실종되어 생사를 확인하지 못한 사람은 세준씨를 포함하여 4명이다.
실종사건 취재가 시작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세준씨의 흔적을 찾는데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고자 제보 사진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가장 적극적으로 실종자 수색에 나서야 할 경찰과 영사관은 과연 세준씨를 진심으로 찾겠다는 의지가 있었던 것일까. 실종 두달이 넘도록 세준씨를 애타게 찾고 있는 가족과 친구들의 마음은 타들어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방송은 일본 경찰이 이제라도 위치 기록을 조회해 그 기록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수사와 수색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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