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캉스-파자마 파티, 이 남자들이 노는 법
[이진민 기자]
'여자들이나' 할 법한 일에 진심인 남자들이 나타났다. 함께 모이면 수다 떨기 바쁘고, 예뻐지기 위해 화장하고, 서로에게 살가운 애정 표현을 마다하지 않는 남자들. 옛날 같았으면 '기생오라비'라고 불렸을지 몰라도 요즘은 떠오르는 새로운 남성성으로 특히 2030 여성에게 환영받고 있다. 이러한 트렌드를 이끈 건 바로 유튜버 '레오제이'와 그의 친구들.
'레오제이'는 처음으로 여성에게 메이크업을 알려준 남성 유튜버이자 여성 연예인의 메이크업을 따라 하는 커버 영상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그의 채널에서 최대 조회수를 기록한 건 메이크업 영상이 아닌 '찐친 오리지널' 시리즈, 실제 친구들과 찍은 일상 브이로그다. 30대 남자들끼리 모여서 뭐 하고 놀지 뻔하다고? 만나면 술 마시는 시대는 저물고, 파자마 파티하는 세상이 열렸다.
▲ '찐친 오리지널' 화면 갈무리 |
ⓒ LeoJ Makeup |
레오제이의 친구들은 현석, 지오, 주호로 각자 카페나 왁싱샵을 운영하는 평범한 남성들이지만, 그들의 일상은 범상치 않다. 직접 예쁜 케이크와 생일 초를 골라 호텔에서 생일 파티를 열고 각자 어울리는 파자마를 입고 파티를 즐긴다. 음식이 나오면 반드시 인증샷을 남기고 자신의 스타일과 피부톤에 맞는 아이템을 고르기 위해 고심한다. 흔히 2030 여성이 노는 방식이라 여겨지며 때론 폄하되었던 '호캉스'나 'SNS 인증샷'을 즐기는 남성들의 모습은 변혁적일 만큼 새롭다.
게다가 그들은 서로에게 애정 표현도 적극적이다. 친구의 달라진 헤어 스타일을 보며 예쁘다고 말하고 함께해서 즐거운 순간에는 사랑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미디어에서 다뤄진 남성들의 우정이란 목숨까지 걸 수 있는 사나이들의 마초성 우정, 혹은 고맙다는 흔한 말도 어려운 무뚝뚝한 우정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레오제이와 친구들은 '친구이기에 더욱 다정한', 건강한 우정을 보여준다.
특히 술보다 수다를 좋아하는 그들의 부드러운 말투와 유쾌한 화법은 SNS를 휩쓴 '밈'이 되기도 하였다. 얄밉게 행동하는 친구에게 레오제이가 건넨 "너 혹시.. 뭐 돼?"는 이른바 '짜증나는 친구 대처법'으로 유명세를 타며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에서 활발히 사용되었다.
화장하는 남성은 쉽게 조롱의 대상이 되었던 2015년부터 메이크업 유튜버로 활동한 '레오제이'. 이제는 남자들의 새로운 우정을 담은 '찐친 오리지널'로 기존의 가부장적 남성성을 깨고 새로운 남성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시청자는 "네 명의 케미가 재밌다", "남자 넷이 노는데 이렇게 무해할 수 있냐", "계속해서 이 조합을 보고 싶다" 등 뜨거운 반응을 보내고 있다.
▲ 유튜브 채널 <지편한세상>의 '골목카페 투어' 시리즈 |
ⓒ JeeseokjinWorld |
강하고 터프한 전통적 남성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남성성을 보여준 건 '레오제이'만이 아니다.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김수용과 지석진은 함께 카페 투어를 떠나며 디저트를 즐기고 인증샷을 찍는 모습으로 화제에 올랐고 이후 유튜브 채널 <지편한세상>의 카페골목 투어 시리즈로 이어졌다. 시청자들은 "카페는 젊은이들의 공간이란 편견을 깼다", "건전하고 무해하게 노는 남성들이 반갑다" 등 카페와 디저트를 즐기는 새로운 '중년 남성'의 등장을 반겼다.
시대가 변화하며 기존의 '신체적, 경제적 능력이 강한' 전통적 남성성은 붕괴되고 대안적 남성성이 등장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성불평등과 남성의 삶의 질에 관한 연구(2018)'에 따르면 전통적 성별분업과 고정관념에 따른 남성성을 거부하면서 여성적 기질과 역할을 수용하는 '비전통적 남성성'의 비중은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높았으며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전통적 남성성에서 벗어나 '여성적' 역할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이상 성별에 규정된 사회적 역할에서 벗어나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남성들이 미디어를 채우고 있다. 이들은 단지 '무해한' 남성 개인을 넘어서 사회 전반과 또 다른 남성들에게 대안적이며 건강한 남성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시대의 변화는 시작됐다
물론 전통적 남성성의 공백에 건강한 대안보다 가부장제의 회귀를 요구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마치 영화 <바비랜드> 속 '켄'처럼 뭐든 가능한 여자 '바비' 옆에 서기 위해서는, 자신을 강한 남성으로 만들어 줄 가부장제가 필요하다는 어긋난 믿음이다.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세상은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 아닌 모두 하나의 사람으로 존중 받을 시대다.
변화한 시대에 맞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찾는 남성들이 증가하고 있다. 최근 해외에서는 폭력적 성향, 여성 혐오, 동성애 혐오 등 사회 전반에 파괴적인 남성성을 '유해한 남성성(toxic masculinity)'에서 벗어나 새로운 남성성을 찾아야 한다는 사회적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변화한 시대는 다시 역행하지 않는다. 새로운 남성성을 향한 요구와 환영은 지금부터다. 앞으로 찾아올 건강하게 '별난' 남성들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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