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뜨거운 감자 넘어 여야 정쟁으로
강기정 광주시장 "색깔론 그만, 공과는 역사에 맡겨야" 맞서
오세훈 등 여권 인사·시민단체 비판 쏟아내…야권서는 '지지'
광주광역시가 추진하는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을 두고 각계각층에서 갑론을박이 연일 계속되면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단순한 이슈가 아닌 여야 정쟁으로까지 확산하는 모양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을 비롯해 여권 인사, 시민단체, 지역 일부 학생들까지 광주시를 정면 비판하고 있으며 강기정 광주시장과 민주당 인사 등은 철 지난 색깔론이라며 논란을 멈추고 공과는 역사에 맡겨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시작은 박민식 장관이 자신의 SNS에 '48억원을 누구에게 바친단 말입니까'라는 글을 올리면서다. 박 장관은 "광주광역시가 올해 말까지 '정율성 기념 공원'을 짓는다고 하는데 이미 광주에는 정율성로도 있고 생가도 보존돼 있다"며 "음악제나, 고향집 복원 등에도 많은 세금을 썼는데 안중근, 윤봉길도 못 누리는 호사를 누려야 할 만큼 그가 대단한 업적을 세웠나"라고 지적했다.
광주시는 2020년 동구 불로동 일대에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계획을 발표했으며 48억원을 들여 올해 연말까지 공원 조성을 완료할 계획이다.
박 장관은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실 독립지사와 호국·민주화 영령들이 얼마나 통탄할지 부끄럽다"며 "정율성이 독립유공자인가? 그는 대한민국을 위해 일제와 싸운 것이 아니다"면서 "1939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현재 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인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한 장본인으로 해방 후 북한으로 귀국해 조선인민군 구락부장을 지냈고 인민군 협주단을 창단해 단장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가 작곡한 조선인민군 행진가는 한국전쟁 내내 북한군의 사기를 북돋웠다. 민족의 비극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전쟁 위문공연단을 조직해 중공군을 위로한 사람"이라며 "북한 정부 수립에 기여하고 조선인민군 행진가를 만들어 6·25 전쟁 남침의 나팔을 불었던 사람, 조국의 산천과 부모형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눈 공산군 응원 대장이었던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또 "중국과 북한 영웅인 그 사람을 위한 기념 공원이라니, 북한의 애국열사능이라도 만들겠다는 것인가? 그렇게도 기념할 인물이 없나?"라면서 "김일성도 항일운동을 했으니 기념 공원을 짓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는 데 앞장선 그를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기념한다는 것은 5·18 묘역에 잠들어 계신 민주주의 투사들을 욕보이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강기정 광주시장이 SNS에 '광주는 정율성 역사공원에 투자합니다'라는 글을 올려 반박했다. 강 시장은 이 글에서 "이념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두 가지 색깔, '적과 나'로만 보인다"며 "광주는 정율성 선생을 영웅시하지도, 폄훼하지도 않는다. 그는 뛰어난 음악가이고 그의 삶은 시대적 아픔이다"고 말했다.
또 "그 뛰어난 음악 덕분에 광주에는 수많은 중국인 관광객이 찾아온다. 광주는 정율성 선생을 역사문화자원으로 발굴하고 투자할 것"이라며 "독일 베를린 도심 한복판에는 여전히 마르크스와 엥겔스 동상이 있고, 마르크스 거리가 있다. 역사를 기억하는 오늘날의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율성 선생이 항일운동가 겸 음악가로 활동하다 중국인으로 생을 마감한 그의 삶은 시대의 아픔이며 그 아픔을 감싸고 극복해야 광주건, 대한민국이건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다"면서 "적대의 정치는 이제 그만하고 다른 것, 다양한 것, 새로운 것을 반기는 '우정의 정치'를 시작하자"고 밝혔다.
이후로도 박 장관과 강 시장의 SNS 설전이 이어지자 각계각층에서도 옹호 또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학생 단체인 전국학생수호연합(학수연) 광주지부는 오는 27일 오후 4시 광주 정율성로에서 기념공원 조성 반대와 강기정 광주시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전범 가담 학살 부역 정율성 기념공원 조성 전면 철회하라. 학살 부역 옹호하는 강기정 시장은 사죄하라"면서 "정율성은 중공군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하며 북한군 협주단장을 맡아 조선인민국 행진곡 또한 작곡했다. 그야말로 6·25 민족 산장의 원흉이다"고 강조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자신의 SNS에 '정율성은 대한민국의 적으로 살았던 삶이 분명하다. 역사 문제를 제대로 따져보자'는 글을 게시하면서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을 '상풍패속'(풍속을 문란하게 함. 또는 부패하고 문란한 풍속)이라고 표현했다.
오 시장은 "지난 수십 년간 진보라 자처하는 세력은 친일한 사람을 가려내고 정죄하고 배제했다"면서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생존을 가로막고 공산주의에 가담한 자 또한 단죄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지 않으냐. 전자가 반민족적이라면, 후자는 반국가적이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친일은 안 되고, 공산주의는 된다는 주장은 이중잣대일 뿐"이라며 "상풍패속은 '대한민국의 적'인 정율성을 높이는 자들에게 딱 맞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여권 인사들도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에 대해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야권에서는 공원 조성에 대해 찬성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광주 5개 구청장 협의회는 공동성명을 통해 "정율성 역사공원은 조성 목적에 따라 순조롭게 진행돼 지역의 소중한 자산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정율성 선생과 그의 일가 대부분은 항일 독립운동에 매진했고 이러한 공로로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 독립장이 추서되는 등 호남을 대표하는 독립운동 가문으로 알려져 있다"며 "현재의 시대적 가치를 기준으로 그의 생애 중 한 면만을 부각해 정체성을 규정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광주에서는 지난 2004년 정율성국제학술대회를 시작으로 2005년부터 정율성국제음악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정율성로를 조성하는 등 다양한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며 "정율성 선생의 흔적이 남아 있는 타지역에서도 역사·문화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기정 광주시장의 SNS 게시글에는 평소 70~90개의 댓글이 이어졌지만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과 관련한 글에는 700개에 달하는 댓글이 달리면서 폭발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해당 글에는 "응원한다", "광주 발전을 위해 노력해 달라" 등의 옹호 댓글과 "피 같은 내 돈, 피 같은 세금으로 헛돈 쓰지 말라", "호남에 기념할 인물이 그렇게 없냐" 등의 반대 댓글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호남취재본부 윤자민 기자 yjm30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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