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역사... 4년 전 이 사건 돌이켜보는 이유

조영준 2023. 8. 26.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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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 291] EIDF 2023 상영작 <블루 아일랜드>

[조영준 기자]

 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블루 아일랜드>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2019년 홍콩 정부는 도주범죄인 및 형사법 관련 법률 지원 개정 법안을 상정하고자 한 바 있다. 대만 다퉁구에 위치한 한 호텔에서 발생한 홍콩인 피살 사건(푼휘잉 피살 사건)이 계기였다. 당시 홍콩 사법부와 경찰은 피의자의 살해 증거를 확보하였으나 그를 살인죄로 처벌하지 못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특별행정구인 홍콩 정부가 중화인민공화국이 주권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타이완과의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콩 내에서는 범죄인 송환 대상에 중국 대륙 지역이 포함될 가능성을 우려하여 송환법 제정에 반대하는 여론이 거세게 확산된다. 이 법안이 중국 공산당의 강압적인 통제 정책의 일환으로 일국양제와 홍콩 시민들의 자유를 침해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해 여름, 이 법안을 억지로 밀어붙이려는 홍콩 정부와 이에 크게 반발한 시민들 사이에 큰 충돌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시위대는 법안의 완전한 철폐를 주장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경찰과 특공대는 이에 맞서 최루탄과 고무탄을 발사하며 무력 행사에 나선 것이다. 시위대 역시 폭력적인 방식으로 국가의 억압에 저항했다. 양측의 수위는 계속해서 높아지기 시작했고 경찰 쪽에서는 과잉진압과 잔혹한 처벌이, 시위대 쪽에서는 화염병을 포함한 물리적인 대응이 문제가 되며 균열이 점차 깊어졌다.

이 작품 <블루 아일랜드>는 2019년 시작된 홍콩의 범죄인 인도 조약 개정안 반대 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의 기억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작품이다. 그보다 더 과거에 일어났던 1967년의 투쟁 운동과 1989년의 텐안먼 사건이 함께 그려지며 젊은 시절 자신의 인생을 저항 운동에 쏟아낸 이들의 모습과 역사가 그려진다. 이들 모두는 제 몫의 무게를 짊어진 채로 각자의 시대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서로 다른 공간, 시간대에 머무는 이들 모두의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하나의 틀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때로는 묵직함으로, 또 한편으로는 서글픔으로 가슴에 남아 시대를 대변한다.

02.
다큐멘터리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세 사람은 현재 홍콩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이들의 뿌리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보여준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피해 1973년 홍콩으로 건너온 '찬학지'는 부모 세대를 대표한다. 1997년생인 '삼관인'과 1999년 출생인 '틴시우잉'은 직접 바다를 건넌 것은 아니지만 부모들의 탈출로 인해 홍콩에 발을 붙일 수 있게 된 젊은 세대다. 삼관인의 아버지는 1970년대에 사회 운동을 하다가 국가 기관에 붙잡혔지만 세 번의 탈출 시도 끝에 밀입국을 통해 홍콩에 닿을 수 있었다. 틴시우잉 역시 처음에는 할아버지가, 그다음에는 아버지가 중국을 탈출하면서 가족 모두가 건너온 경우다. 이들 모두는 중국에서 태어났으며 중국 국적을 가진 중국인에 해당한다.

실제로 50년 전,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에 홍콩으로 넘어온 중국인은 2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6년 시작된 문화대혁명은 마오 주석이 인민 모두를 구했고, 그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어둠 속을 헤매고 있었을 것이라는 선전물을 중심으로 모두의 자유를 빼앗았다. 특히 1968년에는 대학 졸업생들이 모두 농촌으로 끌려갔는데, 국가에 대한 저항이나 거부는 불가능했기에 모두가 농부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명령에 따르지 않을 경우 부모를 잡아다가 '재교육'이라는 것을 시켰는데, 그런 방법으로 가족이 겪게 될 고초를 생각하면 시골로 향하지 않을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들의 상상 속 홍콩은 자유의 땅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자신의 부모 세대가 중국 격변의 시기를 지났던 것처럼, 삼관인과 틴시우잉 역시 지금 홍콩에서 그때와 유사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말한다. 다만 홍콩의 민주화 운동에 직접 참여하면서 이곳에 대한 소속감이 더 강해졌다는 두 사람. 엄밀히 말하면 홍콩인이 아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 홍콩을 돕겠다고 다짐한다. 지금까지 홍콩의 부패에 대항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패배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는 있지만 말이다.
 
 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블루 아일랜드>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03.
"자유를 위해 싸우자. 홍콩과 함께 일어서라."

홍콩 전역에서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지만 당국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기보다 홍콩 내 반정부 활동을 처벌할 수 있는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여기에는 1989년 당시 중국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과 그로 인한 텐안먼 사건과도 유사한 부분이 많다. 정부의 탄압으로 인해 민주주의의 요구가 무산되었던 당시의 모습과 국민의 뜻과는 무관하게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 현재 홍콩 정부의 모습. 해방군과 시민에게 총구를 겨누며 유혈 진압을 이끌었던 당시의 경찰과 현재 자행되고 있는 홍콩 경찰의 폭행.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국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던 150만 홍콩인의 모습과 현재 거리로 나선 100만 홍콩인의 모습까지 모두 말이다.

역시 중국에서 태어났고 중국에서 자랐지만, 자신은 중국인이 아니라 홍콩인이라 말하는 학생 시위자 '켈빈 탐' 역시 정부의 잘못된 선택을 규탄한다. 그는 중국 공산당의 행적을 알면 알게 될수록 중국을 싫어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중국이 아니라 공산당을 싫어하는 것이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중국과 공산당을 나눌 수 없으니 자신마저도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고 홍콩의 올바른 선택을 위해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2019년 시위 당시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폭도죄로 기소되어 있기도 한데, 앞으로 어떻게 버텨나가야 할지 막막하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국가에 의한 자신의 죄목을 인정하지 않을 작정이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옳은 일임이 분명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국과는 다른 홍콩을 기대했던 홍콩 시민들에게 이 땅 위에서도 과거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블루 아일랜드>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04.
과거 1967년 문혁의 분위기 속에서 홍콩 좌파 세력이 그때의 홍콩 정부와 영국 정부에 투쟁했던 역사도 현재의 모습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이 일로 인해 당시에도 5천여 명이 체포되고 1,936명이 기소되었다고 한다. 범죄자로 낙인찍힌 이들의 가족들이 판사와의 협상을 통해 스스로 죄만 인정하면 무죄로 석방할 것을 약속받았지만 잘못한 게 없으니 죄도 인정할 수 없었던 이들은 대부분 그 제안을 거절했다고 알려져 있다. 시민들을 향해 애국을 소리치고 지지를 호소했을 뿐인데 무엇이 잘못인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중잉가 1번지>라는 작품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앞서 말했던 2019년 시위의 학생 운동가인 켈빈과 1967년 당시의 투쟁 중심에 서 있었던 양위제 박사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등장한다. 과거의 시간 속에서 자유와 투쟁을 외치던 인물과 현재의 시간 위에서 민주와 자유를 말하는 두 사람이 만나게 되는 장면이다. 이미 어려운 시간을 지나온 양위제 박사는 혈기 왕성한 켈빈의 뜻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실패를 거울삼아 조심스러운 걱정도 내비친다. 과거 국가를 사랑하여 격동의 시대 속에 자신을 내던지던 이들이 지금 어떤 모습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그는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양위제 박사는 소년원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에도 매일 구타를 당하고 취조를 받으며 불투명한 미래 속에서 두려움을 안고 살았지만 실제로 더 힘든 시간은 출소 후에 찾아왔다고 말한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들의 생사나 대의에 대해서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게 되는 것이 사실이고, 이런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 개인의 신념도 조금씩 흔들리게 된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두려워하면 역사는 결국 다시 제2의 텐안먼 사태를 만들 것이고 이제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싸우는 사람이 없어지고 말 테지만, 누군가 국가를 사랑하려면 먼저 국가가 먼저 그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그가 깨달은 슬픈 사실이다.

"사실 우리 중 다수는 버려지게 돼. 현실에서 우리는 폭동 중에 버려진 아이들이야. 우리 홍콩 사람들이 지난 150년 동안 홍콩의 운명을 주재한 적이 있었나? 우린 홍콩의 운명을 거스를 수 없어."
 
 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블루 아일랜드>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05.
이 작품의 말미에는 유죄를 선고받은 시민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범죄인 송환 대상과 관련한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 국가에 의해 기소된 이들이다. 이들의 직업은 다음과 같다. 구 의원, 사무직 직원, 대학생, 입법회 의원, 대학 졸업생, 다큐멘터리 제작자, 간호사, 피트니스 센터 대표, 배우, 뮤지션, 교사, 택배원, 보험설계사, 고등학생. 그리고 이들 모두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다양한 연령과 성별군에 분포되어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말한다. 진짜 기소된 사람은 혁명에 참여한 모든 사람일 것이라고 말이다. 모두 홍콩을 소중이 아끼는 이들이다. 국가가 정말 알아야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배경인데, 이는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노력, 과거와 미래를 투자하고 홍콩에 목숨을 건 시민의 전부와도 같다. 그리고 희망이 없음에도 홍콩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곳에 머물고 있는 이유가 된다.

2021년 3월 기준으로 시민들의 시위는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국이 일국양제를 실질적으로 무너뜨리고 홍콩안전법이라는 법안을 통과시키며 홍콩이 중국에 예속된 것이나 다름이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시위 참가자와 언론인, 공무원들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강경한 처벌도 이어지고 있다. 거듭된 역사 속 다른 사건들과 같이, 이번에도 역시 국가는 시민을 저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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