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아름다운 강에서 "살려달라" 아비규환 지옥

김현성 2023. 8. 26.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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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년 다큐 촬영 동행기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규모 7.9의 대지진이 관동지방 남부에서 발생했다. 이로 인해 도쿄, 요코하마 등에서 10만 명 가까이 사망했고 4만 3000여 명이 실종됐다. 특히 지진 직후에는 수천 명의 재일조선인이 ‘불을 질렀다’거나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등의 유언비어 때문에 끔찍하게 살해되는 '조선인 대학살'이 벌어졌다. 오는 9월 1일은 일본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OBS는 8월 31일 오후 9시 다큐멘터리 <100년의 진실, 간토 조선인 학살>을 방송한다. 이 다큐멘터리팀과 함께 일본을 다녀온 가수 김현성씨가 글을 보내왔다. 김현성씨는 이번 다큐멘터리를 위해 주제가 ‘귀향1923‘를 작사·작곡하고 직접 불렀다. <편집자말>

[김현성 기자]

 도쿄의 아라카와 강 위 철교. 100년 전 이곳에서는 조선 사람들의 시체가 산을 이뤄 떠내려갔다고 한다.
ⓒ 김현성
 
2023년 6월 2일 오후 6시, OZ1035편 아시아나 비행기는 도쿄 하네다공항에 쉽게 내리지 못했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에는 날씨가 맑았는데, 비행기가 요동을 치는 바람에 기내식 식판이 앞으로 날았다. 다행히 모두 싹 먹었기에 망정이지. 공항을 눈앞에 두고 비행기는 20분을 더 선회한 뒤에야 안전 착륙. 

김태영 다큐멘터리 감독과 촬영감독 김한성 그리고 나, 셋은 드디어 하네다공항 문을 나왔다. 코로나 시국에 3년간 해외 어느 곳도 가지 못했는데 모처럼 일본 도쿄에 온 것이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관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위한 팀이다, 나는 그 작품의 주제가를 쓰려고 현장을 동행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풍경 지하에 지옥 같은 모습이 묻혀 있으리라고는...

100년 전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에게 무자비하게 죽은 현장을 다시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얼핏 보면 그저 아름다운 강물과 숲이 보일 뿐이다. 감히 그 아름다운 풍경의 지하에 지옥 같은 모습이 묻혀 있으리라고 상상할 수 없었다. 

도쿄의 곳곳은 수로와 그 주변 가로수로 운치 있게 보인다. 서울보다 위도가 아래여서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는 상록수와 꽃들이 잘 가꿔져 있다.

나카무라숲. 마른 굴비를 매달아 놓듯이 조선인들을 매달고 불 지르고 묻었다는 그곳을 갔다. 숲의 흔적만 있고 이미 건물이 서 있다. 많은 시신이 떠내려갔다는 오래된 철교 아래로 강물이 흘러가며 빗방울이 수많은 눈물 물방울을 만들며 흘러간다. 

연출을 맡은 김태영 감독의 손에 쥔 지팡이가 촬영감독의 뒤를 위태롭게 따라갔다. 이미 하토야마 전 총리를 비롯해 일본의 여러 증언자와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위해 수차례 현장을 찾은 그다. 

"이렇게 아름다운 강변에서 조선 사람들의 시체가 산을 이뤄 떠내려갔다는 게 상상이 돼?"

김태영 감독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저분들은 일본 사람들인데, 봉선화라는 모임의 회원들이야. 조선인 학살 사건을 추모하며 사료를 찾고 알리는 일을 스스로 해온 분들이야. 도쿄에서 멀리 두 시간이나 떨어진 나가노시에서 오는 사람도 있어."

참변이 있었던 도쿄 아라카와 강둑 너머에 일본시민모임 '봉선화'의 허름한 사무실이 있다. 사무실 옆 화단에는 작은 추모비가 화단에 조성되어 있었다. 몇 그루의 무궁화가 심어져 있다. 올해도 봉선화 씨를 뿌렸다고 한다. 사무실 안에는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기록 자료와 서적이 꽂혀 있다. 매년 때마다 이어온 추모제와 행사 포스터가 내 눈에 들어왔다(관련기사: 한국인 추도비 옆에서 7년간 먹고 잔 일본인 https://omn.kr/23wnm).

'간토를 떠나 혼이라도 날아오너라'
 
 가수 김현성이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년 다큐멘터리 주제가 '귀향 1923'를 추모비 앞에서 부르고 있다.
ⓒ 김현성
 
추모비 옆에서 나는 조용히 노래를 불렀다 

"눈 감아라 나의 아내여 / 내 등에 업혀 고향 가자 
눈 감아라 내 아기야 / 고향 집 갈 때까지 눈 뜨지 마라
마당에 봉선화 꽃 가득 피어 / 떠난 제비가 돌아오듯이
훨 훨 훨 훨 간토를 떠나 / 혼이라도 날아오너라

메오 토지요 와레가 츠마요 / 와타시노세니 오부사리 고쿄니 이고우
메오 토지로 와레가 고요 / 고쿄우노 이에니 쯔크마데 메오토지
니와노 호우센카노 하나가사고로 / 쯔바메가 모돛데 쿠루요우니
후와리 와리토 칸토오 하나레테 ...."

번역된 일본어로 '귀향1923'(작사·곡 김현성)을 노래했다. 노래 한 곡이 무어 위로가 되랴.  

슬픔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아라카와강 철교 아래에 묻힌 조선인들의 모든 영혼이 부디 평안하기를 기원했다.   

봉선화 사무실에서는 일본인 회원들의 열 띤 회의가 이어졌다. 오는 9월 1일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년을 추모하는 일로 많은 의견이 오가고 있었다. 

우리는 문 밖에서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그분들의 관심과 노력에 감사드리며 한편 무관심했던 나를 돌아봤다. 

노을이 지고 금방 골목길 끝으로 어둠이 들어온다. 멀리 철교 위로 창문을 반짝이며 전철이 지나간다. 누군가 집으로 돌아갈 사람들이 탔겠지. 백 년 전 이 다리 아래 어딘가에 묻힌 조선인들은 아무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는데, 길 건너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승합차가 비상등을 깜박인다.

"다시 올게요..." 

김태영 감독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아라카와 강물 위로 조용히 흩어졌다.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년 다큐멘터리 촬영팀(감독 김태영). 가수 김현성은 주제가를 만들기 위해 동행했다.
ⓒ 김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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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현성은 가수 겸 작곡가,시인이다. 대표곡 '이등병의 편지', '가을 우체국 앞에서'로 KBS 아름다운 노랫말 상을 수상했다. 음악극 <윤동주 – 별을 스치는 바람>, <그 사내 이중섭>, <전태일 – 불꽃> 등에 작곡과 연출로 참여했다. 다양한 음반과 세 권의 시집, <오선지 위를 걷는 시인들>, <펜으로 노래하다> 등의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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