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교체 전에 수신료 분리징수 먼저... KBS 없애려는 의도"
[신상호, 권우성 기자]
▲ 남영진 KBS 전 이사장. |
ⓒ 권우성 |
"과도하죠. 나를 악인으로 모는 것 같습니다."
지난 22일 국민권익위원회는 별도 브리핑을 열고 남영진 KBS 전 이사장의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를 지적했다. 권익위가 문제로 지목한 금액 규모는 '720만원 상당'. 브리핑을 열 정도의 중차대한 위반으로 보기 어렵지만, <조선일보> 등은 청탁금지법 위반 횟수(35차례)를 강조하면서 상세히 보도했다. 권익위는 관련 자료를 대검에 이첩하면서 사실상 수사 의뢰했다.
지난 15일 대통령 재가로 해임된 남 전 이사장은 작금의 상황에 "과도하다"며 불쾌감을 표했다. 서울행정법원에 해임취소소송과 효력정지신청을 낸 남 전 이사장은 "해임 사유와 절차 모두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수신료 분리징수로 KBS를 압박하는 것과 관련해 남 전 이사장은 "기본적으로 언론에 대한 불신이 있다. 아무리 사장을 내려 앉히고 장악을 해도, 비판 보도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이라며 "정권 입장에선 내 편으로 만드는 것보다는 아예 언론이 없는 게 가장 편한 것"이라고 밝혔다.
KBS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요즘 누가 KBS 보냐고 하는데, KBS는 지방의 60세 이상 고령자들의 선호 채널이다. 이분들은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잘 모르신다"라며 "또한 OTT를 볼 여력이 없는 정보소외계층, 문화소외계층에게 KBS는 여전히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아래는 지난 24일 남영진 이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남영진 KBS 전 이사장. |
ⓒ 권우성 |
- 지난 15일 이사장직 해임을 당한데 이어 권익위가 김영란법 위반을 문제 삼아 사실상 검찰 수사 의뢰까지 했다. 해임만으로 끝나지 않겠다는 건데.
"과도하다. 나를 악인으로 모는 것 같다. 지난주 해임 발표를 하고 나서도 권익위 쪽에서 자료를 달라고 하더라. 권익위 발표는, 내가 언론인 등을 만날 때 법인카드를 과도하게 썼다는 이른바 김영란법 위반인데, 설령 몇건의 위법행위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건 과태료 처분 사안 아닌가(권익위는 남 전 이사장이 가액 3만원을 초과한 음식과 수수 금지 금품을 제공하는 등 청탁금지법 위반 소지가 있는 사항이 약 35회, 720만원 상당 확인됐다고 밝혔다)."
- 논란이 됐던 곶감 세트 구입도 권익위가 현장 조사까지 벌였다던데?
"구매처(충북 영동)까지 가서 조사를 했다고 하더라. 충북 영동에서 선물세트를 모두 4차례 구입했다. 영농법인이 아닌 도소매에서 구매했던 1차례가 논란이 된 건데, 70만원 어치였다. 그 부분을 집중 조사하더라. 그런데 아직 이 부분은 이렇다 할 발표가 없다."
- 해임 절차와 내용 모두 문제가 있다며 해임 무효 청구소송도 냈다.
"KBS 이사장은 임기 3년이 보장된다(남영진 이사장은 2021년 9월 임명). 임기 중 법을 어겼거나 금고 이상의 형을 받지 않으면 해임 사유가 되지 않는다. 이 사유가 없는 해임은 불법이다. 내가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권익위가 김영란법 위반 등으로 수사 의뢰를 한 것도 해임 결정 이후에 벌어진 일 아닌가.
방통위는 해임 사유를 미리 발표해 명예를 훼손했다. 방통위가 제기한 해임 사유를 보면, 방만경영 방치와 법인카드 사용 논란이다. 방통위가 지난 7월 25일에도 자료를 내고 해임을 추진한다고 하면서 해임 사유를 일일이 언급했다. 그런데 당시 적시된 일부 사유(윤석년 KBS 이사 해임안 부결)는 빠졌다."
- 해임 청문회는 열리지도 않았는데.
"나는 방통위에서 온 해임 청문 통보서를 직접 받지도 못했다. 집으로, 사무실로 통지서를 보냈다고 하는데, 당시 부재중이어서 통지서를 전달 받지 못했다. 그러면 청문회 일정을 연기해서 다시 잡아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자기들 일정대로 밀고 나간 거다. 해임 결정이 열리는 전체회의에서 내가 김효재 위원 기피 신청을 했는데, 김효재 위원이 퇴장하지 않고 사회를 보면서 부결을 결정한 것도 따져볼 문제다. 상임위원 5명 중 3명이 남은 상황에서 해임 결정이 됐는데, 이 부분도 합의제기구인 방통위 설립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
▲ 국가기관을 총동원한 윤석열 정부의 공영방송에 대한 장악 음모 포기를 촉구하며 KBS와 MBC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MBC방송문화진흥회 권태선 이사장(왼쪽)과 KBS 남영진 이사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탈법적 공영방송 이사 해임 즉각 중단하라’ ‘무법적 방송 장악 음모 즉각 중단하라’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
ⓒ 권우성 |
- KBS 현안 중 가장 큰 게 TV수신료 분리징수 문제다. 정부가 제대로 된 공론화도 없이 급하게 추진했는데 여론이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수신료에 대한 거부감도 확인되는 대목인데.
"세금 깎아준다는데 좋아하지 않을 사람 어딨나. 하지만 공영방송, 수신료와 관련된 내용을 아는 사람은 반대한다. 요즘 넷플릭스 등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보지 누가 KBS 보냐고 하는데, KBS는 지방에 사는 60세 이상 고령자들의 선호 채널이다. 이분들은 OTT를 잘 모르신다. 코로나 시기 때 60세 이상 계층을 중심으로 KBS 시청률이 높아진 것도 수치로 확인된다. 또한 OTT를 볼 여력이 없는 정보소외계층, 문화소외계층에게 KBS는 여전히 필요하다. 장애인방송과 대북방송, 재난방송도 KBS의 존재 이유를 보여준다."
- 지금 설명한 부분이 좀 더 알려져야 할 것 같다.
"그래서 해임되기 전 공론조사위원회를 만들었다. 공론조사위원회는 언론학계 전문가들로 구성되고, KBS가 수행해야 할 공적 책임과 서비스의 범위, 재원 모델 등을 도출하기 위해 다양한 국민의 의견과 제안을 조사한다. 앞으로 공론조사위원회에서 이런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길 기대한다."
- 수신료 분리시행령 강행의 배경에는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전 내정자의 아들 학폭 논란을 폭로해 낙마하게 한 KBS 보도 때문이란 말이 있다.
"일부 계기가 됐으리라 본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정권이 단기적으로 내년 4월 총선 이전에 모든 걸 해놓으려는 것 같다. 현재 정권과 관련된 부정적인 이슈가 많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비롯해 경제도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공영방송을 바꿔서 이런 부정적인 이슈를 차단하는 방법 말고는 수가 남지 않은 거다. 당장 총선이니 급해진 거다."
- 어쨌든 분리징수 시행으로 KBS는 재정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 시청자 입장에서 당장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당장 체감하는 얘기를 들자면 대하드라마 제작이 어렵게 됐다. 당초 고려-거란 전쟁을 배경으로 한 대하드라마를 올 연말에 제작하기로 계획이 있었다. 재정이 줄어든 상황에서 대하 드라마 제작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해외로 나간 특파원들도 다 철수시켜야 할 거다. KBS 지역 방송국도 정리할 상황이 올 텐데, 이렇게 되면 지역별-권역별 뉴스도 제대로 나가지 못한다. 지역 언론 생태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거다. 지역 국회의원들이나 지자체장들에게도 악영향이다. 지역 방송국을 통해 방송 출연 기회를 잡는데, 그것이 없으면 방송에 나오기 쉽지 않을 거다. 장애인방송, 재난방송도 유지가 가능할지 모르겠다."
▲ 남영진 KBS 전 이사장. |
ⓒ 권우성 |
- 과거 이명박 정부 때처럼 KBS 사장을 바꾸는 것부터 하는 게 아니고, 수신료 분리징수부터 밀어붙였다. 오히려 본인들에게 유리한 여론 환경을 조성하려면 KBS가 필요한 것 아닌가.
"기본적으로 언론에 대한 불신이 있는 거다. 아무리 사장을 내려 앉히고 장악을 해도, 비판 보도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거다. 공영방송도 사장이 바뀐다고 보도가 쉽게 바뀌지도 않는다. 정권 입장에선 99%를 우호적으로 보도해도 1%만 비판해도 아프다. 그러니까 정권 입장에선 내 편으로 만드는 것보다는 아예 언론이 없는 게 가장 편한 거다. 공영방송을 약화시키거나, 가능하면 없애는 게 낫다는 의도가 있다고 본다."
- KBS 이사장 후임으로 서기석 전 헌법재판관이 임명됐다. 어떤 의도라고 보는가?
"법률 전문가를 통해 법률을 명분 삼아 언론을 장악하려는 의도로 본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총칼을 들이대며 헌법을 유린했다면, 지금은 헌법, 법률보다도 하위인 시행령으로 헌법을 무력화하고 있지 않나. 총칼 대신 시행령으로 검찰 독재를 하겠다는 거다."
- 또 하고 싶은 말은?
"KBS가 BBC 수준에는 못 미칠지 모르나 일본 NHK보다는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 8대 공영방송에는 KBS도 포함된다. 그동안 한국이 이만큼 공영방송을 잘 키워온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방송과 언론 영역에서 공영성이 줄어드는데, 공영방송은 민주주의 척도로 역할을 할 것이다. SNS상에서 가짜뉴스가 난무하고 있는데, 이를 바로잡는 역할을 하는 것 역시 공영방송이다. 윤석열 정부가 눈 앞의 이익만을 보고 너무 얕게 생각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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