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은행, 50년만기 대출 이달 2조원 급증
[한국경제TV 조시형 기자]
정부와 한국은행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달에도 5대 은행에서만 50년만기 초장기 주택담보대출이 2조원 넘게 늘었다.
이처럼 최근 출시된 50년 만기 상품에 신규 대출 수요가 집중되면서, 기존 다른 만기 상품 위주로 이뤄지는 대출 상환에도 전체 주택담보대출 잔액 역시 5천억원 또 불었다. 전체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세도 5개월째 이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에 따라 당국은 우선 5대 은행을 상대로 긴급 가계대출 현황 점검에 착수했다. 다음 달 하순까지 현장에서 직접 대출 규제나 심사 등의 적정성을 집중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다.
이런 '가계대출 억제·자제' 분위기 속에 은행들은 스스로 50년 만기 상품에 연령 제한을 두거나 아예 팔지 않기 시작했고, 초장기 대출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출 기준 변경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 8월 가계대출 2천400억↑…5개월 연속 증가세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24일 현재 679조4천612억원으로 집계됐다.
7월 말(679조2천208억원)과 비교해 이달 들어 2천403억원 또 늘었다.
특히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를 주도하는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같은 기간 4천840억원(512조8천875억원→513조3천716억원)이나 뛰었다.
이런 추세로 미뤄 전체 은행권과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세도 4월 이후 8월까지 5개월 연속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달 은행권과 금융권 가계대출은 각 6조원, 5조4천억원 불었다.
◇ '연령제한' 소식에 50년만기 대출 더 늘어
최근 가계대출 증가는 주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5대 은행의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24일 현재 2조8천867억원으로 7월 말(8천657억원)과 비교해 이달 들어 2조210억원이나 불었다.
50년 만기 초장기 상품이 가계대출 재증가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연령 제한' 가능성이 거론되기 시작한 13일 이후에만 1조1천억원 가까이(1조872억원) 늘었다. '막히기 전에 대출받자'는 불안 심리가 영향을 준 것으로 해석된다.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은 원리금을 50년에 걸쳐 상환할 수 있는 대출 상품으로, 지난 1월 수협은행이 선보인 뒤 5대 은행도 지난달 이후 줄줄이 내놨다.
만기가 길어질수록 대출자가 갚아야 할 전체 원리금은 늘어나지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1년 단위로 소득 대비 원리금 감당 능력을 보기 때문에 당장 현재 대출자 입장에서는 전체 대출 한도를 늘릴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당국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DSR 우회 수단'으로 지목하는 이유다.
◇ "담보·소득 제대로 따져 대출줬나" 집중점검…은행 "이례적"
가계대출 증가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자, 결국 감독 당국이 은행들을 상대로 '가계대출 취급실태 종합점검'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이 5대 은행에 보낸 공문에 따르면, 금감원은 3명의 감사인원(은행감독국 2명·은행검사국 1명)을 각 은행에 파견해 ▲ 대출 규제 준수 여부 ▲ 담보 가치 평가·소득 심사 등 여신심사 적정성 ▲ 가계대출 영업전략·관리체계 ▲ 고정금리·분할 상환 방식 등 질적 구조 개선 관리 현황 ▲ 가계대출 관련 IT(정보기술) 시스템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방침이다.
사실상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프로세스(절차)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살핀다는 뜻으로, 이 점검 결과를 바탕으로 최근 가계대출 급증의 원인을 확인하고 그에 따른 처방(지침)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공문상 점검은 하나은행(8월 24∼29일)을 시작으로 다음 달에는 KB국민은행(4∼7일), 우리은행 (11∼14일), 신한은행(18∼21일), NH농협(19∼22일) 순으로 나흘씩 진행된다.
이후로는 10월께까지 최근 주택담보대출이 크게 늘어난 인터넷은행 등에 대한 점검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시중은행 대출 관련 부서 관계자는 "이 부서에 근무한 지 3년째인데, 적어도 3년 안에 이런 현장 점검은 없었다"며 "통상적 가계대출만을 주제로 감사 때도 아닌데 이렇게 며칠씩 당국의 현장 점검을 받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점검 결과 뭔가 지침이 나올 수 있지만, 그보다 현장 점검 자체로 은행들에 가계대출을 자제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 은행권 '50년만기 팔아도되나' 고심…스스로 중단·연령제한
은행연합회를 통한 가계대출 자율 규제 논의나 당국의 관련 지침 등이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개별 은행은 적지 않은 혼란을 겪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당초 25일 은행연합회에서 시중은행들과 금융당국 관계자와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과 DSR 등을 주제로 논의할 예정이었지만, 회의 자체가 돌연 연기됐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국에 직접적으로 50년 만기 판매를 멈춰야 하는지, 연령제한을 둬야 하는지 문의했는데, 당국 관계자는 '아직 그럴 필요는 없고, 기다려보라'고만 답했다"며 "지침이 나오기 전까지는 일단 현행 기준대로 50년 만기 상품을 판매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한 상태"라고 전했다.
하지만 일부 은행은 이미 알아서 속속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판매를 중단하거나 연령 제한을 두고 있다.
수협은행은 지난 24일부터 '만 34세 이하' 대출자에만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내주고 있고, 대구은행도 이달 중 같은 기준의 연령 제한을 도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뱅크 역시 25일부터 50년 만기 상품에 '만 34세 이하'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농협은행은 '2조원 한도 소진'을 이유로 이달 31일까지만 50년 만기 상품을 팔기로 결정했고, 경남은행도 28일부터 같은 상품의 판매를 중단할 예정이다.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의 취급 중지나 연령 제한뿐 아니라, 업계에서는 당국이 50년 만기와 같은 초장기 대출상품의 DSR 산출 방식 자체를 바꿀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실제 만기는 50년을 유지하지만, 대출 한도를 늘리는 수단으로 악용할 수 없도록 DSR 산출 과정에서는 만기를 30년이나 40년으로 간주해 대출 한도를 계산하는 방법이 제시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고 말했다.
조시형기자 jsh1990@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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