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군 없애고 친일파 흉상? 전국 역사학도 서명운동을 제안한다

김경준 2023. 8. 2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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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 전공 대학생·대학원생 서명운동 제안자의 변] 육사 내 독립영웅 흉상 철거 묵과해선 안돼

[김경준 기자]

 2018년 6월 8일 오후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과 항일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 등의 흉상에 신흥무관학교 107주년을 맞아 꽃목걸이가 걸려 있다.
ⓒ 이희훈
    
"에이, 설마. 가짜뉴스겠지!"

육군사관학교 내에 설치된 독립운동가 5인(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이회영)의 흉상이 철거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했을 당시, 나의 첫 반응이었다.

만약 홍범도 장군의 흉상만 콕 꼬집어 철거한다고 했다면, 현 정권의 행보에 비춰봤을 때 충분히 납득 가능했을 터이다. 그러나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김좌진과 이범석 두 장군의 흉상까지 철거한다고? 섣불리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오보일 거라 생각하고 '팩트 체크'를 거친 기사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기다림 끝에 돌아온 것은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육군사관학교의 흉상 철거 계획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한 언론 보도에 의하면 육사 측은 "생도들이 학습하는 건물 중앙현관 앞에 2018년 설치된 독립군·광복군 영웅 흉상은 위치의 적절성, 국난극복의 역사가 특정 시기에 국한되는 문제 등에 대한 논란이 이어져 왔다"며 "학교 정체성과 설립 취지를 구현하고 자유민주주의 수호 및 한·미 동맹의 가치와 의의를 체감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기념물 재정비 사업을 추진 중"이라는 입장을 전해왔다 한다.

육사 측의 해명이 참으로 궁색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독립군의 흉상이 육사에 어울리지 않는다면, 대체 어떤 인물이 어울린단 말인가? 좌우 이념 차원의 문제를 넘어 독립운동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육사 측의 발언은 심각성을 느끼게 했다.

독립운동가 없앤 자리에 친일반민족행위자 흉상 검토... 이유가 '황당'

답답함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독립운동가들의 흉상을 철거한 뒤, 그 자리에 친일반민족행위자 백선엽(1920~2020)의 흉상 건립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백선엽이 누구인가. 만주 펑톈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1941년부터 1945년 일제 패망 때까지 만주국군 장교로서 침략전쟁에 협력했던 이다.

특히 한인(韓人)으로 하여금 한인(韓人)을 통제하고 토벌하기 위해 조직된 간도특설대에 복무하며 항일무장세력 탄압에 앞장섰다. 간도특설대는 만주국의 '삼광정책'(三光政策: 모두 죽이고, 모두 불태우고, 모두 빼앗아가는 정책)을 충실히 수행한 악명 높은 부대였다. 이에 따라 백선엽은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된 바 있다.
 
 사진은 7월 5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세워진 백선엽씨의 동상.
ⓒ 조정훈
 
그러나 윤석열 정권의 국가보훈부(장관 박민식)는 지난 7월 칠곡 다부동에 백선엽의 거대한 동상을 세우더니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 백선엽의 안장자 정보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기록을 지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제는 국방부까지 나서서 장차 대한민국 육군의 간부가 될 청년 생도들을 육성하는 육군사관학교에서 독립운동가들을 몰아내고 친일파 백선엽의 흉상을 세우겠다고?

심지어 이 문제가 국회에서 도마 위에 오르자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북한을 대상으로 전쟁 억제를 하고 전시에 이기기 위해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곳에서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느냐는 문제가 제기됐다"며 홍범도 장군을 저격하는 망언을 일삼기에 이르렀다.

2018년 국방부는 육사 교정 내에 독립영웅 5인의 흉상을 건립하면서 "독립군을 우리 군의 뿌리로, 신흥무관학교를 육사의 모체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니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 군의 뿌리를 부정하고 '친일 황군'의 흉상을 세우겠다고 한다. 이제 우리 군의 정통성을 독립군이 아닌 친일 황군에게서 찾겠다는 것인가.

전 재산을 바쳐 독립군 양성기관인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이회영,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청산리 전투의 영웅 김좌진과 이범석,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등 육사에 흉상이 세워진 5인은 자랑스러운 독립전쟁의 영웅들이다. 특히 이범석 장군은 대한민국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 장관으로서 대한민국 국군의 창건에 크게 이바지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들은 육사의 정체성과 설립 취지에 부적합하고, 동족의 심장에 총부리를 겨눈 친일파 백선엽은 그에 적합한 인물인가? 

"돌이켜 남한의 형편을 보면 그것도 아름답지 못하니 친일파의 블럭은 곳곳에 발호하고 있다. 민족반역자의 세력은 군부 방면에까지 벌써 뿌리를 깊이 박혔다. 그들은 표창까지 받는다." - 문일민 '동지동포께 일언함' (1947년 12월 20일)

76년 전 친일 군인들이 군부를 장악한 현실을 비판한 독립운동가 문일민(1894~1968)의 절규가 귓가에 생생하다. 경술국치(8월 29일) 113주년을 앞두고 이런 흉흉한 소식을 듣게 돼 가슴이 더욱 쓰라리다.

역사 전공 대학생·대학원생들의 서명운동
 
 여천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우당이회영기념사업회·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백야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가 2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지청천·이회영·이범석·김좌진 등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 철거·이전 추진을 비판했다.
ⓒ 우원식 의원실 제공
 
독립운동사를 전공하는 한 역사학도로서 국방부와 육군사관학교의 행태를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다. 나는 이번 폭거를 '역사에 대한 쿠데타'라 생각한다. 이에 전국의 역사 전공 대학생·대학원생들을 중심으로 서명운동을 지난 25일 시작했다(► 서명 참여하기 https://forms.gle/wEpySB15ZNkJCMNY8).

우리의 요구는 명료하다. 첫째, 홍범도 장군에 대해 망언을 내뱉고 육사 내 독립운동가 흉상 철거를 옹호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즉각 사퇴다. 둘째, 육군사관학교의 독립영웅 5인 흉상 철거 및 백선엽 흉상 건립 계획의 즉각 철회다.

역사 전공 대학생·대학원생들의 적극적인 서명 참여를 기다린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며 배운 정의·평화·인권 등의 모든 가치들이 송두리째 부정 당하는 이러한 현실 앞에 더는 침묵할 순 없다. "역사의 신을 믿으라. 정의와 선과 진리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김준엽 전 고려대학교 총장·광복군)는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우리 손으로 증명하자.

아울러 역사학도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이번 서명운동이 계기가 돼 각계각층에서 자발적인 서명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기를, 그리하여 대국민 서명운동으로 발전하기를 고대한다.

► 서명 참여하기 https://forms.gle/wEpySB15ZNkJCMNY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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