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 중독인 당신에게 전하는 탈주 후기

전혜진 2023. 8. 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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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은 태산인데•••. 멍하니 쇼츠와 릴스만 보며 죄책감을 쌓던 두 에디터는 결심했다. 딱 24시간만 탈주해 볼까?
「 혼자서는 어려워! 」
오은영 쌤의 말이 이토록 위로가 된 적 있었나. ‘맞아, 나는 게으름뱅이가 아니라 태산 같은 일을 제대로 해내기 위한 예열 시간을 갖는 완벽주의자거든.’ 고개를 끄덕이지만 동공은 흐리멍텅하다. 평일에는 주말만 되면 세상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액정만 보다 하루를 다 쓴다. 쉼과 실천의 경계에서 무감한 얼굴로 르세라핌의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 챌린지, ‘랄랄언니’의 기 싸움, ‘배방구’했다고 눈으로 주인을 욕하는 강아지, 통대창 먹방의 알고리즘에 나를 태운다. 차라리 잠이라도 푹 자면 좋을 텐데. 몸은 더 피로해지고, 자책감과 무력감이 온 몸을 감싼다.

그래서 결심했다. 24시간만 폰을 꺼보기로! 철 지난 유행인 줄 알았던 디지털 디톡스, 아니 신개념의 ‘숏폼 디톡스’가 절실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숏폼 디톡스는 실패다. 계절이 온몸으로 와닿는다거나 채소의 단맛을 잘 느끼게 됐다는 예쁜 후기를 적으려 했는데…. 처음 몇 시간은 견딜 만했다. 겨우 방을 청소하고, 밀린 집안일을 하는 것까지는 좋았다. 커피를 내리고 시집을 읽으려는데, 문득 ‘지금 이렇게 사치 부릴 때가 아닌데?’ 하는 생각에 불안해졌다. 스마트폰 대신 노트북을 열었다가 PPT와 메모장 화면을 보는 순간 급속도로 치솟는 억울함과 스트레스! 고비였다. 사실상 쇼츠나 릴스가 보고 싶었다기보다 ‘SNS나 메일함에 급한 연락이 와 있지 않을까?’ ‘어떤 일정이 캔슬되거나 변경되지 않았을까?’ ‘누가 나를 찾지 않을까?’…. 단절된 세상과 내 주변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 것 같다는 불안 혹은 궁금증을 견디기 힘들었다. 결국 메일만 확인하겠다며 잠깐 폰을 켰는데, 손가락은 나도 모르게 인스타그램 아이콘을 냅다 눌렀다. ‘피드’도 아닌, 바로 ‘릴스’ 버튼으로 직진하는 수순에 경악. 챌린지는 그렇게 3시간 만에 종료됐다.

나름 원인을 분석하건대 불안한 현실에서 도피하려 ‘대단한 쉼’(예컨대 캠핑 등 취미활동, 운동 등)을 하기엔 시간이 부족할 거란 방어적 사고 때문인 것 같다. 릴스로 가성비 있는 휴식을 취한다고 착각하지만, 그저 실체 없는 불안과 중독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점점 더 능률과 주의력을 잃어가는 좀비가 됐을 뿐.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김경일이 KBS1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숏폼 콘텐츠를 누가 좋아하는지 보면 ‘불필요하게 바쁜 사람’이다. 불필요하게 바쁘면 사람의 뇌는 필연적으로 짧고 자극적인 것을 선호한다”고 분석한 것에 자조적 웃음이 났다. “우선순위 없이 마음만 바쁜 사람은 결국 파편적으로 인간관계를 맺게 되고, 홀로 있지만 혼자 아무것도 못 하게 된다”는 ‘팩폭’에도 동의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여동생과 수다 떨고 친구들과 신나서 맛집 루트를 짠 게 언제였더라…. 전문가들은 실제로도 숏폼 콘텐츠를 ‘디지털 마약’으로 표현한다. 자극적인 영상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몇 초를 만끽하면 더 큰 자극을 원하는 욕구가 손가락 까닥하는 것만으로, 거의 무한대로 충족되는 싸구려 마약 말이다. MZ세대를 잠식한 ‘팝콘 브레인’, 즉 팝콘이 튀듯 뇌가 디지털의 강렬하고 즉각적인 현상에 반응할 뿐 현실의 느리고 소소한 자극에 점점 무감해지는 현상도 중독의 여파 중 하나다. 각종 플랫폼 개발자들이 정밀하게 심어둔 숏폼 도파민에 반복 노출되면 결국 익숙하고 소중한 나만의 감각을 잊고, 가까이 있는 대상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현실관계에 에너지를 소모하기는 싫고, 릴스를 보며 세상과 소통한다고 자위하는, 일과 세상으로부터 고립을 스스로 극대화하는 마약 중독자가 바로 나였다.

〈잠시만 끊어보자고요〉 〈도둑맞은 집중력〉 등 이 문제를 꼬집은 대부분의 책에서는 콘텐츠 사용량 관리, 폰 사용 시간 정해두기, 산책하기, 독서같이 머리로는 이미 다 아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방법을 알면서도 실패한 나는 책보다 사람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말 그대로 ‘인간 안전장치’ 마련하기! 생각해 보면 가족과 살 땐 아빠의 잔소리나 때맞춰 함께 하는 식사가 나름 장치였다. 홀로 지내는 시간이 ‘나만의 시간’으로 자유롭고 충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육체만 현실에 존재할 뿐 불안과 죄책감이 지배한 영혼은 짧은 컷들의 세상을 오가며 소모되고 있었다.

다시 사람과 마주하기로 했다. 연락을 최우선 순위로 시간과 정성을 쏟고, 약속을 잡기로, 생각날 때마다 엄마에게 연락하기로, 연인에게 꼭 시간 맞춰 산책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기로. 몇 가지 디지털 안전장치도 추가로 마련했다. 가상의 나무가 자라는 시간 동안 스마트폰 사용을 멈추고,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무성해지는 나무의 성장을 목격할 수 있는 ‘Forest’, 사용 시간을 추적하고 패턴을 분석해 중독을 판별해 주는 ‘Moment’ 등 재밌는 애플리케이션도 많았다. 최근 미국과 영국의 젊은 층에서는 스마트폰의 반대말인 멍청이폰, 즉 전화 · 문자 · GPS · 음악 재생 등 기본 기능만 갖춘 ‘덤 폰(Dumb Phone)’이 인기라는데 이 구형 폰의 글로벌 판매량이 2019년 4억 대에서 10억 대로 증가했다니 솔깃하다. 2022년을 강타한 책 〈도파미네이션〉에서 소개한 ‘도파민 단식’ 방법, 즉 도파민 수용체를 다시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에서 찾는 방법도 타인과의 대화로 발견해 나갈 예정. 비록 도전은 실패했지만, 자각은 모든 것의 출발점이다. 그러니 일단 친구나 동료들과 밥 먹으며 이 ‘실패 썰’부터 장황히 늘어놓기로!

「 나만의 알고리즘을 찾았다! 」
내 스마트폰 평균 ‘스크린 타임’은 6시간 28분. 그중 5시간 32분은 ‘엔터테인먼트’가 차지한다. 유튜브가 압도적으로 높고, 2순위가 인스타그램. 이 정도로 영상이나 숏폼 콘텐츠에 매몰돼 살고 있다는 사실은 새삼 충격이었다. 피로에 절어 쇼츠, 릴스 알고리즘만 따라 보다 잠드는 생활을 반복한 결과 ‘밈’에 절여져 사고 확장이 불가하고, 생각이 단순해졌다. 사용 어휘조차 얄팍해져서 모든 대화를 ‘폼 미쳤다이’ ‘너 T야?’ 같은 밈으로 허무하게 마무리 짓는다. 감정을 세세하게 표현하는 것, 이를테면 기쁨과 뿌듯함, 황홀감 등 다채로운 감정을 그저 ‘좋다’고만 말하는 사람이 돼버린 것. 심지어 말을 더듬기까지 한다. 시간 낭비와 집중력 저하는 합병증처럼 따라왔다! 나, 점점 퇴화 중일까? 그래도 제법 책을 읽고, 비교적 총기 있던 과거의 나를 완전히 잃어버리기 전에 나 자신에게 A/S를 실시하기로 했다. 24시간의 여정, 이름하여 ‘스마트폰 전원을 껐을 뿐인데’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일단 전원을 껐다. 깔깔거리며 봤던 각종 숏폼 영상의 빈자리는 꽤 컷다. 손에 들려있어야 할 스마트폰이 없으니 헛헛했다. 중독자답게 눈을 부라리며 스마트폰 대체재를 찾아 나서기 위해 소파에서 일어섰다. 이제 뭘 해야 하지? 주변을 둘러봤다. 널브러진 빨랫감, 아무렇게나 쌓아 올린 책, 트레이에 수북한 인센스 스틱 잿더미, 둥근 조명 정수리에 쌓인 먼지…. 이 풍경을 왜 여태 못 봤을까? 할 일도 마땅히 떠오르지 않으니 정리를 시작했다. 흩어진 물건을 정리하고 방 구조를 재배치하는 데 약 4시간을 소요했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시간 동안 30번 정도 프로젝트 중단을 고민했지만, 총기 없는 의지박약아가 되기는 더 싫었다. 청소라는 일상적인 집안일은 뿌듯함을 선사했다. 변화한 주변 환경도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내가 살고 있는 현실에 한번 집중해 문제를 개선하고 나니 정신은 나에게 쏠렸다. 전신 거울에 비친 몸을 요리조리 뜯어봤다. 언제 이렇게 됐을까? 내 나이 스물일곱 살, 허벅지는 오동통했고 비장의 무기였던 잘록한 허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밈과 유행하는 춤, 잘생긴 아이돌 브이로그에만 집착하다 정작 내 몸뚱이는 외면한 결과다. 복싱 코트에서 유치원생처럼 ‘얍!’ 외치는 것 외에 스트레칭과 유산소운동 · 근력운동은 일절 하지 않았고, 퇴근 후에는 화려한 숏폼 콘텐츠에 집중하느라 내 몸이 뻑적지근해진 것도 못 느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다급히 폼 롤러라도 사러 나갔다. 얼른 요가 매트를 깔고 폼 롤러에 등을 기댄 채 이리저리 굴렀다. 소파 위에서 구르던 몸이 딱딱한 폼 롤러 위를 구르니 근육 조직들이 놀라서 잔뜩 성을 냈다. 운동에 시동을 걸자, 왠지 ‘진짜 본격적으로 해야겠다’는 욕구가 샘솟았다. 구매한 폼 롤러에 동봉돼 있던 ‘7일 지방 태우기’란 제목의 가이드 종이를 요리조리 보며 따라 했더니 거의 1시간이 지난 결과, 쇼츠를 보며 깔깔거릴 때 느꼈던 즐거움과 차원이 다른, 개운한 즐거움이 느껴졌다. 몸의 감각이 살아났고, 정신은 ‘내가 이만큼 해냈다니!’ 하는 자랑스러움으로 가득 찼다. ‘나를 좀 더 가꾸고 돌보겠다’는 각성의 순간이었다. 그래서 남은 시간 동안은 뭘 했냐고? 공들여서 손톱 다듬기, 방구석에 박아둔 퍼즐 맞추기, 미루고 미뤘던 공기청정기 필터 갈아 끼우기, 아기 사과나무와 래디시 분갈이, 욕실 바닥 닦기, 한 달 전 48쪽에서 멈춘 책 진도 나가기…. 이 모든 걸 해내는 과정에서 릴스에 대한 욕망은 서서히 연기처럼 사라졌다. 동시에 조금 더 나은 내가 된 것 같은 느낌이 피어올랐다!

새벽까지 숏폼 콘텐츠에 빠져 일상 패턴이 무너지거나 숏폼 앱 삭제와 설치를 반복하는 사태는 전 세계적 현상이다. 미국과 영국은 만 18세 이하 미성년자가 SNS에 가입하려면 부모 동의가 필요한 ‘온라인 안전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중국은 18세 미만 청소년의 틱톡 사용 시간을 60분으로 제한한다. 정부가 나설 만큼 숏폼과 SNS가 주는 악영향은 심각하다. 다행히도 정부나 법적 규제 없이 내 ‘스마트폰 전원을 껐을 뿐인데’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유지 중이다.

성공의 비결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그동안 간과해온 지극히 일상적이고 소박한 업무를 하나씩 해낸 것. 두 번째, 몸의 에너지를 끌어올려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갖고자 했다는 점이다.

이제 아침에 찡그린 얼굴이 아닌, 은은한 미소를 띠며 기상한다. 기꺼이 시작한 운동과 집안일, 식물과 나를 가꾸는 일로 가득 찼던 챌린지 이후 2주가 지난 지금까지 운동은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오고 있다. 허벅지 불태우기, 팔뚝살 잘라내기, 뱃살이 사라지는 마술 등 릴스만큼 매혹적인 제목을 단 온갖 홈 트레이닝을 따라 하는 것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식이 됐다. 주말에는 집 앞 이촌한강공원에서 잠수교 세빛둥둥섬까지 자전거로 왕복한다. 신체운동은 도파민 수준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 등 ‘행복호르몬’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증가시킨다. 뿌듯해서 행복한 줄 알았는데 과학적 근거까지 충분한 것이었다.

‘미뤄뒀던 소박한 일을 하나씩 해나가라’고 말하는 건 쉽다. 너무 당연한 소리다. 하지만 실제로 마음먹고 실천하려면? 마음먹는 것 자체도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생각이 들었다면 곧바로 실천’할 것. 당장 눈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육체와 정신은 나만의 건강한 알고리즘으로 이어질 것이다. 밈의 알고리즘에서 기꺼이 벗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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