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너머만 봐도 평안… 온종일 멍때리다 하나님 만났다

전병선 2023. 8. 26.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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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선 기자의 교회건축 기행] <4> 강화 멍때림채플
강화도 멍때림채플의 앞쪽 실내 모습. 단상 뒤 유리창을 통해 마을과 바다, 장봉도, 영종도가 보인다. 성도석에 앉으면 하늘만 보여 멍때리면서 묵상하기 좋은 곳으로, 강화도에 가볼 만한 장소로 꼽힌다. 강화=신석현 포토그래퍼


미국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는 현대인에게 제3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제1의 공간은 집, 제2의 공간은 직장이고 제3의 공간은 편안하고 즐겁고 쉴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다. 타인이 있어 의식하고 소통하지만 방해는 받지 않는 공간, 나를 찾고 새로운 영감도 얻는 공간을 말한다.

인천 강화도에 있는 멍때림채플(임재훈 목사)은 여기에 영성을 더한 곳이다. 성경 말씀을 통해 영적인 눈과 귀가 열릴 수 있는 공간이다. 채플의 단상을 바라보고 앉아 세상과 유리된 공간에서 나와 동행하고 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고 묵상할 수 있는 장소다. 멍때리면 더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하다 이름이 됐다. 이은석 경희대 건축과 교수가 설계했다.

멍때림채플의 외관은 큐브 형태다.


채플 공간은 이렇게 생겼다. 80㎡(24.5평)에 작은 공간 전체를 노출 콘크리트로 마무리했다. 일체의 장식을 배제하고 표현을 최소화해 미니멀리즘을 떠올리게 한다. 예배당 앞과 뒤를 구분케 하는 나무 단상이 하나 있다. 등받이가 없어 앞뒤 구분할 수 없는 장의자 12개가 두 줄로 놓여 있다.

여기에서 시선을 압도하는 것은 단상 바로 뒤편에 있는 유리창이다. 왼쪽 벽면의 끝에서 오른쪽 벽면의 끝까지 창으로 돼 있다. 창밖의 시선은 탁 트여 있다. 유리창의 좌우 구석엔 건물 옆 나무의 가지와 잎새가 보이고, 언덕 바로 아래엔 평원이 펼쳐져 있다. 그 끝엔 바다가 보이고 안개 너머 어렴풋이 장봉도, 영종도가 보인다. 안개 때문에 한 폭의 수묵화 같다.

성도석에 앉으면 창 너머 풍경은 사라지고 하늘만 보인다. 보이는 것이 단순해지면서 생각도 단순해진다. 지난 14일 만난 임재훈 목사는 그 순간이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메시지로 선포되거나 기억 속에서 떠오를 때 하나님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복음이 그렇게 전해진다고 강조했다. 이 순간이 멍때림채플의 클라이맥스라고 설명했다.

멍때림채플의 3가지 얼굴

멍때림채플은 문화공간 ‘멍때림’의 한 부분이다. 멍때림에는 카페, 도서관, 갤러리 등이 있다. 모두 문화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도구다. 공간 곳곳에 성경 말씀이 붙어있다. 앞으로 수백 개를 더 붙여 놓을 것이라고 한다.

“공간을 만들고 찬송을 들려주지만 그것만으로는 완전하지 않잖아요. 이래저래 둘러보다 ‘뭐가 있네’ 딱 보니까 말씀이 있는 거예요.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가 하나님 역사 속에서 치유되고 신앙이 회복되고 예수를 영접하게 하자는 게 이 공간의 궁극적 목적이에요.”

예배를 통해 복음도 전한다. 매주 일요일 오전 9시 30분, 오후 1시에 예배가 있다. 채플은 독립교단에 소속돼 있다. 등록된 교인은 없고 이곳을 찾은 방문객이 메시지 선포의 대상이다.

멍때림채플은 3가지 모습을 갖고 있다. 예배당이자 갤러리고 공연장이다. 하늘과 빛과 소리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예배당 앞쪽이 하늘의 채플이라면 뒤쪽은 소리의 채플이다. 노출 콘크리트 벽면 가운데 오르겔(파이프오르간)이 박혀있다. 대형교회의 오르겔에 비하면 미니 수준이지만 이 공간 크기와는 완벽한 조합이다. 이 역시 미니멀리즘의 극치다.

임재훈 목사가 콘크리트 벽면에 설치된 오르겔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날은 연주회가 있었다. 공연을 보기 위해 예약하고 강화를 찾은 60여명이 앉아서 오르겔 연주를 감상했다. 공연은 무료, 1주일에 월·토·일요일 3번 한다. 7월 오픈하고 40회 공연, 연인원 1100여명이 다녀갔다. 오르겔은 홍성훈 오르겔바우마이스터(파이프오르간 제작 명장)가 설치했다.

사실 채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따로 있다. 단상의 오른쪽 벽면 전체에 구현된 ‘빛의 예술’ 스테인드글라스다. 입으로 불어서 만든 블로잉 스테인드글라스인데 열두 제자를 상징해 12개를 만들었다. 스테인드글라스 작가 정경미씨 작품이다. 여러 색을 화려하게 쓰지 않고 기본 연두색에 충실한 것도 특징이다. 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계절마다 다른데 겨울이면 채플의 반대편 벽면까지 닿는다고 했다.

스테인드글라스 작가 정경미씨가 멍때림채플에 설치한 작품.

문화공간 멍때림, 팬덤을 기대하며

멍때림채플은 코로나 때문에 3년 걸려 완공, 올 4월에 입당했다. 그 과정에서 규모가 3분의 1로 축소됐다. 하지만 그 덕에 하늘과 빛과 소리의 채플로 최적화됐다고 임 목사는 말했다.

대지 2만9752㎡(9000여 평)에 건물 3개로 이뤄진 멍때림은 2020년 4월에 오픈했다. 임 목사는 부평 산곡교회 원로목사로 29살에 교회를 개척하고 성도 수가 1000여명 넘어갔을 때 기도원 세울 목적으로 땅을 물색했다. 딱 맞는 공간을 20여년간 모색하다 찾은 곳이 이곳이다.

멍때림은 언덕의 맨 위 채플부터 묵상갤러리 도서관 게스트룸 카페로 구성돼 있다. 도서관에는 상한 마음을 치유하는 600여권의 책이 있다. 카페는 유럽풍의 인테리어와 소품으로 디자인됐다.

“멍때림 전체를 새로운 형태의 교회라고 보면 좋겠습니다. 기존 교회가 사람을 데려온다고 한다면 우리 교회는 스스로 찾아오게 하는 교회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 내린 결론이 문화이고 공간입니다. 문화를 통해 복음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 온종일 있어도 지겹지 않은 공간, 이것이 멍때림입니다.”

이제 말 그대로 사람들이 찾아오게 하는 일만 남았다. 임 목사는 말씀을 통한 완전한 치유와 회복과 구원을 위해 독특하고 다양한 콘텐츠 제작을 고민하고 있다. 무엇보다 멍때림의 비전을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팬덤을 구축하고 싶다며 관심 있는 이들의 많은 기도와 연락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강화=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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