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메멘토 모리, 스티브 잡스의 인생 좌우명
오래전 딱 한 번 유서를 써봤다. 보름 일정의 해외 출장을 앞둔 전날 밤이었다. 그때 나는 왜 유서를 쓰기로 했을까. 전쟁터로 종군취재를 떠나는 것도 아닌데. 그즈음 ‘유서 써보기’가 유행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유서를 쓰면서 펑펑 울었다. 며칠 뒤에 죽는다고 생각하니 삶이 온통 후회스럽고 고마운 것 천지였다. 유서를 쓰면서 오열하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세상이 달리 보였다. 일분일초가 금쪽같았다.
부인 병구완으로 일주일 동안 병실에서 지낸 지인이 이런 카톡을 보내왔다. 팔십 대 남자가 의사에게 암 진단을 받자 꺼이꺼이 울더라. 팔십이면 남자 평균 나이를 산 것인데도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통곡하는 노인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세상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뉜다. 영혼의 존재를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영혼은 인류가 죽음의 공포에 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발명품이다. 인간은 죽음의 공포에 대처하기 위해 영혼을 만들었고, 그것만으론 부족해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한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영혼을 소재로 한 노래와 시문학은 즐비하다. 김형준 작사·홍난파 작곡의 ‘울 밑에 선 봉선화야’. 이 노래의 3절 가사를 들어보자.
'북풍한설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형체, 혼, 환생. 3절은 ‘인간은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빙의(憑依)와 환생(還生).
영화나 드라마에서 줄기차게 차용되는 것이 빙의와 환생이다. 영화 ‘사랑과 영혼’부터 TV드라마 ‘도깨비’까지. 왜 시청자들은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 열광했는가. 삶이 덧없고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워서가 아닌가.
괴테가 60년에 걸쳐 완성한 ‘파우스트’. 누구에게나 ‘파우스트’는 읽기 어려운 책이다. ‘파우스트’는 죽음과 영혼의 이야기다. 구원의 문제에 관한 글이다.
서울 종로구 자하문고개에는 윤동주문학관이 있다. 문학관 위쪽에는 ‘시인의 언덕’을 조성해놓았는데, 이곳에는 그가 잠든 만주 용정에서 가져온 흙을 묻어놓았다.
사람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 모든 문명권에서 흙에는 인간의 영혼이 스며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향한 사람이 고향에서 가져온 흙을 보관하는 행위는 자못 경건하다.
쇼팽이 바르샤바를 떠날 때 친구들은 고향을 잊지 말라며 고향의 흙을 작은 유리병에 담아주었다. 쇼팽은 죽을 때까지 이 유리병을 애지중지했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15대 심수관’ 심일휘씨가 작년 한국을 방문해 김포에 있는 심당길의 부친 묘를 찾아가 제사를 지냈다. 심당길은 정유재란 때 포로로 일본에 끌려간 조선의 도공(陶工)이다. 15대 심수관은 김포 묘의 흙을 일본에 가져가 심당길의 묘에 뿌렸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스크루지라는 캐릭터를 창조한 소설. 그러나 의외로 독자들은 이 소설의 결말, 스크루지의 개과천선을 기억하지 못한다. 스크루지를 변하게 만든 것은 그가 자신의 죽음을 목도하면서다. 슬퍼하기는커녕 비웃음의 대상이 된 자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확인하고서다.
연초에 서울 신문로에 있는 갤러리 마리에서 ‘장르 탈출(Beyond Genre I)'이라는 이름의 전시회가 있었다. 이 미술전에 출품한 아티스트 ‘Q. Rock’은 투명 비닐 봉투에 담겨진 오브제를 극사실로 묘사했다. 전시 작품 중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였다. 하트 모양의 풍선을 마치 꽃다발처럼 투명 비닐에 담았다. 왜 메멘토 모리라고 했을까. 옆에 그림 설명처럼 라틴어 문장을 써놓았다.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에 나오는 글귀다.
‘하지만 나에게 다음의 세 분의 신을 주십시오. 나는 지금의 다음의 신들을 보고 있습니다.’
‘바니타스 정물화’라는 미술용어가 있다.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정물화 장르다. 바니타스(Vanitas)는 라틴어로 ‘허무’ ‘덧없음’이라는 뜻이다. 영어 Vanity가 여기서 나왔다. 바니타스 정물화의 주된 오브제는 해골(skull). 해골 외에도 꽃, 촛불, 과일, 모래시계 등이 바니타스 정물화에 자주 등장한다. 당대의 화가들이 바니타스 정물화를 그렸다. 그중에서 ‘블랙베리 파이가 있는 식탁’과 ‘디저트가 있는 식탁’이 유명하다.
팝아트의 황제 앤디 워홀(1928~1987)도 메멘토 모리를 주제로 작품을 남겼다. 그는 1976년부터 두개골을 이용한 실크스크린 작품 ‘두개골(skull)’을 제작했다. 1977년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두개골을 자신의 머리 위에 얹은 채 사진을 찍었다. ‘두개골을 얹고 있는 자화상’이라니! 앤디 워홀이 아니라면 어느 누가 이런 발칙한 상상을 할까.
체코 프라하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프라하성(城)이다. 프라하성의 황금골목길을 구경하고 성 아랫마을로 가려면 꼬불꼬불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그 중간쯤의 흙바닥에 뜻밖의 조각작품이 여행객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엎드려 있는 남자의 등 위에 해골이 짓누르는 모양새다.
유교 문명권의 한국인은 죽음을 멀리한다. 내세(來世)를 말하는 기독교 문명권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그 증거는 차고 넘친다. 우리는 공동묘지와 화장시설을 무섭고 꺼림칙한 공간으로 여겨 혐오시설이라고 폄하한다. 그래서 도시에서 될수록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 두려 안간힘을 쓴다.
기독교 문명권에서는 묘지가 마을의 한 가운데, 금싸라기 땅에 떡 버티고 있다. 기독교 문명권의 장례식을 보면 유족이 오열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일본인도 마찬가지다. 소리를 죽이며 흐느낄 뿐이다. 일본인 역시 묘지를 마을이나 도심 한복판에 둔다. 나쓰메 소세키가 잠들어 있는 도쿄 조시가야 레이엔(?司ヶ谷靈園)은 주택가로 둘러싸여 있다. 독일이 사랑하는 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잠든 베를린의 묘지는 한쪽이 초등학교와 벽을 사이에 둔다.
한국인의 언어생활에서 죽음은 과장법의 하나로 일상화되어 있다. 우리는 걸핏하면 죽음을 이야기한다. 배고파 죽겠다, 목말라 죽겠다, 보고 싶어 죽겠다 하는 식이다. ‘견디지 못하겠다’가 ‘죽겠다’로 사용되는 것이다. 그런데 일상에서 죽음은 여전히 터부시된다.
내가 여러 번 본 애니메이션이 ‘코코(CoCo)’다. ‘코코’는 죽음의 세계를 정면으로 다룬 애니다. 뮤지션이 꿈인 소년 미구엘은 전설적인 가수의 기타를 만져보았다가 ‘죽은 자들의 세상’에 들어간다. 영화 상영 내내 해골들이 화면 가득하다. 코코의 메시지는 삶과 죽음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한국인이 공유하는 철학과 사상은 무엇일까. 오래전 대학교수와 이 주제를 놓고 대화한 적이 있다. 가만, 뭐였더라?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워진다. 한국인은 어떤 삶의 철학 속에서 저마다 주어진 인생을 사는가. 한국인은 대체로 철학과 사상이 빈곤하다. 대나무 속처럼 텅 비었다. 그곳을 물신주의가 지배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이라고 상찬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인간이 양심을 저버렸을 때 얼마나 추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특별검사를 지냈다는 어떤 변호사는 알고 보니 뒤로는 온갖 추악한 짓거리를 서슴지 않았고, 어떤 혁신위원장은 돈 앞에 인간의 도리를 헌신짝처럼 팽개쳤다. 140년 전 인물 도스토옙스키는 옳았다.
록펠러 재단의 설립자 존 록펠러. 그는 돈을 벌기 눈 하나 깜짝 않고 부정과 비리를 저질렀다. 악행의 화신이었다. 그가 1909년 재단설립 신청서를 접수시켰을 때 그의 행적을 잘 아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내뱉은 말은 유명하다.
“그가 어떤 선행을 하든지 간에 재산을 쌓기 위해 저지른 악행을 갚을 수는 없다.”
그가 자선사업에 눈을 뜬 것은 1894년, 나이 55세 때. 의사로부터 1년을 살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를 들은 그는 최종 검진을 위해 병원에 들어섰다. 침울하게 병원 로비를 걷는데 벽에 걸린 액자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
건강할 때 같았으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이 문구가 그의 가슴을 쳤다. 그때부터 록펠러의 인생관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3년 뒤에 록펠러재단이 출범한다. 록펠러재단은 1960년대 무명의 한국 예술가를 후원한다. 독일과 일본을 거쳐 뉴욕 땅을 밟은 백남준의 초기 정착을 도운 곳도 록펠러 재단이었다.
세상에 무서울 게 없는 사람이 개선장군이다. 라틴어인 ‘메멘토 모리’는 고대 로마에서 개선장군 입성 퍼레이드에서 기원한다. 환호, 박수, 팡파레…. 축하 행렬의 맨 뒤에 서는 일단의 그룹이 있다. 공공 노예들이다. 이들은 “메멘토 모리”를 추임새처럼 외치며 행진한다. 개선장군이 빠지기 쉬운 교만을 경계하자는 전통이다.
스티브 잡스의 인생 모토 역시 ‘메멘토 모리’였다. 그는 50세까지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이렇게 자문하곤 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죽음 앞에서는 진실로 중요한 일만 남는다.
memento mori
조성관 작가·천재 연구가
'지니어스 테이블' 운영자, 전 주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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