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하게 살아볼까 했다가 '노동의 새벽'에 회심"

임의진 2023. 8. 27.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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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대담②] '이등병의 편지' 40주년, 가수 김현성을 만나다

[임의진 기자]

 '이등병의 편지'를 작사.작곡한 가수 김현성.
ⓒ 리일천
파주와 목탄차 운전수 아버지

- 이야기를 좀 환기해서,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데요. 태어난 곳이 파주인가요?

"아녀. 태어난 건 충남 부여. 그래서 내가 조금 말이 느리고, 달팽이 같은 게 있어. 거기서 태어나고 세 살 적에 파주로 이사를 간 거지."

- 부모님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울 아부지는 운전수였어. 트럭 운전을 하셨지. 듣기로 목탄차부터 조수로 앉아 있다가 1등 운전수가 된 거지."

- 그런데 형은 운전 못 하시잖아요.

"허허. 면허만 있고 차는 안 모는 거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야. 운전이 싫고 어디다 차를 세울까 걱정하느라 늙기 싫어. 또 아내가 운전을 엄청 잘해. 인권이 형도 그렇고 운전 안 하는 가수들도 많잖아. 나도 인권이 형 따라쟁이 할라네."

- 파주로 3살 때 와서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인생 전체가 파주와 깊은 인연이네요.

"그렇게 된 거지. 우리가 6남매인데 나는 다섯째야. 형이 58년 개띠인데 백마강에서 놀던 얘기를 다 아는데 나는 전혀 몰라. 난 사내로는 막내고, 여동생은 시집가서 조용히 살아. 음악이나 예술 등등 아무도 인연이 없고 오직 나만 이렇게 살아. 아버지는 트럭에서 카세트 테이프 음악을 많이 들으셨겠지. 아버지는 파주에서 살다 돌아가셨어. 무덤도 파주 광탄에 있어. '넓은 여울'(광탄)이라는 뜻이더라고. 강원도에도 광탄이 있는데 그쪽도 개울이 참 근사하고 좋아."

- 지금도 친가 쪽은 다 파주에 계시죠?

"큰형과 둘째 형 그리고 어머니 셋이 함께 살아. 빌라에 아옹다옹 모여 살아. 형들은 막걸리 배달업을 하면서 지내. 그래서 내가 막걸리 기타를 동동딩동 치는가 봐. 엄니는 93세야. 심지어 지금도 밥도 반찬도 다 하셔. 정신이 총총하셔. 어머니 90세 되던 해에 나랑 둘이서 오키나와를 여행했어. 그 땐 잘 걸으시더라고. 요샌 잘 걷지를 못하셔. 아직도 친척들은 충남 부여에 많이 사시지. 그런데 친척 가운데도 음악, 미술 그런 거 하는 사람 보지 못했어. 나만 똘것인가 봐."

노동의 새벽
 
 박노해 시인의 시집 <노동의 새벽>.
ⓒ 풀빛출판사
 
- 처음 음악의 길로 들어가게 된 어떤 계기가 있었을 텐데요.

"있었지. 고2 때였어. 봄이었는데 내 바로 위 셋째 형이 통기타를 한 대 사주신 거야. 그때부터 기타를 막 쳐댔지. 그리고 교회 '문학의 밤'인가 뭔가 그런 거 있었잖아. 나가서 막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찬송가 그런 노래를 불렀지. 기타를 퉁기면서 말이야. 인기가 BTS급으로 올라갔어. 주변 여고에서도 인기가 높다고 그곳 학교 다니던 얘들이 교회에서 말해주더만."

- 정식으로 밥벌이 삼아 음악에 뛰어든 건 언제였나요?

"그건 한 참 뒤 일이야. 대학 때도 긴가민가 주저하고 결심은 못 했어. 군대 갔다 와서야 음악을 해야겠다고 해서 본격적인 투신을 하게 된 거야. 27살 봄이었던가 그래. 87년 민주항쟁을 광탄에서 뉴스로만 접해 듣다가 나도 좀 생각을 하고 살아야겠다, 행동을 하며 살아야겠다 생각했어. 내가 할 게 뭐가 있겠어. 노래 만들고 노래 부르고 뭐 그뿐인 거지. 난 청년기에 사회성도 없었어. 의식이 별로 없었지. 왜냐면 내가 다니던 서울예전은 박노해 그런 시인과는 거리가 먼 (순수) 문학을 가르쳤어. '노동의 새벽'이라는 박노해 노래극 기타를 쳐주라고 해서 끼게 되었는데, 그때 내가 완전 회심을 했다니까. 우리 가족 중에 전문대라도 나온 놈은 나뿐이야. 비겁하게 살아볼까 했다가, '노동의 새벽'은 나를 이른바 민중가수연하는 근처로까지 데리고 갔어. 하지만 또 그렇다고 내 자유로움을 빼앗긴 건 아니야."

- 형의 대를 지금 가을(감가을)이가 그 뜻을 잇고 있잖아요. 아들이 음악을 하는 소감은 어떠세요?

"더 지켜봐야지. 젊은이들은 어떻게 변할지 모르잖아. 가을이가 원주대 국문과 다니다가 음악한다고 관두고 지금은 서울재즈아카데미 다니겠다며 상경했어. 무슨 장르를 할지 모르겠지만 기반은 아비 따라서 포크를 깔았는데, 지 애비를 보면 뭔가 커다란 산에 가로막힌 느낌도 조금 들겠지. 알아서 뚫고 넘고 어쩌고 해야지 뭐. 둘째는 가현이라고 체육대 다니지. 배드민턴 선수였다가 지금은 지도자 과정 밟는 중이고. 나는 아이들을 예체능으로 키우게 되었지. 얘 엄마가 특수학교 교사인데, 아이들을 특수한 게 아니라 특별하게 키워버린 거 같애. 장인, 장모님은 여주에 있고, 나는 서울과 파주를 오가고, 아이들은 서울 눌러 살고, 엄니랑 형은 파주 살고 모든 가족이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 살아."

- 이산가족이 만나면 반가워서 울고 막 그러잖아요. 같이 살면 다투기밖에 더합니까. 참 노래모임을 따로 운영하지는 않나요? 예전부터 줄곧 노래모임, 밴드를 꾸려오고 하셨는데요.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나. 지루해졌다고 해야 하나? 지금은 행사용으로 잠깐씩 모일 뿐이야. 백창우도 보면 '노래마을' 악착같이 하시다 그만두고, 어린이 노래모임 '굴렁쇠'만 하시더구만. 어느 나이대가 차면 모임이 잘 되어도 그냥 만사가 지루해지는 거 같아. 정리를 하거나 놔버린다고 봐야 돼."

BTS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
 
 방탄소년단(BTS)
ⓒ 하이브
 
- 요즘 특별히 하고 계신 작업이 있으신가요?

"최근에 동화 한 편을 썼어. 부탁받아 쓴 것이긴 한데, 또 뮤지컬 '이등병의 편지'도 초고를 끝까지 다 끝냈어. 극작을 공부하거나 국문과 나와서 쓰는 거 아니잖아. 전태일 노래극도 그렇고 노래극을 그간 꾸준히 해왔는데, 뮤지컬과 노래극 차이는 예산의 문제 정도야. '윤동주 별이 스치는 바람'이나 '그 사내 이중섭'도 그렇고, 음반부터 내고 노래극을 뒤이어 했는데, 사실은 뮤지컬로 가고 싶었으나 예산이 협조가 안돼서 그리 주저앉은 거지. 뮤지컬을 해보는 게 내 꿈이야. '지하철 1호선'도 어떤 면에선 독일 원작이지. 뮤지컬에 우리 거라고 말할 게 별로 없어."

- K-팝 일색인 시대잖아요. 동원령에 준하는 국가주의가 작동된 잼버리 콘서트 얘기도 그렇고요. 포크 기반의 무엇이나 뮤지컬도 그렇고 모두 아이돌 걸그룹 댄스 음악에 치여 사는 형편인데요. 포크에 기반한 시대의 융성이나 발판의 기회가 드문 거 같아요.

"아직도 정치하는 사람들은 문화를 액세서리로 생각하는 같아. 또 포크 장르는 저항감이 없어졌어. 실용음악 함량은 올라갔으나 독창성, 개성이 낮아졌고. K-팝이야 우리말로 노래해도 외국인이 좋아한다니까 밝은 측면도 있으나 우리말에 더 관심 가져야 그 내용까지 완전 이해하지. 이번에 한글 축제 기획하는 것도 우리 말 우리 노래를 매개로 국위를 확장해보는 일이야. 내년엔 해외 전시를 생각해보고 있어. BTS가 내 노래 '가을 우체국 앞에서'를 유튜브에 올렸는데, 조회수가 대단하더구먼. 포크 음악을 그만큼 누가 조회하겠어. 포크는 가사 내용이 시대에 대한 저항이기에 견제와 눈총을 받는 대상이지. 이에 반하여 댄스 음악, K-팝은 그러지는 않잖아. 대중성 측면에서 선호도가 높고 재미가 크겠지만 인류와 사회가 나아지는 방향으로 행보하는 사회참여적 가수들을 만나기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지."

- 뜬금없이 하는 말이지만, 그간 영향을 많이 받은 가수군, 작곡가군을 알고 싶은데요.

"물론 하나도 둘도 모두 밥 딜런이지. 코헨이나 이런 사람도 그렇고. 문학성과 예술성, 선율이 먼저 좋잖아. 김민기, 정태춘, 한돌, 백창우 형도 내게 큰 영향을 주신 분들이지. 문학적 시선, 음악 장르 다양성도 확보한 백창우 형은 특별히 내게 많은 영향을 끼친 분이야. 김민기 이후 동요부터 가요까지 백창우 형이 가장 스케일이 큰 음악 세계를 지녔지. 후배들 가운데는 내가 윤도현을 그렇게 봤지. 다만 부탁하기는 우리 사회에서 더 낮은 곳을 향해 바라봤으면 좋겠어. 39살 때 어느 대학 실용음악 전임교수 제안을 받았는데 현장이 좋아 포기했지. 포크를 열어주는 눈, 방법이 있으리라 생각했어. 그건 실용음악 학교에서 가르치기 어려운 시선이야. 그야말로 길바닥에서, 사회 현상에서 배운 거잖아. 포크는 가르쳐서 되는 무엇은 아니지. 그렇다고 두 손 두 발 놓을 수는 없어. 뭔가라도 해봐야지."

- 포크 역사와 그 방면의 각종 내용이나 스킬을 배우는 단기간의 학교, 포크 대회나 별도의 시상, 그런 것도 도움이 될 텐데요.

"'나는 왕이로소이다' 홍사용의 문학관이 화성시에 있다고. 호가 노작 그래서 노작문학관이야. 그곳에서 '한국음유시인 문학상'이라는 걸 올해 선정해. 내가 선정위원이 되었어. 위원장이 안도현 시인이래. 올해 1회 시상식을 할 텐데 상금도 2천만 원이라고 하대. 시인 손택수가 관장이더라고. 보통 문학상은 많으나 음악상은 상금도 없고 몇 안돼. 그도 방송 위주 음악이더라고. 노벨상은 바보여서 밥 딜런에게 줬겠어? 음악상이 많아져야지. 포크 가수들에겐 큰 보탬이 되고 격려가 되는 상이 생겼다고 봐.

이등병 마을 편지길   
   
 파주시 광탄면에 조성된 '이등병의 마을 편지길'.
ⓒ 김현성
 
 파주시 광탄면에 조성된 '이등병의 마을 편지길'.
ⓒ 구영식
 
- 올해가 '이등병의 편지' 40주년인데, 행사들 좀 소개해주세요.

"서울 인사동(1010 갤러리 10월 4~9일)과 광주 메이홀(10월 23~27일)에서 전시 겸 공연이 작년부터 예정되어 있어. 10월 27일 금요일 저녁엔 광주 이매진도서관에서 '이매진 데스크 콘서트'를 연다는데, 미국의 국영라디오(NPR)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 흉내내는 거. 이게 유튜브에 영상도 올려지는 공연이더라고. 유튜브 쳐보니까 작년엔 홍순관이 공연을 했더구만.

이번 전시와 공연은 내 곡 이등병의 노래가 씨앗이 되었어. 신조형예술가동인이 올해 3월에 창립이 되었는데, '한글축제'라는 타이틀로 전국 전시와 공연을 갖는 걸 기획했어. 부제목은 '이등병의 편지' 40주년 기념 전시야. 이게 그림과 글씨, 노래까지 다양한 장르에 '이등병의 편지'를 담아낸 작품들을 선보이는 전시이자 공연이고 그래.

또 11월 3일 금요일엔 불교중앙박물관 소극장 있잖아. 안국동 조계사. <김현성의 다큐 콘서트 1923>이라고, 관동대지진 100주년으로 하는 공연이 잡혀있어. 아주 큰 공연이 될 거야. 나라를 잃어도 나라말을 잃지 않으면 해방의 새날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지. 우리 겨레는 나라말을 지니고, 그 나라 말로 언제나 푸르고 뜨겁게 자라는 언덕 위의 나무 같아."

- 끝으로 파주시 광탄면에 생긴 '이등병 마을 편지길' 이야기를 나눠야죠. '이등병 편지'는 파주시 행정구역인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소재로 만든 영화 테마곡이고, 형의 대표곡이기도 하고, 이곳이 거의 노래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이니 '일석이삼사오조'를 다 노린 사업인 거 같아요.

"요새 '도시재생 마을 살리기'가 유행이잖아. 그런 맥락으로 '이등병 마을 편지길'이 파주에 조성되었지. 내 쉴 만한 음악 작업실도 그렇게 생겼고 말이야. 이 편지길 조성 사업은 2019년 행정안전부 특수상황지역 지원사업으로 선정되었어. 그래서 이등병 우체국, 이등병 이발소, 김현성 스토리하우스, 라이브 카페, 입영열차 소공원, 야외 공연장, 밀리터리 가게 등이 속속 생겨났지. 이등병 마을과 분수천 미술거리, 광탄 전통시장까지 연결되는 길은 봄여름가을겨울 사시사철 아름답고 풍성해. 조성사업은 신산2리 일원 4만 428㎡(약 1만 2000평) 면적에 국·시비 26억 원 정도가 들어가서 완공을 보았어.

광탄은 옛날에 미군기지가 있었어. 여기에 달린 술집들이 넘쳤지. 이후 미군기지가 떠나고 그 자리엔 물질적 가난과 폐가의 고양이 울음소리만 남아 있었다니까. 드디어 여행객들이 찾아들고 있어. 더 붐비기 전에 놀러와. 동네 고양이들이 훌쩍 떠난 사람들을 기다리는 눈치야."   
 
 가수 김현성은 지난 6월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년 다큐멘터리 촬영에 동행했다.
ⓒ 김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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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현성은 ‘이등병의 편지’, ‘가을 우체국 앞에서’의 작사·작곡가이자 가수이다. 김광석, 윤도현 등과 교류하며 한국대중음악사에 빛나는 노래들을 발표했고, 올해 ‘이등병의 편지’ 작사·작곡 40주년을 맞았다. 파주시 광탄면 ‘이등병 마을 편지길’의 주춧돌을 놓았다. 임의진은 시인, 월드뮤직 전문가로 아울로스 미디어 월드뮤직 기획을 맡고 있다. 선곡집 <여행자의 노래 1-10>, 임의진 시, 김현성 작곡의 시노래음반 <심야버스>등을 발매했다. EBS '세계테마기행' 멕시코를 비롯 중남미편에 종종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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