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한 달 만에 3쇄"…맥도날드 히스토리에 열광하는 이유 [비크닉]
새벽 탈출
최근 신간 한 권을 읽고 새벽녘 치즈버거 한입 베어 먹으며 행복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주요 온라인 서점에서 기업‧경영 스토리 분야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맥도날드 35년 브랜드 스토리』입니다. 맥도날드는 왜 브랜드 스토리북을 만들었을까요. 기업 사사를 어떻게 대중의 눈높이에 딱 맞춰 만들 수 있었을까요. 비크닉이 사사 기획을 주도한 심나리 상무, 박주영 슈퍼바이저를 만나 그 뒷 이야기를 듣고 왔어요.
40주년 아닌 35주년을 기념한 이유
창립기념은 보통 10주년, 20주년, 30주년 등 10년 단위가 중요하잖아요. 왜 하필 ‘35주년’일까요.
“회사에 30년 이상 근속한 직원들이 상당히 많은데, 이들이 한국맥도날드의 역사라는 생각에 모두 공감했어요. 만약 5년 뒤인 40주년에 사사를 만든다면, 그땐 역사와도 같은 직원들이 회사에 없을지 모르겠다는 조바심이 났어요.”- 심나리 한국맥도날드 상무
반응은 폭발적입니다. 한국맥도날드에 따르면 브랜드 스토리북은 출간 한 달 만에 3쇄에 들어갔어요. 기업 사사가 서점에 정식으로 유통된 사례는 드문드문 있지만 3쇄를 찍은 건 처음이라고 해요.
마케터나 외식업에 종사하는 업계 관계자뿐 아니라, 서점에서 우연히 책을 발견하고 정독하는 독자들도 많다고 해요. 박주영 한국맥도날드 슈퍼바이저는 “한국 프랜차이즈 외식업 발전사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고, 무엇보다 맥도날드를 좋아하고 아끼는 팬들이 찾는 것 같다”며 “독자들이 남긴 서평과 책 리뷰를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본다"고 했어요.
판매 수익금 전액을 'RMHC 하우스(장기 통원 치료가 필요한 중증 환아와 가족이 병원 부지 내에서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제 2의 집)'에 기부한다는 점도 흥행 포인트로 꼽혀요.
40만장 사료를 ‘사람’ 이야기로 엮다
심 상무는 사사를 구성하기에 앞서 각 팀이 가지고 있던 내부 자료를 최대한 끌어모았다고 했어요.
“옛날 신문부터 온라인 기사까지 약 40만 장에 달하는 사료를 정리했어요. 200여 명이 집필에 참여했고 제작 기간만 열 달이 걸렸는데, 35년의 역사를 담기엔 다소 짧은 시간이었죠.”
한국맥도날드에는 본사와 직영점, 가맹점을 합해 전국 매장 400여 곳에서 총 1만8000여 명이 근무해요. 35년간 함께한 고객까지 합하면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추억을 간직하고 있죠.
잡지사 인턴 시절 낮이고 밤이고 ‘맥카페'에서 카페 라떼를 마셨던 소설가의 추억, 책을 쓸 때 24시간 문을 여는 맥도날드의 덕을 톡톡히 봤다는 한 신문사 편집장의 기억, 초등학생 때부터 평생 해피밀 장난감을 모아 온 수집가의 사연까지. 책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해요.
공무원으로 30년 넘게 일하다 8년 전부터 서울 이태원점에서 일하고 있는 맥도날드 최고령 서석봉(82) 크루, 3년만 일하자고 마음 먹고 시작했다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응원으로 13년을 근속한 장애인 크루 서유란씨 등 ‘열린 채용'의 가치를 보여주는 크루들의 인터뷰도 은근히 감동적이었어요. 박 슈퍼바이저는 “현재 192명의 장애인 크루와 567명의 시니어 크루가 재직하고 있다”며 “버거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버거를 만드는 사람들의 회사’가 우리의 철학"이라고 했어요.
드라이브 스루・배달…맥도날드가 세운 이정표
맥도날드가 했던 ‘최초의 시도’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도 재밌어요. 맥드라이브(승차 구매)와 맥딜리버리(배달)가 대표적이죠. 1992년 부산 해운대점에 국내 첫 드라이브 스루 시스템이 도입됐을 때 진입로를 주차장으로 착각한 고객들이 차를 세워놓고 그대로 가버렸던 해프닝이 벌어졌대요.
2007년 등장한 맥딜리버리는 짜장면과 피자뿐이던 배달 음식 개념을 버거와 커피로 확장했어요. 배달 플랫폼 구축 프로젝트 리더였던 이훈민 점주는 책에서 “주문 전화를 받는 것부터 간단치 않았고, 딜리버리 구역을 정하려고 오토바이를 타고 머릿속에 지도가 그려질 정도로 지역 일대를 돌아다녔다"고 회상했어요.
한국 현지화를 위해 고군분투한 시간과 노력도 비중 있게 다뤘어요. ‘창녕 갈릭 버거’, ‘보성 녹돈 버거', ‘진도 대파 크림 크로켓 버거' 등 특산물을 활용해 지역 사회에 환원하는 ‘한국의 맛(테이스트 오브 코리아)’ 프로젝트는 시작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책 앞부분에 실어 강조했죠.
“한국 사회에서 책임 있는 회사로 어떻게 잘 자리 잡을 것인가를 고민해 왔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할 맛을 찾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로컬 소싱을 강화해 지역사회에 대한 공감도를 높이겠다는 의도도 있었어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었죠.” - 심나리 한국맥도날드 상무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 맥도날드의 ‘로컬’ 메뉴 수는 115종에 달해요. 한국의 맛 프로젝트 외에도 오래 사랑받는 제품이 많죠. 불고기버거(1997년), 맥스파이시 상하이버거(2003년), 슈슈・슈비버거(2016년), 맥크리스피(2022년) 등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에서 꼭 먹어봐야 하는 버거’로 통해요.
최근 한국맥도날드의 무기는 ‘K-컬처’예요. 2021년 출시와 동시에 전 세계 맥도날드를 보랏빛으로 물들인 ‘BTS 세트’, 올해 3월 인기 아이돌 뉴진스와 협업한 ‘뉴진스 버거'는 한국에서 개발해 해외로 수출한 사례죠. 심 상무는 “BTS 세트는 글로벌에서 먼저 하고 싶어 했던 프로젝트”라며 “50개 시장에서 판매했는데, 맥도날드 사상 최초의 시도였다”고 했어요.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가장 가까이에서 활용할 수 있다는 게 한국 맥도날드의 무기가 되고 있는 거죠.
곱창 버거, 그기 말이 됩니까?
“대구의 특산물이 뭘까요?” “사과? 아, 그렇지만 이제 사과를 키우기엔 대구가 너무 더우니까요.” “음, 그럼 곱창은 어때요?” “맞아요. 곱창 버거로 하면 되겠는데” “잠시만요, 곱창은 너무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까요?” “...역시 그렇겠죠?”
“누구나 좋아하는 보편적인 맛이면서도 한 번 먹고 계속 생각나는 맛이어야 한다"를 결론으로 짧은 아이디어 회의는 끝이 났어요.
신메뉴를 개발하려면 콘셉트부터 원재료 선정, 연구개발, 리뷰, 출시까지 수많은 단계를 거치는데, 버거 하나를 출시하기까지 1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콘셉트에 맞는 원재료, 누구나 좋아하되 특성이 살아 있는 맛을 찾는 게 고민의 핵심이죠. 질긴 식감에 특유의 냄새 때문에 곱창 버거는 실현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독자 여러분은 어떤 재료가 떠오르나요?
뱀발: 프리미엄 버거의 습격
올해 5월 한국맥도날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맥도날드 직영점 매출은 전년 대비 14.6% 증가한 9946억원을 기록했어요. 가맹점까지 포함하면 매출 규모는 1조1770억원으로 늘어나죠. 1988년 한국에 진출한 후 최대 매출 실적이에요. 드라이브 스루와 배달 등 선제적으로 도입한 서비스들이 코로나19 상황에서 성장세를 끌어올렸다는 평가입니다. 심 상무는 “원재료 가격 상승 등 어려움은 똑같이 겪고 있지만 우리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면서 “매출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건 좋은 신호로 본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업황은 우호적이지 않아요. 엔데믹에도 외식업계는 물가 상승 복병을 맞이해 특수를 미처 누리지 못하고 있죠.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피자·햄버거·샌드위치 및 유사 음식점업의 외식산업 경기동향지수는 87.28을 기록했어요. 경기동향지수가 100 미만이면 경기가 둔화한 상태로 해석합니다.
시장 경쟁도 과열 양상을 띠고 있어요.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쉐이크쉑’, ‘파이브가이즈’, ‘슈퍼두퍼’ 등 고급 수제 햄버거 브랜드들이 속속 진출하고 있거든요. 심 상무는 “새로운 브랜드가 계속해서 한국 시장에 들어오는 것은 좋은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버거 자체에 대한 관심도가 굉장히 커지는 동시에 한국 시장 자체도 성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해석했어요.
그는 고급 수제 버거와 맥도날드는 포지셔닝이 다르다는 점도 강조했어요.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는 버거를 제공한다’는 게 맥도날드의 가치이자 철학이라는 거죠. 어쩌면 그게 35주년 브랜드북이 팔리는 이유 아닐까요?
박영민 기자 park.y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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