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내리는 커피] 커피공화국의 뿌리

2023. 8. 26.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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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세계를 휩쓴 코로나 팬데믹은 나라마다 대처하는 방식에서 차이점을 드러냈다.

커피를 대하는 태도도 나라마다 달랐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커피 수입이 줄었지만 우리나라는 유독 늘었다.

코로나 팬데믹에 비할 수 없는 재난이었던 6·25전쟁 중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커피 사랑은 유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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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교육학과)


지난 몇 년 세계를 휩쓴 코로나 팬데믹은 나라마다 대처하는 방식에서 차이점을 드러냈다. 백신을 맞는 나라와 거부하는 나라, 국가가 적극 대처하는 나라와 시민들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나라, 하루에 수만명이 사망해도 조용한 나라와 수십명이 죽어도 시끄러운 나라가 있었다. 커피를 대하는 태도도 나라마다 달랐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커피 수입이 줄었지만 우리나라는 유독 늘었다. 언제부터 우리는 커피에 이토록 진심이었을까? 우리는 왜 이렇게 커피를 좋아할까?

코로나 팬데믹에 비할 수 없는 재난이었던 6·25전쟁 중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커피 사랑은 유별났다. 자고 나면 느는 것이 다방이었고, 다방마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로 붐볐다. 당시에 발표된 소설이나 수필 등 문학 작품에는 커피와 다방 풍경이 자주 등장한다. 신문마다 커피값 인상 소식은 넘쳐났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가을 미국으로 건너가 8개월의 연구 생활을 마치고 유럽을 시찰한 후 돌아온 유진오 교수는 신문에 ‘구미시찰담’을 실었다. 조선일보 9월 10일자에 실린 ‘본받을 내핍생활’이란 글에서 유 교수는 영국 사람들이 커피 대신 콩가루 같은 대용품을 마시기 때문에 특별히 부탁하지 않으면 우리가 한국에서 마시는 그런 좋은 커피는 구경할 수 없었다고 기록했다. 영국인들이 전후 복구를 위해 내핍생활을 하던 당시 우리는 좋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대용 커피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아무리 가난해도 책을 가까이하고, 시 짓고 그림 그리고, 차 마시기를 즐기던 문화민족이었다. 식민지 지배와 전쟁은 이런 우리 민족에게 문화생활의 유보를 강요했다. 잠재해 있던 문화 결핍증이 해방과 함께 폭발했다. 억눌렸던 교육열이 폭발했던 것과 같았다. 그래서인지 해방과 함께 ‘문화’란 말이 크게 유행했다. 지금도 쓰이는 ‘문화인’ 혹은 ‘문화예술인’이란 말이 신문과 잡지에 많이 등장했다. 접두어로 쓰이는 ‘문화’는 품위 있는 사람이나 생활양식을 의미했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문화인 대접을 받았다.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다방문화인’이었다. 커피를 마시는 가정은 문화가정이었고, 커피를 마시기에 적합한 서양식 집은 문화주택이었다. 연필 이름, 책방 이름 등에 ‘문화’라는 단어가 많이 붙여졌다. 문화인이 되고자 하는 이런 욕구가 커피 열풍을 가져왔다.

이런 소문은 외국에도 전해졌다. 1953년 1월 국제청년상공회의소 소장인 필리핀 뷔라누에바 일행이 12개국에서 전달받은 구호품을 가지고 입국했다. 12개국에는 필리핀, 쿠바와 함께 과테말라가 포함돼 있었고, 과테말라는 특산물인 커피를 다량 보내왔다. 이런 소식이 신문에 실렸고, 한국인들은 환호했다. 한국인들의 커피 사랑 소식이 중앙아메리카의 낯선 나라에까지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커피를 포함한 구호품을 전달하면서 뷔라누에바는 한국인들이 ‘긍지 높은 국민’으로 다시 일어설 것을 기원했다. 코리아, 과테말라로부터 커피를 지원받고 필리핀으로부터 위로를 받던 나라였다.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교육학과) leegs@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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