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농장 폐쇄 후 ‘농장개’들에게 생긴 일 [개st하우스]
농장 개에서 반려견으로 견생2막 준비 과정
“이 친구는 8개월령 진돗개 폭스입니다. 지난봄 개농장에서 구조된 200마리 중 한 마리에요. 몸이 약해서 제가 직접 이유식을 떠먹이고 행동교육도 해준 녀석을 캐나다로 떠나보냅니다. 좋은 곳으로 가는 거지만 헤어지려니 눈물이 납니다. 함께 못해서 미안해, 미안해….”
지난 18일 정오 인천국제공항 제1화물터미널 앞 하역장. 25개의 대형 이동장 주위에 행동전문가와 동물단체 활동가 10여명이 모였습니다. 이동장 안에 담긴 건 생후 8개월 된 어린 진돗개와 도사견 25마리. 지난 3월 충남 아산의 개농장에서 구조된 뒤 사설 보호소에서 지내다 이날 캐나다로 출국하게 된 친구들입니다. 아직 입양이 확정된 건 아닙니다. 농장개는 몸집이 커서 성견이 되면 국내 입양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캐나다로 일단 거처를 옮겨 현지에서 입양자를 모집할 계획입니다. 북미에서는 대형견 입양이 보편화돼있어 가족을 찾는 게 훨씬 수월합니다.
약 2시간에 걸쳐 출국 심사가 진행됐습니다. 북미로 출국하려면 광견병 예방접종 등을 완료한 생후 8개월 이상 강아지라는 걸 증빙하는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공항 요원들은 이동장에 부착된 서류를 통해 개들을 심사했습니다. 또 공항 측은 이동장마다 개들이 먹고 마실 사료와 물통이 설치됐는지 동물복지 기준도 점검합니다. 10시간 넘는 장시간 비행에 대비한 조치입니다.
심사가 진행되는 내내 하역장에는 인파가 붐비고 항공기 소음으로 시끄러웠지만 개들은 한 마리도 짖지 않고 이동장에서 대기했습니다. 장시간 비행에 대비해 이동장 교육을 꾸준히 받은 덕분입니다. HSI의 협력단체 한스의 박시우 국장은 “5개월간 이동장에서 먹고 자는 연습을 했다”며 “처음에는 10분이 고작이었으나 이제 10시간 넘게 머물 수 있게 돼서 장시간 비행에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제 탑승할 시간. 활동가들은 이동장 겉면에 영어로 ‘사랑한다’ ‘행복해라’ 같은 인사말을 적은 뒤 개들을 이동장째 한번씩 안아주는 것으로 작별 인사를 마쳤습니다. 가족처럼 돌본 개를 떠나보내는 것은 베테랑 활동가에게도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HSI 협력단체인 도담의 김동우 대표는 “유기견 보호소를 시작한 2013년부터 돌본 2000마리의 얼굴과 이름을 전부 기억한다”면서 “좋은 가족을 만나 행복해하는 사진을 꼭 받아보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보신탕집에서 마지막을 맞았을 농장개들이 캐나다에서 견생 2막을 맞을 수 있게 건 HSI의 ‘변화를 위한 모델’ 캠페인 덕입니다. 이 캠페인은 개농장을 고소, 고발하는 대신 농장주를 설득해 전업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개농장을 폐쇄해나가고 있습니다. 갈등 대신 지원과 타협을 택한 이런 접근법은 성공적이었습니다. 2015년 캠페인 시작 후 HSI가 폐쇄한 개농장이 무려 18곳이나 됩니다.
사실 개농장 폐쇄 자체보다 더 중요한 건 농장개의 행복한 삶이죠. 하지만 국내에서 구조된 농장개들이 입양돼 가족을 만나는 건 쉽지 않습니다. 개농장을 폐쇄해 시보호소에 보낼 경우 입소할 공간이 부족해 대다수는 안락사 처리되는 게 현실입니다. 고기를 목적으로 사육된 농장개들은 대부분 대형견들이어서 가뜩이나 쉽지 않은 국내 입양 성공률이 더 낮아지기 때문이죠. 개농장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보내다 도살되는 것보다 낫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안락사가 더 나은 대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HSI는 개농장 폐쇄와 함께 해외입양을 적극적으로 추진합니다. 아산의 농장개들도 성견 150마리는 곧장 미국으로 떠났고, 갓 태어난 퍼피와 어미개 50마리는 생후 8개월을 채울 때까지 국내 협력단체인 도담과 한스의 보호소에서 돌보다가 이번에 HSI의 캐나다 직영 보호소로 이송하게 된 겁니다. 나머지 개들도 10월까지 출국이 완료됩니다. HSI가 이렇게 해외로 떠나보낸 개들이 지금까지 2700마리쯤 됩니다.
개농장은 대부분 음식물 쓰레기로 운영됩니다. 따라서 개농장주들은 지자체에 음식폐기물 수집‧운반업 허가를 받아 인근 아파트, 식당 등을 돌며 잔반을 모아야 하죠. 28년간 농장을 운영해온 양씨의 경우 200마리 개들을 먹일 만큼 음식쓰레기를 모으기 위해 새벽 6시부터 동네를 돌아야 했습니다. 적대적인 환경에서 개들을 사육하는 만큼 사고도 잦습니다. 양씨 역시 몇 달 전 농장개에게 물려 왼손 검지가 잘리는 중상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견디다 못한 양씨는 개농장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시청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개를 처분할 방법이 없었죠. 그러던 중 담당 공무원의 소개로 HSI의 지원을 받게 됐습니다. 양씨는 HSI에 개들을 인계하고 현재는 개농장 터에 고추, 파, 고구마 등 농작물을 기르고 있습니다. HSI 지원금으로 시설을 폐쇄하고 개농장을 밭으로 일군 겁니다. 양씨는 “대형 화물차를 몰다 지쳐 귀농한 뒤 개농장에 손을 댔는데 어느새 28년이나 흘렀다”면서 “시민단체 도움으로 개들을 좋은 곳에 보내며 많은 것을 배웠다”고 전했습니다.
아산 개농장 폐쇄는 사람도, 개들의 삶도 개선된 모범사례입니다. 국내 개농장 대응을 담당한 HSI 이상경 팀장은 “HSI가 개를 구조할 뿐만 아니라 농장주의 전업도 돕는다는 소문을 듣고 도움을 요청하는 개농장이 많다”고 소개합니다.
아산 농장 개들의 해피엔딩은 고민거리를 던집니다. 문을 닫는 개농장은 점점 늘어나는데 구조한 개들을 처리할 구체적인 기준이 없습니다. 현재는 각 지자체의 공공보호소로 수백마리가 일거에 입소해 집단 안락사 절차를 밟는 수준입니다. 시민단체가 수용해 입양되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농장 개를 처분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보니 담당 공무원들은 개농장을 단속하고 철거하는데 소극적이죠.
현재 국회에는 개식용 산업을 종식하려는 입법안이 다수 발의된 상황입니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발의한 ‘개식용 종식을 위한 특별법’, 국민의힘 이헌승 의원의 ‘개식용 금지 및 폐업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이 대표적입니다. 여야안 모두 ▲식용 목적의 개 사육‧도살 금지 ▲개농장 등 개식용 관련 업종의 폐업 및 전업 지원 ▲관련 시설에 계류 중인 개를 지자체에서 보호할 의무 등이 담겨 있습니다. 반가운 움직임이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대책 없이 지자체에 보호 의무만 부과할 경우 구조된 농장개의 집단 안락사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동물단체에서는 정부가 최소한의 구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현실적으로 모두 살리는 게 어렵더라도 노력은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HSI의 채정아 대표는 “뾰족한 해법을 마련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이제라도 농장개 처우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동물단체 관계자는 “모든 농장개를 살릴 수는 없지만 아무 노력도 없이 살처분하는 상황만큼은 피해야 한다”면서 “시민단체, 관계부처 담당자가 모여 실효성 있는 구조 대책을 마련할 때”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성훈 기자 전병준 PD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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