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고진 사망…푸틴 권력유지 최우선 신호"
"러, 阿 영향력 유지·전쟁 능력 확보"
러시아의 용병단 바그너 그룹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 일각에서는 프리고진의 죽음에 크렘린궁이 관여했을 거라는 의심이 커지고 있다.
25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프리고진의 사망은 크렘린궁이 그의 효율성에도 불구하고 '불충'의 죄를 피할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보도했다.
NYT는 지난 23일 프리고진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뉴스가 타전됐을 무렵 푸틴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 쿠르스크 전투 80주년을 기념해 TV로 중계된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낸 사실에 주목했다.
푸틴 대통령은 검은색 배경에 빨간 조명으로 웅장한 느낌을 낸 무대에서 연설 후 군인들에 훈장을 수여했다. 이어 호국영령을 기리는 묵념을 하는 모습을 연출했는데 이때 프리고진이 타고 있던 전용기가 화염에 휩싸여 땅으로 곤두박질쳤다는 소식이 전파됐다.
극명한 대비를 이룬 두 장면이 우연의 일치일 수 있지만, NYT는 2차대전 기념식장 속 푸틴 대통령의 모습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한 지 1년 반이 지난 시점에 어느 때보다도 단호하게 자신의 장악력과 힘을 드러내고자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해석했다.
모스크바의 정치 분석가 미하일 비노그라도프는 러시아 집권층의 중심부에 있던 인물이 '국가의 지원을 받는 암살'로 사망한 적은 없다면서 "가혹한 선례를 남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가운데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전화회의에서 크렘린을 배후로 보는 서방의 추측에 대해 "완전한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며, 크렘린궁은 암살 배후설을 전면 부인했다.
반면 비노그라도프는 크렘린궁이 프리고진 살해를 승인했을 것이라는 세간의 의심 어린 시선을 무마하려는 노력을 그다지 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NYT는 이에 대해 러시아 집권층의 강력한 인물이 크렘린궁의 뜻에 반해 살해됐다면, 이 역시 푸틴 대통령의 통제권 상실 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러시아 집권층 내부의 역학관계로 볼 때 푸틴 대통령이 실제로 프리고진 살해를 지시했는지 여부보다는 푸틴이 프리고진의 '배신'을 비난한 이후 프리고진이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지난 6월 프리고진이 무장 반란을 일으켰다가 접은 후 두 달간 벨라루스행을 허가받고 푸틴 대통령이 주최한 러시아와 아프리카 국가 간 정상회의 한편에서 아프리카 관리들을 만날 만큼 건재했다는 데 더 놀라는 분위기다.
폐쇄된 독립 언론 '에호 모스코비'(모스크바의 메아리)를 이끌었던 알렉세이 베네딕토프는 "푸틴이 프리고진을 '용서'한 것이 그의 주변 사람들에게 약한 모습으로 인지됐다"며 "이제 푸틴은 어떠한 배신 시도도 드러나리라는 것을 자신의 집권층에 보여줬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유명 언론인 콘스탄틴 렘추코프는 이번 사건과 관련한 러시아 엘리트층의 반응에 대해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다"며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렘추코프는 이어 "푸틴이 그를 반역자라 불렀다"며 "그걸로 이 사람(프리고진)이 더는 안전하지 않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되기에 충분했다"고 꼬집었다.
수장 잃은 바그너 그룹의 미래
프리고진의 사망으로 바그너 그룹의 앞날은 불투명해졌다. 공동 설립자인 드미트리 우트킨 등 핵심 인사들이 추락한 비행기에서 프리고진과 함께 사망한 만큼 그룹이 이전 모습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바그너 그룹은 정권 유지를 돕는 대가로 말리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 금광과 다이아몬드 광산, 삼림벌채권 등 이권을 챙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프리고진의 제거가 크렘린궁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하며 지나치게 강한 인물을 제거해 푸틴 대통령이 아프리카 정부들로부터 더 큰 충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수장을 잃은 바그너 그룹이 크렘린궁의 직접 통제하에 들어간다면 더 위험해질 수 있다며 러시아가 서방을 상대로 한 전쟁을 연장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게 될 것을 우려했다.
푸틴의 연설문 작성가 출신인 정치 평론가 압바스 갈랴모프는 NYT에 크렘린궁을 프리고진 사망의 유력한 배후로 본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떤 신호를 보내기 위해 푸틴은 많은 프로젝트에서 위험을 무릅쓰기로 결정한 것"이라며 "지금 당장 푸틴의 우선순위는 외연 확장이 아니라 권력 유지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소진 기자 adsurdis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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