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날씨가 왜 이래

박상은 2023. 8. 26.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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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은 사회부 기자


누군가 한국 여행을 앞두고 이곳 여름에 대해 묻는다면 과거의 나는 이렇게 답했을 거다. ‘한창 더울 때는 30도가 넘고요, 습도가 높아서 후덥지근한 편이에요. 장마철엔 한 해 중 가장 비가 많이 내리죠.’

요즘에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조금 말이 길어질 것 같다. ‘양산 겸 우산은 늘 챙기셔야 해요. 햇볕이 무척 뜨겁거든요. 동시에 소나기가 자주 내려서 습도가 높아요. 걷다 보면 물에 젖은 건지 땀이 나는 건지 헷갈릴 정도라니까요. 오전에 폭염, 오후에 폭우가 올 수도 있어요. 집중호우가 예보되면 상상 이상의 비가 내릴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지역마다 강수량 편차가 크니까 잘 살펴보시고요. 태풍이 상륙하는 시기는 운에 맡기시는 게 맘 편해요. 날씨가 워낙 변덕스러워야죠….’

농담처럼 적었지만 반 정도는 진심이다. 최근 몇 년 새 한국의 여름은 단지 몇 가지 표현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계절이 된 것 같다. 이렇게 느끼는 게 나만은 아닌 건지 주위에서 ‘덥다’는 말만큼이나 ‘날씨가 이상하다’는 탄식이 곧잘 들린다. 그 뒤에 자연히 따라붙는 주제는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다. 모든 이상기후 현상의 원인을 기후변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기후변화를 빼놓고 이 거대한 변화를 해석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갈수록 많은 이들이 경험적으로 또 직관적으로 느끼고 있는 듯하다.

그동안 환경 관련 취재를 하면서 한국의 ‘기후변화 체감도’가 낮은 이유를 여럿에게 물었다. 일정한 기후를 가진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고 자연환경 변화가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기억에 남는다. 여름과 겨울의 기온 차이가 50도씩 벌어지다 보니 1~2도 상승하거나 떨어지는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한국에서 이상기후가 만연해져 기후위기를 피부로 느낄 경우 그건 전례 없이 큰 변화이자 전 지구적으로 위급한 사태라는 의미가 된다. 지구가 오래전부터 울린 경고음을 가장 늦게 알아채는 셈이다.

사실 한국인의 기후위기 인식은 세계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다. 글로벌 조사 네트워크(WIN)가 지난해 한국을 포함한 35개국 시민들에게 기후변화 관련 인식을 물었을 때 한국은 89%가 ‘지구온난화는 인류에게 심각한 위협’이라고 대답했다. 미국(71%)이나 일본(77%)은 물론 35개국 평균인 83%보다 높았다. ‘기후변화를 막기에 이미 너무 늦었다’고 보는 이들은 세계 평균 44%였다. 한국은 이보다 낮은 39%로, ‘늦지 않았다’고 보는 낙관론자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국민 대다수가 기후위기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있음에도 ‘기후 악당’이라는 한국의 오명은 그대로다. 온실가스 감축과 재생에너지 확대가 더딘 탓이다. 지난해 국제 기후변화대응지수(CCPI)에서도 한국은 세계 최하위권인 60위를 기록했다. CCPI는 4가지 부문(온실가스 배출, 재생에너지, 에너지 소비, 기후 정책)의 점수를 책정해 평가한다. 한국보다 더 나쁜 평가를 받은 나라는 카자흐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이란뿐이었다.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40% 감축’이라는 국가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시점은 고작 7년 남았다. 초대 국립기상과학원장을 지낸 조천호 교수는 기후위기 문제를 통합적으로 다룬 저서 ‘파란 하늘 빨간 지구’에서 시간은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라고 했다. “정부의 기후변화 목표는 의도만 표했을 뿐, 실제 해야 하는 일을 뒤로 미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부는 우리가 거부감을 느낄 만한 힘든 일을 하지 않았다.” 이 책이 나온 지 3년이 지났지만 오늘 대입해도 이질감이 없는 문장이다.

우리는 늘 과거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상상하곤 했다. 한데 내년 여름의 모습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굉장히 덥고, 위협적인 비가 내리겠지만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예측불가다. ‘몇백년 만에’ ‘기록적인’ 따위의 수식어가 붙은 자연현상이 또 일어날 것이며 이대로는 안 된다는 직감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조 교수는 이렇게 썼나 보다. “인류 문명과 자연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가르는 문턱값이 기온 상승 1.5도다. 안정된 시기에는 성실한 것만으로 충분하지만, 변화의 시기에는 감각이 더 중요하다. 그 감각의 중심에 기온 상승 1.5도라는 목표가 놓여 있다.”

박상은 사회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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