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부대장이 "한국과 싸웠다면 졌을 것"이라고 한 이유 [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이길상 2023. 8. 26.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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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얌생이'가 빼돌린 양키 커피

[이길상 기자]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뉴욕 양키스와의 야구 경기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의 요시다 마사타카가 6회초 적시타를 치고 있다.
ⓒ 연합뉴스
양키(Yankee)라는 말은 미국 동북부에 거주하는 서유럽계 미국인들을 비하하는 명칭에서 출발해서, 현재는 서유럽계 미국인 전체 혹은 미국인 전체를 경멸하는 용어로 미국 밖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 신문에 '양키'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20년이었다. 미국산 시계 잉거솔(Ingersoll)을 판매한다는 테일러상회의 광고가 <동아일보> 1920년 5월 8일과 12일 자에 실렸다. 세계 최초로 개발된 야광 시계였는데 "양키 夜明 시계"라는 카피를 사용했다.

잉거솔은 마크 트웨인, 토머스 에디슨 등이 사용함으로써 미국에서 매우 유명한 시계였다. 수제 시계가 유행하던 미국에서 잉거솔은 1892년 대량생산 시스템을 시계 제작에 적용함으로써 1달러짜리 시계를 내놓아 시계 시장을 점령하였다. 1919년에는 세계 최초로 야광시계를 개발하였는데, 이때 개발된 야광시계가 이듬해에 <동아일보> 광고를 통해 조선에서 시판을 시작한 것이다.

'양키'라는 용어가 1920년대 조선 신문에 자주 등장하게 된 것은 미국의 프로야구팀 뉴욕양키단(현재의 뉴욕 양키스)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 최고 인기 홈런 타자였던 베이브 루스가 소속된 팀이 뉴욕양키단이었다. 베이브 루스 소식이 신문에 자주 등장하면서 '양키'라는 단어도 스포츠팬들 중심으로 널리 알려졌다.

예컨대 1920년 6월 25일 자 <동아일보>에는 뉴욕양키단의 베이브 루스가 80년 미국 야구 역사에 처음 보는 장거리 홈런을 쳤다고 보도하면서, 위대한 자연의 힘을 나타내는 것이 셋이 있으니, 하나는 나이아가라 폭포, 둘은 베스비우스 화산, 셋은 베이브 루스라고 했다.

우리나라 신문에서 '양키'라는 단어에 '제국주의'라는 단어가 결합하여 미국에 대한 비판적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27년이었다. <조선일보> 1927년 3월 22일 자는 브뤼셀에서 열린 약소민족대회 소식을 전하며 "양키제국주의"라는 비판적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후 양키라는 단어는 서서히 미국식 실용주의 소비문화에 대한 비판 혹은 미국의 우월주의 정신을 상징하는 용어로 사용되는 빈도가 점차 증가하였다. 노출이 심하거나 교양이 없이 가벼운 말과 행동을 일삼는 여성을 상징하는 단어로 "양키-껄"이란 표현도 자주 나타났다. 1930년대 후반 이후에는 배영, 반미 운동의 여파로 양키라는 용어는 미국에 대한 부정적 표현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매우 일반적인 용어로 자리를 잡았다.

'얌생이'와 '얌생이질'

해방이 되고 전쟁을 치르면서 미국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것과 비례하여 '양키'라는 용어는 여기저기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서울, 부산, 대구 등 큰 도시에 있는 외국 물건을 파는 시장이 양키 시장으로 불렸다. 커피는 양키 시장에서 판매되는 대표적인 양키 물건의 하나로 시민들에게 각광을 받았다.

<동아일보>는 1955년 5월 16일 자에서 대대적으로 양키 물건이 흘러나오는 경로를 보도하였다. 이 기사에 따르면 당시 양키 물건이 미군 부대로부터 양키 시장으로 흘러들어오는 경로는 크게 네 가지였다.

경로별로 보면 첫째는 규모가 크고 배짱이 센 "얌생이질"이었다. 미국에서 도착한 미군 수송선에서 물품이 육지로 옮겨질 때 사전에 미군과 짜고 '집덤이'(집더미)만한 물건을 통째로 빼내는 방식이었다. 발동선이 동원되어 직접 싣거나, 바닷물 속에 슬쩍 빠뜨렸다가 나중에 몰래 건지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둘째는 창고에 들어있던 미군 물품을 빼내는 방식이었다. 정기적으로 트럭이 동원되어 당당하게 군수품 수송대 속에 끼어서 빠져나올 정도로 대담하였다. 담당 미군들을 매수하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셋째는 각 군에 배포된 물건을 피엑스에서 빼내는 방식이다. 이 경우에도 트럭에 실어서 나올 정도로 과감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을 성사시키려면 문지기로부터 '양공주', 나아가 각급 요로에 이르기까지 질서 정연한 연락망과 동원 체계가 확립되어 있었다.

마지막 단계가 미군 부대 소속 개인들이 소지품 속에 숨겨서 가지고 나오는 방식이었다. 작은 물건이나 소규모 물품이 대상이었다. 작은 얌생이였다.

이렇게 미군수품을 빼내는 한국 사람들을 일컫는 단어가 '얌생이'였고, 이들의 도둑질을 얌생이질이라고 불렀다. 얌생이는 부산 등 남쪽 지방에서 염소를 일컫는 사투리의 하나다. 미군부대 군수품 도둑을 얌생이라고 부르게 된 일화가 재미있다.

어느 날 철조망을 뚫고 염소가 미군 부대에 들어왔다. 염소 주인인 한국 사람이 염소를 데려가겠다고 해서 들여보냈다.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염소가 들어오기를 반복했고 염소 주인이 들어와서 데리고 나가는 일이 거듭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염소 주인을 수상하게 여긴 미군이 잡아 조사해 보니 미군수품이 소지품 여기저기서 나왔다. 이 사건 이후 미군부대에서 물건을 빼내는 도둑을 '얌생이'라고 불렀다.

'얌생이'와 '파리'
 
 1955년 8월 20일 자 <동아일보>는 '해방 10년의 특산물' 다섯 번째로 '얌생이'를 선정했다.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얌생이질의 대상 중 인기 있는 품목의 하나가 커피였다. 이런 얌생이질을 목격한 어떤 미군 보급부대장은 이런 말을 했다. "태평양전쟁도 미국이 일본하고 싸웠기에 이겼지 한국하고 싸웠더라면 졌을 것이다. 한국하고 싸웠더라면 원자폭탄도 비행기에 싣기도 전에 한국 얌생이꾼들한테 도적을 맞았을 것이다." <동아일보>는 1955년 8월 20일 자에서 '해방 10년 특산물' 다섯 번째로 '얌생이'를 선정하여 다루었을 정도다.

얌생이질을 하는 한국인들을 소재로 한 미국 CBS 드라마 매시(MASH)가 1972년부터 1983년까지 방영되어 대대적인 인기를 끌었다. 최종회의 40.0%는 미국 역대 TV 드라마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드라마에는 미국인들을 속이는 다양한 얌생이들이 등장한다. 얌생이질이 성공하려면 미군의 협조는 필수적이었지만 미국인들은 모두 선의의 피해자로 묘사되었다. 이 드라마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한국인들이 거짓말 잘하고, 남을 속이는 민족으로 인식되도록 만들었다.

얌생이들이 빼내는 양키 물건의 대표 품목은 양담배와 커피였다. 1950년대 중반 서울의 다방 수는 500개가 넘었는데 이들 다방에서 끓이는 커피 재료는 모두 이런 경로를 통해 빼내지는 미군수품이었다. 커피 재료의 값은 당시 큰 통 하나에 7500환, 작은 통이 1500환이었다. 작은 통에 든 1킬로그램 커피 가루로 200잔의 커피를 만들어, 1만 환을 벌었으니 수지맞는 장사였다.

문제는 양키 시장 주변의 '파리'들이었다. 얌생이를 통해 흘러나온 양키 커피를 파는 양키 시장 상인들을 등치는 가짜공무원을 '파리'라고 불렀다. 양키 시장에서 양키 물건을 파는 상인들에게 양담배나 커피 단속을 나왔다고 협박하여 돈을 뜯어가는 가짜공무원들이었다.

선량한 시민들은 이들 '파리'와 진짜 공무원을 구분할 수 없었다. 만에 하나 진짜 공무원을 '파리'라고 의심하여 돈을 주지 않고 버티면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을 빼앗기고, 벌금까지 물어야 했다.

양키 시장을 감독하는 진짜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는 것이 당연한 시대였고, 이런 세태를 이용하여 '파리'가 날뛰던 시대였다. 상인들이 탄원서를 제출하였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경향신문, 1953년 6월 27일).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고 살던 시대였다.

공직자들의 이런 갑질 문화가 7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 비극이다. 70년 전에는 '얌생이'나 '파리'가 문제였다면 지금은 공직 사회 안에 존재하는 갑질 공무원들이 문제다. 자녀를 맡아 가르치는 교사에게 갑질을 한 교육부 5급 공무원이나 경찰 간부, 70년 전 '얌생이'나 '파리'보다 나을 것이 없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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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이길상(2021). 커피세계사 + 한국가배사. 푸른역사. <동아일보> 1920년 5월 8일, 12일 자. 6월 25일 자. 1955년 5월 16일 자. <조선일보> 1927년 3월 22일 자. <경향신문> 1953년 6월 27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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