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도 野도 “수도권 위기”… 엄살인가? 현실인가?
“우리 당이 수도권에서 위기가 아닌 적이 있었나요?”
최근 정치권을 습격한 ‘수도권 위기론’에 대해 수도권의 한 여당 의원이 이같이 반문했다. 국민의힘에서 거론되는 위기론은 지난 21대 총선에서 수도권 121석 중 16석만 가져온 최악의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인데, 이것이 ‘과대 포장’된 측면이 있다는 반론이었다. 국민의힘 지도부 핵심 관계자도 “당은 정해진 총선 스케줄대로 순항하고 있고, 수도권 위기론은 실체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수도권 위기론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 여권 내부에서는 ‘분열 조짐’보다는 ‘전열 정비’의 기회로 삼자는 목소리가 커지는 모양새다.
여당의 수도권 위기론은 “당 자체 여론조사에서 수도권은 거의 전멸하는 것으로 나왔다”는 신평 변호사의 지난 3일 발언에서 시작됐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신 변호사가 언급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사실이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수도권 중진인 안철수(경기 성남 분당갑)·윤상현(인천 동·미추홀을) 의원과 비윤(비윤석열)계 하태경(부산 해운대갑) 의원이 수도권 위기론에 동조하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현재 여론조사상 지지율만 놓고 보면 국민의힘과 위기론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한국갤럽의 정당 지지율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서울에서 최근 4주 연속 더불어민주당에 앞섰다. 인천·경기에서도 8월 첫째주를 제외한 나머지 3주간 국민의힘 지지율은 민주당을 앞서거나 비슷한 수준이었다. 21대 총선 때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이 서울에서 49석 중 8석, 인천·경기에서 72석 중 8석을 겨우 건지면서 참패했던 것을 감안하면 꽤 선전하고 있는 셈이다.
수도권 위기론의 기저에는 ‘인물난’이 자리 잡고 있다. 당 지지율이 무색할 만큼 내보낼 ‘선수’가 없다는 것이다. 안 의원은 지난 9일 KBS라디오에서 “각 지역에서 인지도가 있고 능력 있는 분들이 작년 지방선거 때 지자체장으로 대거 당선되거나 공공기관장으로 갔다”고 말했다. 한 초선 의원도 “수도권은 당협위원장 공모를 해도 괜찮은 인물이 나서지 않고 있다”며 “용산과 당 지도부 눈치만 보며 다들 숨죽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런 우려가 ‘기우’라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경각심을 주는 수준을 넘어 ‘위기를 부르는’ 위기론은 과하다는 것이다. 당 지도부 고위 관계자는 “아직 인재영입위원회가 본격 가동되지도 않았다”면서 “때가 되면 인재들이 물밀듯 몰려올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당협위원장도 “유의미한 판세 분석은 공천 신청이 시작되는 12월이나 돼야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 일각에선 유권자 3명 중 1명꼴인 무당층 비율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갤럽의 8월 둘째주 조사에서 서울의 무당층 비율은 29%, 인천·경기는 27%로 나타났다. 다만 한 재선 의원은 “무작정 위기론을 외치기보다 무당층을 겨냥한 ‘기회론’을 주장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민주당도 수도권 위기론을 피해가지 못했다. 가장 큰 원인은 각종 ‘사법 리스크’다. 이재명(인천 계양구을) 대표와 가상자산(코인) 보유 논란으로 탈당한 김남국(경기 안산 단원을) 의원,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으로 탈당한 윤관석(인천 남동을)·이성만(인천 부평갑) 의원의 지역구는 공교롭게도 모두 수도권이다. 사법 리스크가 수도권 표심에 미칠 영향을 민주당 지도부가 예의주시하고 있는 이유다.
친명(친이재명)계와 비명계의 첨예한 갈등도 표심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서울의 한 민주당 의원은 “야당은 서울에만 41명의 현역 의원이 있기 때문에 공천 공정성이 깨질 경우 서울에서부터 야권 분열이 시작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 고위 관계자도 “화합만이 답이다. 야당은 쪼개지면 끝”이라고 말했다.
전체 지역구 의석 253석 중 절반에 육박하는 121석(21대 총선 기준)이 몰린 수도권에서 승부를 보려고 하는 민주당은 수도권 민심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국갤럽은 매월 ‘여당 다수 당선’(정부 지원론)과 ‘야당 다수 당선’(정부 견제론) 응답률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데, 지금까지는 서울과 인천·경기를 통틀어 정부 견제론이 정부 지원론을 앞섰다. 지난달 서울에서 정부 견제론(56%)과 정부 지원론(34%)의 격차가 22% 포인트에 달했으나 이달에는 3% 포인트(43%대 40%)로 좁혀졌다(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에 민주당 내부에서 “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만 수도권 위기론은 ‘시기상조’라는 반론도 있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향후 정국의 변수가 굉장히 많은데 벌써부터 위기론을 운운하는 건 좀 ‘오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천 싸움이나 계파 갈등 같은 정계 개편 이슈가 아직 수면 위로 올라온 것도 아니다. 본격적인 갈등은 어차피 공천 시즌이 되면 무조건 불거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의 수도권 위기론은 선거공학적인 성격이 짙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자기편이 좀 더 투표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위기론이 유용하다. 정치인들은 원래 이겨도 이긴다고 하지 않는다”면서 “각 진영의 지지층 이탈을 막는 전략적 판단이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구자창 박장군 박성영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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