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굽는 타자기]행복한 나라의 우아한 화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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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평생 뭔가를 끊임없이 사랑할 수 있을까.
프랑스 과학자이자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장피에르 소바주가 그런 사람이다.
한 사람이 한 분야를 이토록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넉넉하고 여유롭고 자유로운 삶 덕분에 몇십년간 화학을 사랑할 수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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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평생 뭔가를 끊임없이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람도 변하고 취미도 바뀌는데. 프랑스 과학자이자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장피에르 소바주가 그런 사람이다. 그의 인생은 한 줄로 ‘화학에 대한 사랑’이다.
소바주의 저서 ‘우아한 분자’에는 화학에 대한 사랑이 뚝뚝 묻어난다. 현미경으로 본 분자에서 우아함을 발견한다. 복잡하고 난해한 자신의 화학연구는 구태여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왜 화학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지 고백한다. 언제부터 화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어떤 순간에 희열을 느끼는지를 얘기한다. 한 사람이 한 분야를 이토록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특출한 인물은 아니었다. 좋은 대학에 다니기 위해 사교육을 받았거나, 천재 소리를 들으며 장래가 촉망받는 소년 대우를 받은 적이 없다. 오히려 청소년기에는 프랑스어 읽기나 쓰기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학생이었을 때도 학점은 전체 평균을 밑돌았고, 듣기 싫은 과목은 학기 내내 결석해버렸다. 연구를 했던 곳도 프랑스 최고 대학교와는 거리가 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골에 있는 조그만’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에서 노벨상을 탔다. 오로지 화학에 대한 엄청난 사랑 덕분이었다.
소바주가 화학에 깊이 빠져들기 시작한 배경에는 자유롭고 활기찬 유년 시절이 있다. 주민 500여명이 살던 시골 마을 드라첸브론에서 숲을 거닐고 식물을 채집했다. 눈에 띄는 식물을 구분하며 온종일 시간을 보냈다. 문득 참나무 잎을 자세히 알고 싶어지자, 용돈으로 플라스크와 시험관 몇 개를 샀다. 노벨상을 타기 55년 전 이뤄진 첫 화학 실험이었다. 소바주를 즐겁게 하는 건 대입을 위해 오르는 성적이 아니라, 자연의 경이로움을 지켜본다는 만족감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소바주는 변하지 않았다. 그는 연구실에 틀어박혀 화학만 쳐다보던 연구원이 아니었다. 주말에는 듀크 엘링턴과 존 콜트레인의 재즈 음악을 들었다. 포크너와 헤밍웨이, 콜드웰의 작품을 찾기도 했다. 영화를 보는 것도 좋아해서 장뤼크 고다르와 프랑수아 트뤼포의 작품을 보러 가기도 했다. 취미는 종종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흥미로운 발견을 기록하는 것이었는데 대부분 업무나 전공 분야와 관련이 없는 내용이었다. 넉넉하고 여유롭고 자유로운 삶 덕분에 몇십년간 화학을 사랑할 수 있었던 셈이다.
노벨상 연구주제도 ‘소바주’스럽게 정해졌다. 아내와 종종 여행하던 이탈리아 북부지역에서 소바주는 보로메오 가문의 궁전을 본다. 궁전에 새겨진 가문의 표식은 서로 얽혀있는 세 고리. 이후 소바주는 화학자들 사이에서 사실상 불가능으로 여겨지던 분자 고리 만들기에 성공해냈고, 이 공로로 노벨상을 탄다. 기억 한구석에 남아있는 보로메오 고리가 소바주의 노벨상 연구 실마리가 된 셈이다.
물론 연구 과정은 다사다난했다. 위기 때마다 그를 잡아준 건 가족과 동료들이었다. 그의 멘토이자 친구였던 장마리 렌은 “자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루고 싶은 프로젝트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면 대단한 과학자가 될 것”이라는 지지를 보내왔다. 연구팀이 우울해질 때마다 유쾌함을 불어넣었던 교수, 프로젝트 관리를 맡아준 동료 연구원, 질문과 비판을 가감 없이 던져 준 팀원들이 있었다. 아무리 바빠도 포기하지 않았던 아내와의 점심은 그가 장시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그래서 소바주의 책은 화학서적이 아니라 화학자가 알려주는 인생 이야기다. 굳이 ‘쓸모’를 찾아다니느라 피곤해하지 말라. 그냥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두해도 된다. 대신 자신의 삶을 뒷전에 놓지는 말자. 사랑하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자. 그게 바로 소바주가 생각하는 ‘우아한 삶’이다.
우아한 분자 | 장피에르 소바주 지음 | 에코리브르 | 200쪽 | 11700원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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