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하게 리셋”…침수 한달, 다시 문 연 청주 안경점 [사연뉴스 그후]
가게 천장·바닥 빼고 싹 바꿔야했지만 “얻은 게 더 많아”
지난달 15일 충북 청주시를 덮친 폭우로 온통 물에 잠겼던 안경원을 기억하시나요? 국민일보는 당시 “한 달에 두 번 망했지만, 이겨내고 다시 시작하겠다”고 다짐한 사장의 사연을 전했는데요. (7월 18일, 폭우 휩쓴 청주 안경점 “두 번 망했어도 한 번 더”[사연뉴스] 참조)
올해 5월 주변 재개발로 인해 한 번 폐업한 뒤 강내면에 새로 문 연 가게가 폭우 피해로 또 문 닫을 위기에 처했지만 ‘용기 내 보겠다’던 그의 이야기에 수백 개의 공감과 응원 댓글이 쏟아졌었죠.
그 안경원이 한 달 만에 수해를 극복하고 지난 10일 손님들에게 문을 활짝 열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처음 침수 소식을 알렸던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게가 침수됐을 뿐, 더 많은 걸 얻었다”며 당차게 복귀 신고를 한 것인데요.
사장 유남규(36)씨는 지난 23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또 한 번 씩씩하게 복구 과정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지난달 16일 폭우가 휩쓸고 간 안경원은 그야말로 물바다였습니다. 안경 진열대는 둥둥 떠다녔고, 고가의 장비들도 물에 쫄딱 젖어 있었죠. 빗물이 빠지자 진열대는 와장창 무너졌고, 성한 제품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유씨는 “가게에서 천장과 바닥 빼고는 다 버렸다”며 “깔끔하게 리셋(초기화) 버튼을 눌렀다”고 했습니다.
먼저 가게 내부 폐기물을 치워 버리고, 빗물을 말렸습니다. 아버지와 오랜 친구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해낼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 후 가게 내부의 모든 것을 교체했다고 합니다. 안경과 선글라스, 콘택트렌즈 등 제품을 모두 새것으로 준비했습니다. 새로 사들이는 데만 2000~3000만원이 들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고가의 검안 기계와 제작 기계 등 장비였습니다. 통상 안경원들은 2000~4000만원 정도 하는 광학기계를 한번 구입한 뒤 15년 이상 쓴다고 합니다.
새로 들인 기계를 모두 못 쓰게 된 유씨의 딱한 사정을 듣고 업체에선 중고 장비를 낮은 가격에 내줬습니다. 또 안경원 개업 당시 도배 작업, 진열장 설치 등을 맡았던 업체들이 복구를 위해 저렴하게 작업을 해줬습니다.
주위의 도움 덕분에 복구 작업을 마친 유씨는 “이전보다 더 좋은 매장이 됐다”며 “청소를 모두 마치고 입구에서 가게를 바라보는데 마음이 너무 벅찼다”고 전했습니다.
유씨는 “(복구 과정이) 순탄했다”고 표현했지만, 물 폭탄에 뒤집힌 가게를 치우는 작업이 마냥 쉬웠던 건 아닙니다. 유씨에게도 몸도 마음도 너무나 고됐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한 소방관의 말 한마디가 유씨를 정신 차리게 했다고 합니다.
그가 빗물이 휩쓸고 간 가게에서 막막해하며 작업하고 있던 순간, 한 소방관이 호스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소방관은 유씨에게 “물청소해드릴 테니 바로 말해 달라. 빨리빨리 하셔야지 청소를 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유씨는 그 소방관의 말을 듣는 순간 “‘심쿵(심장이 쿵)’했다”고 회상했습니다. “수재민이라고 걱정하는 데서 그친 게 아니라, 얼른 정신 차리라는 듯이 말씀해주셔서 감사했다”는 겁니다.
유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복구 소식을 전한 글에서도 “소방관들 외에도 자원봉사자나 군인들이 자기 일처럼 열심히 복구 도와주는 모습이 진짜 멋졌다” “이런 일을 겪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것”이라며 도와준 분들께 거듭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고마운 이들은 이뿐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문을 연 안경원에 저 멀리에서 찾아온 손님들도 생겼습니다.
유씨는 “일부러 가게가 복구되는 걸 기다렸다가 찾아오셨다고 한다”면서 “요새 주변 분들의 따뜻한 마음을 많이 느끼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일로) 너무 좋은, 너무 따뜻한 사람들을 몸소 겪었다”며 “침수가 아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번 일로 인생의 가치관이 정말 많이 달라졌다”고 밝혔습니다.
유씨는 아직 일상을 되찾지 못한 이웃 상인들 걱정도 덧붙였는데요. 그는 “안경원은 기사를 통해 사연이 알려지면서 멀리서 찾아온 손님도 생겼지만, 복구를 못 한 주변 상인도 많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특별히 긍정적이거나 힘을 잘 내는 사람도 아니다”며 “비슷한 상황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마다 방법이 달라도, 누구나 자신 같은 상황이 닥치면 다시 일어서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겸손의 말이었습니다.
직접 연락해보니 안경원 인근 상가 대부분이 유씨 가게와 다를 바 없이 완전히 ‘갈아엎는’ 수준의 복구 작업에 매진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엔 다시 문을 연 카페도 있었고, 아직 공사를 마치지 못했다는 식당도 있습니다. 부단히 노력했지만, 눈물을 머금고 폐업을 결정해야 했던 가게도 있었습니다.
저마다 속도나 방법이 다를 뿐, 자연재해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던 상황에서 다시 일어서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유씨 말처럼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갑작스러운 일로 삶이 꼬인 듯 답답할 때도 있지만, 결국 그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면서 살아나가니까요.
폭우 피해 한가운데서 “두 번 망했지만 다시 일어난” 유씨도, 묵묵히 다시 일어서기 위해 애쓰고 있는 이웃 상인들도, 그리고 저마다의 노력으로 삶을 일궈가는 우리 모두를 응원합니다.
김영은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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