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모금]그때 그 사건…15가지 사건의 내막
편집자주 - 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언론에 보도될 정도의 사건이지만, 대중에게 내막이 잘 알려지지 않은 15가지 사건을 소개한다. 밀수부터 소매치기, 사기, 도난 등 갈래가 다양하다. 인물보다는 사건 배경이 되는 시대와 사회에 초점을 맞춰 분석한다. 한국 최초 방송국인 1950년대 HLKZ 방송국의 화재 사건을 다루면서 당시 언론과 방송 문화 현장을 살피는 식이다. 우리 사회의 과거와 변화 과정을 살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일보』로서는 다행스럽게도, 보험회사는 결국 보험금을 지급했다고 한다. 최창봉의 회고에 따르면, 장기영 사장은 화재 직후 잿더미가 된 방송국을 쳐다보면서 “다시 시작하는 거야”라고 읊조렸다고 한다. HLKZ 방송국 직원 중 몇몇은 정말로 얼마 후면 다시 방송국이 재건될 것으로 생각하고 미군의 AFKN 방송 시간을 빌려 한국어 방송을 얼마간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간 기업의 도전으로 시작한 한국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국 HLKZ는 영영 이어지지 못했다. HLKZ 방송은 그대로 사업을 종료했고, 시간이 흘러 1961년 12월 정부 주도의 방송국인 KBS가 텔레비전 방송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 옛날, 라디오 장비 해커 출신의 무역상이었던 한 젊은이가 한국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에 도전하기 위해 사업을 벌였을 때 HLKZ가 택한 채널 번호는 9번이었다. 이 채널 번호는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KBS-1이 계승해서 이어오고 있다. - 「불타는 한국 최초의 방송국」 p.30~32
남대문 금은방 권총 강도 사건의 범인은 결국 사건 177일 만인 10월 14일에서야 체포되었다. 그는 24세의 최씨였는데, 귀중품 절도 사건의 기본대로 훔친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 현금화하려 시도하다 발각되었다. 동두천에서 팔찌 하나를 팔아보려 했지만, 금은방 상인이 수상하게 여겨 신고한 것이 단서가 되었다. 최초의 예상과 달리 최씨는 서울이 아니라 충남 당진에서 검거되었다. 제대 군인 출신일 것이라는 추리도 맞지 않았다. 최씨는 미군 부대 내 식당에서 일하다가 우연히 권총을 습득했다고 했다. 약혼이나 연애 등이 동기일 것이라는 추리도 틀렸다. 최씨가 밝힌 범행 동기는, 취직에 도움될 수 있도록 영어 학원에 다닐 돈을 구하려는 목적이었다. 그가 체포되어 남대문 금은방에서 현장 검증을 할 때 너무 많은 사람이 와글거리며 모여드는 바람에, 그 와중에 또 날치기들이 다른 범행을 저질렀다는 코미디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 「남대문 금은방 권총 강도와 영어 학원」 p.83~84
이상했던 점은 배 자체가 아니라 배에 실린 화물이었다. 국내 무역회사의 주문으로 실어놓은 상자들이 잔뜩 있었다. 『경향신문』 1월 9일 기사에 따르면, 상자는 총 233개였다. 전체 무게는 148톤이었다고 하니 상자 하나의 무게는 대략 635킬로그램이 된다. 배가 실을 수 있는 무게를 고려해서 상자를 일부러 크게 만들었을 이유는 없다고 가정하면, 상자 하나의 크기는 대략 10킬로그램짜리 쌀자루를 63~64개 정도 쌓아놓은 크기였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다. 635킬로그램 단위로 나누어 상자에 따로 담아서 실을 정도라면, 그 화물이 고가의 제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값싼 제품이라면 더 커다란 상자에 마구 담아놓았을 것이고, 또 무게당 가격이 낮은 제품이라면 포장의 크기가 더 클 것이다. 나중에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이때 233개 상자 속에 담겨 있다고 서류에 기재되어 있던 내용물은 나일론 백(bag)이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사건은 흔히 ‘나일론 백 사건’이라고 불리게 된다. - 「쓰레기를 실은 워싱턴 메일호」 p.118
오후 2시경, 작업자들은 지하에서 방공호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 근처에서 일본 청주병을 발견했다. 일행은 이제 곧 금과 다이아몬드가 들어찬 보물 상자가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었다. 작업은 그날 밤 11시까지 계속되었지만, 보물을 찾을 수는 없었다. 깨진 그릇 조각 몇 개가 더 나올 뿐이었다고 한다. 그때까지 땅을 파고 들어간 깊이는 3미터 60센티미터였다. 『경향신문』 9월 27일 기사에서는 강씨가 작업 포기를 결심한 후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습니다. 이런 망신이 어디 있죠?”라고 말했다고 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지난 7년 동안의 궁금증은 사라지게 되어 후련하다고도 했다. 신기한 소문에 관심을 가졌던 구경꾼들은 아쉬웠던지 “기왕 파보는 것 좀더 파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참견하며 좀체 떠나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 「명동의 보물을 찾아라」 p.171~172
김씨가 남긴 유서 6통 중 3통의 중심 내용은 기사에 공개되었다. 그의 죽음을 처음부터 살인이 아닌 자살로 단정하고 보도가 나온 것을 보면, 6통의 유서 중 어딘가에는 그가 어떤 처지에 이르렀으며 사망 직전 무슨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기록된 게 아닌가 싶다. 우선 3통 중 1통은 친구에게 남긴 편지다. 일본 도쿄에 머물고 있는 어느 외국인에게 귀중한 우라늄을 맡겨두었으며 그에게 연락하면 그 우라늄을 찾을 수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우라늄이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 있다는 점, 또한 김씨가 첩보 활동 중 알게 된 동료가 문제의 우라늄 사건과 연결되었을 수 있다는 점 등이 첩보 소설을 읽는 듯 호기심을 강력하게 자극한다. 다른 1통의 유서는 문제의 그 외국인에게 남긴 편지였다. 누군가 우라늄을 찾으러 오면 내어주라는 당부였다. 도쿄의 외국인이 우라늄을 찾으러 온 사람을 믿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보증할 수 있는 방편을 제시하기 위한 글로 보인다. - 「우라늄과 이중간첩」 p.200~201
대한민국 미스터리 사건 수첩 | 곽재식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88쪽 | 1만8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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