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만 뷰' 터진 푸바오 영상…할부지 그 말투, 사람엔 안 쓴다
‘푸바오 할부지’ 강철원 사육사
2016년 한국에 온 판다 커플 러바오와 아이바오는 2020년 그 어렵다는 짝짓기에 성공해 딸 푸바오를 낳았다. 판다는 전세계에 2000마리도 없는 멸종취약종이니, 푸바오가 보통 귀한 딸이 아니다. 러바오 커플을 중국에서 몸소 데려와 ‘아부지’를 자처하던 강 사육사에겐 가슴으로 낳은 손녀다. 그가 극진한 보살핌으로 아이바오의 출산을 돕고 푸바오를 함께 양육하는 모습은 인간 가족에게서도 보기 힘든 훈훈한 풍경이다.
어느덧 100㎏을 넘어선 푸바오는 이미 독립했지만, 쌍둥이 동생이 태어나 50일을 맞았다. 또다시 시작된 아이바오의 헌신적 모성애와 꼬물꼬물 아기 판다들의 귀여운 모습에 ‘전할시’의 인기도 수직상승해 구독자 50만 돌파를 앞두고 있다. 에버랜드 공식 유튜브 채널도 구독자 100만을 돌파해 골드버튼을 받았다. 최근 진행한 푸바오 일일매니저 이벤트에는 3명 모집에 무려 1만 3620명이 몰렸다. 판다월드 관람객도 폭증해 9월부터 관람시간을 5분으로 제한할 예정이다.
23일 오전 판다월드 방사장에서 그 인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러바오와 푸바오가 각각 얼음바위와 엄마나무 위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는데, 강 사육사가 기자에게 “푸바오는 꼭 엄마 아이바오가 자는 나무 위에서 잔다”며 한두마디 하자 관람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그를 에워쌌다.
나무 처음 탈 땐 다칠까 쿠션 깔아줘
Q : 푸바오가 많이 의젓해졌죠.
A : “아직도 ‘애기애기’한 모습이 많아요. 전처럼 직접 끌어안을 수는 없지만, 펜스로 바짝 다가와서 만져달라고 비비고 응석을 부리거든요. 펜스 너머로 안마도 해주고 알콩달콩 지내고 있습니다.”
Q : 사람처럼 응석부릴 때 가장 예쁠 것 같아요.
A : “그보다 감정선이 움직일 때가 있어요. 독립 전날 옆에 앉아서 ‘이제 할부지랑도 거리를 둬야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얘가 간식을 먹다가 갑자기 제 어깨에 손을 턱 올리는 거예요. 마치 ‘할부지 내 걱정하지마, 할부지나 잘해’ 그러는 것 같더군요. 물론 그 아이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제 느낌은 그랬어요. 정말 많이 컸고, 이제는 제 생각도 해주는구나 싶어서 대견했죠.”
Q : 다른 동물과도 그렇게 친밀했나요.
A : “푸바오는 뱃속에서부터 늘 함께였으니 거의 엄마와 동급이죠. 그래서 엄마한테 치는 장난들이 할부지한테도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고요. 영장류들도 교감이 되면 부비고 털고르기까지 해줍니다. 판다월드 전에 몽키밸리에 있었는데, 원숭이·침팬지와 친하게 지내며 닮았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웃음)”
1988년 에버랜드 전신 자연농원에 입사한 이래 35년간 80여종의 동물을 돌봤다는 강 사육사는 1994년 한국에 처음 온 판다 커플 밍밍과 리리도 담당했다. 중국의 판다 전문가들과 소통을 위해 공부한 중국어 실력도 상당하다. 밍밍과 리리는 IMF 탓에 조기에 반환했는데, 2016년 러바오 커플을 맞으러 중국에 갔을 때 리리와 감격의 상봉을 했단다.
“정들었던 동물이라 보고 싶었죠. 18년 만이니 당연히 못 알아볼 줄 알았는데, 15미터 정도 저 멀리 앉아있길래 ‘리리’하고 부르니까 두리번거리며 다가오더군요. 많이 놀랐어요. 오래 기억하는 동물도 2~3년 정도거든요. 같이 있던 중국인들이 ‘저건 알아보는 행동’이라며 ‘판다아빠’라는 별명을 붙여줬죠.”
강 사육사는 당시 중국에 2개월간 머무르며 판다 사육법을 전수받았다. 인공포육으로 자라 처음부터 그를 잘 따른 러바오와 달리 엄마 품에서 자라 까칠한 아이바오와 친해지기 위해 사육장에 침상을 갖다놓고 잠을 자기도 했다.
대나무 수배도 쉽지 않았다. 판다들은 보통 하루 20㎏의 대나무를 먹지만, 입맛이 몹시 까다롭다. 러바오와 아이바오도 초기엔 중국에서 먹던 아삭한 맹종죽 위주로 먹었지만, 지금은 다행히 입맛을 바꿔 경남 하동에서 공수하는 설죽, 왕죽, 솜죽 등을 고루 먹는다고 한다.
Q : 판다 사육사가 엄청 행복한 직업 같은데, 힘든 점이라면.
A : “시간을 온통 할애해야 하니까요. 언어 소통이 안되니 관찰을 통해 읽어내는 데 에너지를 다 쏟아야 하죠. 사육사가 어떤 마음을 먹고 어떤 걸 제공하느냐에 따라 야생동물의 복지와 생활이 달라지거든요. 목수처럼 오름나무나 미끄럼틀을 만들어주는 것도 이 아이들의 습성을 유지시켜 줘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죠. 그런데 관찰을 하다 보니 오히려 동물에게서 배우는 게 많아요. 자기네끼리 역할이 있고 규칙을 지키는 걸 보고 있으면 사람이 배워야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Q : 푸바오 키우면서 긴장의 연속이었겠죠.
A : “판다는 번식 특이성이 강하고 초기 생존률도 낮고, 대나무를 먹기까지 굽이굽이 넘어야 하는 단계들이 다 긴장의 순간이었죠. 특히 나무타기를 시작했을 땐 조마조마했어요. 다치면 안되니까 쿠션을 깔아놓고 지켜보기도 했지만, 사실 엄마는 그렇게 돌보지 않아요. 아이바오가 처음에는 신경을 써주다가 나중엔 무심히 지켜만 보더군요. 결국 그 아이가 해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그걸 해내야 홀로서기를 할 수 있으니까요. 미끄러지고 떨어질 수도 있지만, 딛고 넘어서야 자유로워지는 거잖아요. 아이바오의 육아법을 잘 보고 거기에 맞춰주려고 했어요.”
아이바오의 모성애는 ‘전할시’의 중요한 관전포인트다. 평소 ‘먹방여신’으로 불리는 아이바오가 좋아하는 죽순도 외면한 채 아가들을 소중하게 끌어안고 젖을 물리는 모습에 숭고한 자연의 섭리를 느낀다. 푸바오 독립 다음날 아이바오가 식음을 전폐하고 푸바오를 찾아다니는 모습도 폭풍 감동이었다. 철저한 독립생활을 하는 판다는 18~24개월 무렵 엄마와 헤어져 혼자 살아간다. 푸바오도 지난해 9월 엄마로부터, 11월 사육사로부터 독립했다. 이제 엄마와는 만날 수 없고, 사육사도 펜스 너머로 접촉해야 한다.
Q : 모녀의 이별이 너무 가슴 아팠어요.
A : “야생에선 독립과정이 자연스러운데 우린 늘 같은 공간에 있었으니 헤어지는 느낌이 달랐죠. 그런데 저는 아이바오의 육아법이 대단하다 생각됐어요. 그동안 놀아줄 때 과격하고 위험해 보이기도 했는데, 독립 후 푸바오가 혼자서 잘 해내는 걸 보니 결국 푸바오를 위한 육아법이었던 거죠. 오히려 아이바오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다행인 건 제가 돌봐줄 수 있으니까요.”
쌍둥이 동생 탄생하자 관람객도 폭증
‘전할시’는 2년 전 코로나가 한창일 때 시작했다. 귀하게 얻은 아기 판다를 코로나 탓에 보여줄 수 없으니 영상을 동원한 것이다. 사실 판다들은 먹고 자고 배설할 뿐인데, 평범한 일상을 마치 무성영화의 변사처럼 재미있게 포장하는 강 사육사의 독백에 빵빵 터진다. ‘아이바옹~ 아잉, 잘잤어?’하는 사랑 넘치는 말투가 킬링포인트인데, 사람과 대화할 땐 평범한 아저씨 말투다.
“원래 동물들에게 뭐라뭐라 떠드는 게 습관이거든요. 유튜버들이 판다의 귀여움만 찍어가는 걸 보니, 습관대로 떠들면 설명도 되고 궁금증을 해소하는 콘텐트가 될 것 같더군요. 재밌다고요? 애정이 담겨서 그럴 거예요. 동물이나 식물은 주인의 발자국소리를 들으면서 살아간다는데, 사육사의 마음가짐이 그렇거든요.”
‘아부지’‘할부지’를 자처하는 그와 판다들의 끈끈한 유대관계도 감동적이다. 자식을 방치하는 못된 부모들이 뉴스를 도배하는 마당에, 사람도 아닌 동물 어린이가 꿋꿋하게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온맘을 다하는 그의 정성에 ‘내가 푸바오처럼 사랑 듬뿍 받는 느낌’이라는 댓글도 많다.
Q : 일이 아니라 ‘찐사랑’ 같아 보입니다.
A : “사람도 성장 배경에 따라 지금의 현재가 있듯이 판다도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지 배경을 아는 게 중요하거든요. 아이바오가 저한테 보내는 눈빛이나 제가 불렀을 때 보이는 반응이 좀 다르다고 느끼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아이바오와 친해지기 어려워서 중국에서부터 많이 노력했어요. 지금은 밥을 안 먹다가도 제가 가면 먹기 시작할 정도로 마음이 통하는 사이죠.”
Q : 푸바오와 만나 달라진 게 많겠죠.
A : “푸바오라는 아이는 고마운 존재죠. 동물원에 오래 있었고 번식 연구도 했기 때문에, 판다 번식에도 역할을 하는 게 사육사 인생에 방점을 찍는 일이라 생각했어요. 코로나 때 중국 전문가들이 못 들어오는 상황에서 합사를 진행했는데, 푸바오가 태어났을 땐 정말 모든 걸 다 이룬 느낌이었어요. 애들 낳고도 그런 느낌은 없었는데, 사육사로서 그리던 큰 그림을 완성시켜준 게 푸바오인 셈이죠.”
푸바오가 더 애틋한 건 이별이 예정돼 있어서다. 중국과의 협약 때문에 내년 3월경 돌아간다는데, 빈자리를 ‘쌍둥바오’가 대신할 수 있을까. “요놈들 좀 더 커서 할부지한테 하는 거 보면 알겠죠.(웃음) 푸바오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별을 알고 있었고, ‘판생’을 위해 가는 게 맞아요. 푸바오를 정말 사랑해주는 분들이 많지만, 사랑하니까 보내줘야죠.”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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