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즘 사진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 남긴 그녀

조영준 2023. 8. 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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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 292] EIDF 2023 상영작 <사빈 바이스, 한 세기의 기록>

[조영준 기자]

 
 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사빈 바이스, 한 세기의 기록>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2021년 12월 29일, 이 시대의 마지막 휴머니스트 사진작가로 불린 사빈 바이스의 부고 소식이 전해졌다. 로베드 느아노, 윌리 로니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등과 함께 전후 시대 사회를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냈던 인물. 그의 나이 97세의 나이로 이 땅에서의 모든 작업을 마치게 된 것이다. 사빈 바이스가 세상에 남긴 족적은 뚜렷하다. 한 세기 동안 수천 명의 얼굴을 담아냈던 개인의 작업은 물론, 유명 잡지에 실린 패션 디자이너 컬렉션, 전 세계 매체를 위한 보도 사진, 그리고 수많은 출판물에 이르기까지 영역과 한계를 뛰어넘는 작업을 끊임없이 지속해 왔다.

프랑스의 유명 다큐멘터리 감독인 카미유 매나지의 <사빈 바이스, 한 세기의 기록>은 그런 사빈 바이스의 일생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 작품을 연출하기 3년 전 독일 태생의 유대 여성 사진작가 게르다 타로(Gerda Taro, 26살의 어린 나이에 전쟁터에서 사망한 최초의 여성 사진작가)의 삶을 담은 감독은 연이어 휴머니즘 사진 분야의 가장 위대한 인물로 남겨진 사빈 바이스의 인생과 철학을 이번 작품에서 생생하게 담아내고자 했다.

이번 다큐멘터리에서는 예술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사진으로 증거 같은 순간을 남기는 게 좋을 뿐이었다는 사빈 바이스의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다. 유럽 전역의 모습을, 그리고 사람들의 표정과 모습을 자유롭게 남겼던 그녀의 마지막 표정과 함께.

02.
"나는 지적인 것보다 시각적인 것에 민감했고, 이론보다는 실용적인 게 좋았다."

이 작품은 사빈 바이스가 세상을 떠난 다음날 촬영된 영상으로 시작된다. 마지막으로 촬영이 이루어졌을 때, 그녀는 9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무기력함을 염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걱정스러워했던 건 자신이 그간 찍어둔 사진들 가운데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만큼 그녀는 자신의 사진 기술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했고, 무엇보다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를 사랑했다. 자신이 평생을 두고 전문 분야에 대한 분류를 거부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녀가 처음 필름 카메라를 손에 쥐게 된 것은 1935년 7월이었다고 한다. 호기심이 강했던 탓에 새로운 장면을 보는 것이 좋았고, 사진기는 그런 사빈의 마음을 채우기에 적절한 도구였다. 기술적으로도 그랬다. 화학자였던 아버지를 뒀던 탓에 플라스크나 비커와 같은 도구가 많은 실험실을 어릴 때부터 자주 접하며 자랐는데 그런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술적인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전시회를 자주 데리고 다녔던 어머니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채워왔던 마음속의 장면들을 사진을 통해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는 삶의 모든 순간이 사진과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1949년에 미래의 남편이 되는 젊은 미국인 휴 바이스를 만나게 되는 것도 그녀의 삶에는 큰 영향을 주었다. 상상력 풍부한 화가와 사랑에 빠지게 된 그녀는 이후 50년이 넘는 세월을 남편과 함께 보내게 된다. 딸 마리온 바이스는 아버지가 엄마의 닻과도 같았고, 균형감과 집중력, 자신감을 선사하는 존재였다고 말한다. 마치 부모의 역할을 하듯이 엄마 사빈 바이스의 곁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왔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예술가 커플이 서로의 작품 세계를 침범하며 불화를 겪는 것과 달리, 두 사람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평생을 함께 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사빈 바이스, 한 세기의 기록>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03.
훗날 사빈 바이스는 다방면으로 이름을 알리며 상업적인 작업까지 가리지 않고 여러 작업을 하게 되지만, 1930년대 전후 시대를 지나며 처음 시작했던 작업은 사회 각 계층의 사람들이 가진 모습을 사진에 담는 것이었다. 북부의 광부들부터, 어린아이를 돌보는 주부들, 파리 거리의 노숙자와 타라스콩의 집시까지. 그녀의 셔터는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모두 담아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촬영에 대해 항의를 하거나 불쾌한 뜻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의 작업은 매우 자연스럽게 진행되었고, 대상이 되는 이들도 불편해하지 않았다고 한다.

"마음에 드는 걸 포착하면 빨리 사진을 찍어야 하죠."

여기에는 특별한 말을 하지 않고서도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유대감을 형성하곤 했던 사빈 바이스의 성품이 큰 역할을 했다. 그녀가 웃으면서 한 두마디만 건네도 다들 친해지곤 했는데, 위선적이지 않고 스스로가 먼저 자연스러울 줄 알았던 그 모습이 사람들의 마음을 열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사빈의 작품 속에 어른의 모습보다 아이들이 더 많이 담겼던 이유와도 연결이 된다. 본인 스스로는 특별히 아이들의 사진을 찍은 기억도 그런 의도도 없었다고 말하는데, 그녀의 그런 마음과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런 경향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다만 사빈 바이스는 시대적으로 볼 때, 당시 아이들이 거리에 많았기 때문에 그런 사진이 상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었다고는 말한다. 어디에서든 아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촬영이 쉽지는 않았다. 마음에 드는 장면을 아이들을 통해 재구성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04.
그녀의 본격적인 활동은 1952년 보그 잡지 사무실에서 로베로 드아노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사진에 대한 관심사가 비슷했던 두 사람은 이때를 시작으로 평생의 긴 우정을 이어가게 된다. 사진 대행사인 '라포'의 일원이 된 것도 이때다. 휴머니스트 사진 대행사로 불렸던 이 회사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모여 만든 공동 작업체였다. 레이몽 그로세, 로베르 드아노, 윌리 로니스, 자닌 니에프스까지 당대 최고의 인물들 사이에서도 사빈 바이스는 훌륭한 사진작가였고, 주제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방면의 촬영이 가능한 몇 안 되는 작가로 인정받았다.

무엇보다 사빈은 자신의 사진에 해석의 여지를 남겨 두었기 때문에 누군가는 그 사진으로부터 시대의 달콤함을 느끼고, 또 누군가는 아이러니를 느끼고, 때로는 힘든 일상의 단상을 마주하게 되기도 했다. 그녀가 작업을 시작하던 때는 전쟁이 시작되고 끝나고, 다시 또 전쟁이 놓인 시대였으니 그리울 것이 없었던 탓에 과거에 대한 향수가 존재하지는 않았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사진 속에는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매력이 놓여 있으니 사람들이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이다.

당시의 명망 높은 사진작가인 로베로 드아노 역시 사빈 바이스의 작품을 두고 사회적 통념에 도전한 작품들로 간단해 보이지만 '자세히 봐야 한다'는 평가를 남겼다. 별 것 없어 보이는 장면도 실제로는 자신만의 의도를 담아 찍은 것으로 긴장감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작품 속에서 노인이 늘 덕망 있는 이들로만 표현되지 않고, 젊은 여성은 반드시 웃어야 한다는 당시의 고정관념으로부터 탈피되어 있는 것 역시 큰 의미를 가진다고 그는 말한다.
 
 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사빈 바이스, 한 세기의 기록>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05.
이런 평가들에도 불구하고 사빈 바이스는 평생에 걸쳐 자신이 예술가가 아니라 사진 장인에 가깝다고 말했다. 만약 자신이 5살짜리 꼬마 사진을 찍었는데 그 아이가 장난스럽게 코를 파고 있었다면 그 사진을 두고 예술이라고 말하는 것은 과장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자신은 그저 스스로 찍은 사진으로 증거와도 같은 사진을 남기는 것이 좋을 뿐이라는 그녀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사진을 찍는 것만큼이나 대중을 만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은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공석에서 작품의 미학적인 면에 대해 설명해 달라는 것만큼은 싫어했다고 한다. 자신은 그저 눈으로 보이는 것을 카메라에 담았을 뿐이고, 그것의 본질을 몇 마디의 말을 통해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사진에 대해 '대상이 나타나면 그 본질을 하나의 이미지로 포착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이 작품 속에서 표현되는 사빈 바이스 역시 그가 말했던 고전적인 방식의 작업으로부터 조금도 벗어나 있지 않은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 역시 좋은 사진의 정의에 대해 사진 대상과의 유대감이 잘 형성되어 있는 것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던 적이 있었고, 실제로 사람에 대한 관심 하나로 시대에 따라 모습을 바꾸어 가는 세상을 자신의 사진 속에 담아냈다.

06.
이 작품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사빈 바이스의 작품을 국내에서 소개하는 전시는 몇 차례나 시도되었으나 최종적으로 무산된 바 있다고 알려져 있다. 1981년 작가가 직접 한국을 방문해 경주 불국사와 석굴암을 비롯한 다양한 작품이 촬영된 적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아쉬운 일이다(이 작품은 아직 한 번도 세상에 공개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 아쉬움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번 작품을 통해 제한적으로나마 그녀의 대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파리 백화점 앞 쇼윈도의 판타지'나 뉴욕에서 촬영된 첫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은 더욱 흥미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으로 일하는 어려움을 딛고, 예술가이자 아내, 또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균형감 있게 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사빈 바이스. 이 작품 <사빈 바이스, 한 세기의 기록> 속에는 자신의 자리를 얻기 위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실과 열정으로 노력했던 그의 모습이 살아 숨 쉰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열정이야말로 '여성 사진작가'가 아니라 '사진을 찍는 여성'으로 인정받는, 아니 인정을 넘어 존경받을 수 있었던 뿌리였음을 이 작품이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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