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이어 카페,식당까지…‘팁 문화’ 한국은 시기상조?

선예랑 2023. 8. 26.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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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권 유행 ‘팁문화’…국내 요식업계까지 번져
계산대 앞 ‘팁박스’ 논란 일자…“인테리어용”
한 유명 빵집 계산대 앞에 '팁 박스'가 놓여있다. 팁 박스 안에는 현금과 동전이 가득 들어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최근 팁(tip·봉사료)을 요구하는 식당과 카페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팁’은 서비스를 제공한 사람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일정 대금 이외에 더 챙겨주는 돈을 말한다. 팁 문화가 비교적 활성화된 서구권과 달리 한국에선 그동안 다소 생소한 문화였다.

국내 택시 호출 플랫폼 카카오택시(카카오T)가 지난달 ‘팁 지불 서비스’를 시범 도입하면서 팁 문화를 둘러싼 논란에 불을 지폈다. 온라인에서는 ‘매장 서비스에 만족했다면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팁을 줘도 된다’는 의견과 ‘가격에 이미 서비스 비용이 포함돼 있는데 팁을 추가로 요구하는 건 부당하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팁 박스, 팁 안내판 등장…“팁 강요당하는 기분 느껴”
지난 18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연남동 한 카페에서 팁을 요구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지난 18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연남동에 팁을 요구하는 카페가 생겼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계산대에서 주문받는 사람이 ‘열심히 일하는 직원에게 팁 어떠신가요’라고 묻더니 5%, 7%, 10% 항목이 있는 태블릿PC를 보여줬다”고 전했다.

‘5시간 대기’까지 부른 유명 베이커리 카페의 계산대에서 ‘팁 박스’를 봤다는 목격담도 나왔다.

지난 19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현재 팁박스 둬서 난리 난 카페’라는 제목의 글과 사진이 올라왔다. 유리병으로 된 팁박스가 계산대 앞에 떡하니 놓여있는데 그 안에 천원짜리 지폐와 동전이 가득 차 있는 모습이다.

한 유명 빵집에 놓인 '팁 박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사진을 본 누리꾼들은 “우리나라에서 팁 따로 받는 건 불법 아니냐” “요즘은 불우이웃 모금통 대신 팁통이네” “계산은 포스기가 하는데 팁은 무슨 팁이냐” “요즘 물가도 계속 오르는데 팁까지 줘야 한다니…” 등의 반응을 보였다.

국민일보가 팁 논란에 대해 묻자 매장 측은 23일 “팁박스는 매장 인테리어 요소 중 하나로, 브랜드 감성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2021년 9월부터 전시 목적으로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팁박스는) 실제 고객분들께 팁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고, 팁박스 안에 있던 현금도 당사의 시재금으로 넣어 진열해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객들의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전 매장에 전시되어 있던 팁박스를 모두 즉각 회수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식당에서도 ‘팁 지불 안내판’이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 21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팁 문화 들여오려고 시도?’라는 제목의 글과 함께 음식점에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 한 장이 공개됐다.

지난 21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식당 사진. 손님들에게 '팁' 지불 방법을 안내하는 팻말이 상 위에 놓여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사진엔 ‘서빙 직원이 친절히 응대해 드렸다면, 테이블당(팀당) 5000원 정도의 팁을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쓰인 안내판이 보인다. 하단엔 작은 글씨로 ‘(팁을) 주시고 안 주시고는 손님분들의 선택이며 의무 사항이 아닙니다. 좋으신 마음으로 이해 부탁드리겠습니다’라는 부연 설명이 적혀 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테이블마다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로봇이 서빙하는 시대에 누구한테 팁을 주란 말이냐” “팁을 강요당하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 등의 댓글을 달며 거부감을 드러냈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소비자에게 팁을 요구하는 행위는 법에 저촉될 소지가 있다.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가격표에는 팁과 같은 봉사료나 부가가치세를 포함한 최종 가격을 표시해야 하며, 음식점은 가격표대로 요금을 받아야 한다.

대한법률구조공단 관계자는 2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자발적으로 팁을 지불하는 것을 막고 있지는 않지만, 음식점의 팁 요구 행위가 강제성을 띤다면 불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에 ‘팁 문화’가 도입된 초기 단계라 제대로 된 기준이나 규칙이 마련되진 않은 상황”이라면서도 “팁을 지불하지 않으면 불친절하게 하는 등 소비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듯한 행동을 보인다면 불법성이 가미된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카카오T ‘감사팁’ 시범 도입…소비자 반응 ‘냉랭’
카카오모빌리티 '감사 팁' 시범 도입 안내문. 카카오모빌리티 홈페이지 갈무리

국내 ‘팁 논란’은 지난달 19일 택시 호출 플랫폼 카카오T가 택시 기사에게 팁을 주는 ‘감사팁’ 서비스를 시범 도입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택시 서비스 중 일반 호출 서비스를 제외한 블랙, 모범, 벤티, 블루, 펫에 적용된다. 승객은 택시 서비스가 만족스러웠다면 최대 2000원까지 팁을 지불할 수 있다.

승객이 지불한 팁은 결제 및 정산 수수료 3.5%를 제외한 전액이 기사에게 포인트로 지급된다. 포인트는 추후 정산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모빌리티는 팁 서비스에 대해 “승객의 자율적인 선택 사항”이라며 “회사가 가져가는 수수료도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소비자 반응은 냉랭했다. 지난 20일 소비자데이터 플랫폼 오픈서베이가 ‘택시 호출 플랫폼의 팁 기능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반대 의견이 71.7%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찬성에 더 가깝다’는 의견은 17.2%에 그쳤으며, 11.1%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서울 중구 서울역 택시 정류장에 카카오T 블루 택시가 콜을 받아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팁’ 서비스가 생기면 택시 요금 인상 효과를 불러올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배달 앱으로 음식을 주문할 때 음식값 외에 배달비가 추가로 붙는 것처럼, 택시 요금에 적용되는 ‘팁’도 나중에는 의무로 변질돼 소비자 부담을 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대해 카카오모빌리티 관계자는 “고객이 하차 후에 별점을 매기면서 팁 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 (팁이) 부담으로 작용하진 않을 것”이라며 “혹여나 하차 전부터 팁을 강요하는 기사가 있다면 누적 횟수에 따라 경고 및 배차 제한 조치 등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힙하려고 팁박스 두냐…소비자에겐 큰 압박”
지난달 10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팁박스' 사진. 팁박스 안에 현금과 동전이 가득하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서구의 팁 문화가 국내에서도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국내 도입된 팁 문화와 관련해 살펴봐야 할 점들이 많다는 의견을 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25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현재 한국은 가격표시제에 따라 소비자들에게 가격 정보를 표시하도록 하게 돼 있다”며 “그런데 식당에서 음식을 사 먹을 때 메뉴판에 있는 가격이 아닌, 추가 팁을 내야만 한다면 소비자들은 혼란스럽기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격표시제는 소비자에게 정확한 가격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사업자가 생산·판매하는 물품에 대해 가격을 표시하도록 하는 제도다. 실제 판매되는 가격을 표시해둠으로써 소비자가 물품 구매 여부를 결정하도록 한다.

이 교수는 “시장에서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가격이 고정적이어야 하는데, 팁문화를 도입하게 되면 모든 가격이 ‘유동 가격’처럼 돼 버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카페나 레스토랑에 ‘팁박스’를 비치하는 것 역시 점주들은 ‘힙해 보여서 인테리어용으로 활용한다’고 할지 몰라도 소비자에겐 압박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무엇보다 최저임금 등 노동자의 임금 결정방식이 나라마다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에서 서비스 업종은 팁까지 포함해서 임금을 주지만, 우리나라는 최저임금이 9620원으로 일괄 결정돼 있다”며 “굳이 팁을 추가로 도입하는 건 매장 손실액을 소비자에게 내라고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은 키오스크 도입이 확대되면서 직원보다는 소비자가 오히려 수고스러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현시점에서 팁 문화 도입이 거론되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 2년간 고물가로 시달려 왔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조금이라도 가격이 올라가는 것에 마음이 좋지 않다”며 “미국의 경우 식당 계산서에 팁을 얼마 줄 건지 쓰게 돼 있는데, 자칫 팁 지불이 의무처럼 번질까 봐 우려하는 소비자들이 많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선예랑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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