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세요. 멍멍”… 현관문 두드리던 바둑이 쿠키 [개st하우스]

이성훈,최민석 2023. 8. 26.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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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유기견 한 마리 나타나
넉살 좋게 마을 이곳저곳 기웃
미용 흔적에 기본 구령도 알아
개st하우스는 위기의 동물이 가족을 찾을 때까지 함께하는 유기동물 기획 취재입니다. 사연 속 동물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유튜브 ‘개st하우스’를 구독해주세요.

지난 2월 경기도 양주의 한 마을에 나타난 바둑이 쿠키. 쿠키는 시골 마을 이집 저집 신세를 지며 추운 겨울을 견뎠다. 하루는 이웃집 마당개의 개집에서 함께 자고, 다른 날은 편의점에 찾아가 잠을 청했다고 한다. 양주=최민석 기자

“얼마 전부터 바둑이 한 마리가 집 현관문을 두드렸어요. 저희 개랑 같이 산책하고 간식까지 얻어먹고 가더라고요. 현관문은 넘지 않고 딱 거기까지 왔다가 가더라고요. 넉살도 좋아서 하루는 옆집 개집에서 자고 다음날은 편의점에서 신세를 지고 그런 식이었죠.”
-경기도 양주 제보자 장기선(50대)씨

유기견 한 마리가 마을에 나타난 건 지난봄이었습니다. 6차선 도로변을 서성이던 녀석은 작은 마을에 들어오더니 시골 인심에 기대 끼니와 잠자리를 해결했습니다. 넉살 좋게 마을 이곳저곳을 기웃거린 덕에 녀석에게는 이름이 여럿이었습니다. 제보자 장기선씨는 쿠키라고 부르지만 편의점 사장님은 바둑이, 이웃집 할머니는 얼룩이라고 불렀어요. 이 녀석, 온 마을의 강아지였던 겁니다.

녀석이 사람 손을 탄 반려견이었던 건 분명해 보였습니다. 미용을 받은 흔적이 있었고, ‘앉아’ ‘기다려’ 같은 기본 구령도 척척 알아들었습니다. 눈치는 또 얼마나 빠른지. ‘이러다 우리 집에 눌러앉으면 어쩌나’ 걱정이 들 때면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하룻밤 신세를 지면 다음날에는 미련 없이 떠나곤 했습니다.

그렇게 요령껏 마을을 떠돌며 살아가는 쿠키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보자 기선씨입니다. 마을의 반려견이라는 말은 결국 오갈 데 없는 유기견이라는 뜻이니까요. 기선씨는 녀석이 차가 오가는 시골길을 오가다 사고를 당할까 매일 조마조마했습니다. 걱정하고 고민하기를 몇 개월. 결국 기선씨는 쿠키를 구조해 입양 길을 열어주기로 결심합니다.

밥 동냥 다니는 시골 유기견

기선씨가 경기도 양주의 전원주택으로 이사 온 것은 3년 전. 남편과 함께 고단한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30가구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에 정착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사소한 경조사도 함께 나눌 만큼 가까운 사이였고, 덕분에 기선씨 가족도 빠르게 뿌리를 내렸습니다.

14살 늙은 고양이를 기르는 기선씨는 전원주택에 온 뒤 강아지도 한 마리 키우게 됐습니다. 3년 전 전원주택을 매입할 당시 전 주인이 키우던 ‘뚜비’입니다. 뚜비는 원래 마당개였어요. 하지만 야외에서 비바람을 견디는 그 모습이 딱해 기선씨가 입양 한 달 만에 목줄을 풀어 실내 반려견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던 지난 2월, 기선씨와 반려견 뚜비의 산책길에 웬 낯선 개가 다가왔습니다. 작은 시바견 크기(9㎏)의 바둑이였습니다. 녀석은 뚜비와 킁킁, 냄새를 맡더니 오랜 친구처럼 그날 산책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산책을 마치고 귀가할 때에는 넉살 좋게도 현관문 앞에서 기선씨가 주는 물과 간식까지 얻어먹고는 어디론가 떠났습니다. 기선씨는 “애견 미용한 것처럼 털이 단정하고 성격도 좋아 처음에는 이웃집에서 풀어 키우는 개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합니다. 이후로도 녀석과의 기묘한 만남은 계속됐습니다.

그러던 중 마을 모임에서 듣게 된 바둑이의 속사정. 알고 보니 녀석은 지난겨울 도로변에 돌연 나타난 유기견이었고, 기선씨 말고도 이집 저집 신세 지며 추운 겨울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이웃이 키우는 마당개와 사료를 나눠 먹고 개집에서 함께 잠을 잤고, 또 다른 날은 편의점에 찾아가 사장님이 깔아준 담요에서 편안하게 자고 가기도 한답니다. 온 마을이 돌보는 강아지였던 겁니다.

사실 유기견 한 마리를 구조해 돌보는 건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좋은 가족을 찾아줄 수 없다면 차라리 구조하지 않는 게 나을 때도 있습니다. 자칫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안락사를 기다리는 신세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마을 주민들은 가엾은 녀석을 유기동물센터에 신고하지 말고 지금처럼 잘 챙겨주자고 입을 모았습니다.

“떠돌이 삶 그만, 가족 찾아줄게”

마냥 환영받을 수 없는 유기견의 처지를 잘 알았던 걸까요. 쿠키는 어느 한 집에 길게 신세를 지는 일이 절대 없었습니다. 기선씨는 “염치가 있다고 할까. 부담 주지 않는 선에서 산책하고 얻어먹고 스스로 떠나는 모습이 짠했다”고 말합니다. 아침이면 산책길에 마주치고, 점심에는 반려견 끼니에 맞춰 현관문을 두드리던 녀석. 하루하루 시간이 포개지면서 쿠키는 어느새 기선씨의 삶에 스며들었습니다. 기선씨는 “어느새인가 쿠키가 보이지 않는 날이면 ‘밥은 먹었나, 잠은 어디서 자나’ 궁금해졌다”고 말합니다.

그런 쿠키가 기선씨의 마음을 흔드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난 6월, 기선씨는 가족여행을 가느라 5일간 집을 비웠습니다. 제법 긴 시간이어서 쿠키와 멀어질까 걱정했다고 해요. 그런데 5일 뒤 전원주택에 도착한 기선씨 앞에 쿠키가 달려왔습니다. 현관문 앞에 웅크리고 있던 쿠키는 마치 반려견처럼 기선씨 가족을 반겨줬다고 합니다. 기선씨는 “나그네처럼 대했던 예전과는 상황이 달라졌다”며 “그날 이후 쿠키를 직접 보호하며 가족을 찾아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14살 노묘에 5살 반려견을 키우고 있던 터라 공간이 충분치 않았습니다. 자칫 무리하게 합사를 시도하면 갈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기선씨는 동물구조단체 ‘생명공감’의 조언을 받아 쿠키가 중성화 시술을 받도록 하는 등 기존 반려동물과의 합사를 신중하게 준비했습니다.

사진은 제보자 장기선씨에 의해 구조된 뒤 기선씨의 반려견과 반려묘와 함께 있는 쿠키의 모습. 모두 성격이 느긋해서 잘 어울리는 편이라고 한다. 장기선씨 제공
영리한 쿠키의 가족을 기다립니다

지난 8일, 국민일보는 양주의 전원주택에서 쿠키를 만났습니다. 이날 현장에는 쿠키의 입양 적합도를 평가하기 위해 13년 차 행동전문가 미애쌤이 함께했습니다.

쿠키는 구조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반려견으로 거듭난 모습이었습니다. 기선씨의 느긋한 발걸음에 속도를 맞추는 등 훌륭한 산책 매너를 보였습니다. 배변도 잘 가려서 마당 혹은 산책길에서만 볼일을 처리했습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다른 동물과의 합사였습니다. 사회성 좋은 쿠키는 문제가 없지만 예민한 고양이는 쿠키와 합사한 이후 현관에 소변을 보는 등 스트레스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는 다른 동물과 생활 영역이 겹칠 때 고양이들이 흔히 보이는 반응입니다. 미애쌤은 “고양이를 위해서 생활공간을 최대한 분리해야 한다”면서 “특히 사료 그릇, 은신처 위치를 개가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으로 옮기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습니다. 물론 최선의 해결책은 쿠키가 좋은 가족의 품으로 떠나는 것이겠습니다.

영리한 바둑이, 쿠키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기사 하단의 입양신청서를 작성해주시길 바랍니다.

■“도와주세요 멍멍” 영리한 바둑이, 2살 쿠키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쿠키의 입양정보
- 1~2살 추정, 중성화 암컷
- 9㎏, 건강함(전염병 x)
- 짖음이 없고, 사람을 좋아함
- 야외배변 100%, 깔끔한 성격

■아래 입양신청서를 작성해주세요
- https://naver.me/FawMVAr2

■쿠키는 개st하우스에 출연한 118번째 견공입니다(96마리 입양 완료)
- 입양자에게는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로얄캐닌이 동물의 나이, 크기, 생활습관에 맞는 ‘영양 맞춤사료’ 1년치(12포)를 후원합니다.

양주=이성훈 최민석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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