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가 잃은 귀중한 생명... '불똥' 피하기 급급한 국방부
[이병록 기자]
▲ 지난 7월 22일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체육관인 '김대식관'에서 열린 고 채 상병 영결식에서 한 해병대원이 슬픔을 이기지 못해 주저앉아 있다. 채 상병은 7월 19일 오전 9시께 예천 내성천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
ⓒ 연합뉴스 |
해병대 1사단 병사가 7월 수해 실종자 수색작전(대민지원) 중 비전투사고로 귀한 생명을 잃었다.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다 키워 놓은 귀한 자식을 잃은 부모의 관점에서 원인을 분석해 재발방지 대책을 만들고, 사고에 대한 책임소재를 밝혀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부모 입장은 보이지 않고, 정치권과 여론이 개입해 쟁점으로 번진다는 데 있다.
군대 업무 속 상급자의 경향
의사가 소수의 환자 목숨을 책임진다면, 군 지휘관은 극한 상황에서 장병 목숨을 책임지고, 주어진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그런 군인의 리더십과 근무형태를 따져보면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미국 장군들의 리더십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모든 자료를 직접 가지고 일하는 장군이 있고, 누가 자료를 갖고 있는지만 알고 있으면 된다는 유형이 있다. 필자는 후자에 속하는데, 조직 사회는 꼼꼼한 사람을 선호한다. 그리고 현대 사회는 지휘통신망과 인터넷 등 발달로 지휘관들이 모든 자료를 다 파악하는 전자의 지휘형태가 늘어나고 있다.
필자가 국방부 실무자로 근무할 때에는 내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추진하면 대부분의 일을 성사시켰다. 과장만 설득하면 대부분이 실행됐던 것이다. 진급해 합동참모본부 과장으로 근무를 할 때에는 과장의 의도보다는 상급자의 의도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상명하복' 하는 군대 문화와 더불어 군대 계급은 수직상승의 개념이 아니다. 사다리를 한 단계씩 차근차근 올라가는 성격이므로, 상급자 경험과 지식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군대 업무 상 상급자는 개인적인 성향을 떠나서도 모든 업무에 간섭하면서 자신의 의도를 강조하는 편이다. 그럼 다음으로 재발방지와 책임소재를 따져보자.
▲ 고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던 박정훈(대령) 전 해병대 수사단장의 변호인 김경호 변호사가 8월 16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결재한 '해병대 1사단 고 상병 채수근 사망원인 수사 및 사건처리 관련 보고' 표지를 공개했다. 이 장관은 지난 7월 30일 자료를 검토한 후 직접 서명했지만, 이튿날인 7월 31일 갑자기 언론 브리핑과 국회 보고를 취소했으며 경찰 이첩을 보류하고 법무 검토를 하라고 지시했다. |
ⓒ 김경호 변호사 제공 |
재발방지 대책은 지원하는 부대보다는 지원을 받는 조직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 군 장병은 전투준비 훈련을 제외하면 평범한 자식과 동생 수준으로 생각하면 된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재난전문가도 아니거니와, 삽질이나 낫질은커녕 장비를 보지도 못한 장병들이 많다.
대민지원 시에 자급자족을 하면서 오히려 자원봉사자보다 열악한 상황에서 재해구호 업무를 해야 할 경우도 있다. 이번에 안타깝게 발생한 채 상병 사건을 교훈 삼아 대민지원 군 장병의 안전대책에 대해 군부대와 소통하면서 지원 대책을 논의해 체계를 세워야 한다. 비록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이지만 현재로서는 적극 권장하는 바이다.
다음은 책임소재를 밝히는 것이다. 채 상병이 구명복을 갖추지 못한 것 등 사고 원인 '핵심'을 따져야 한다. 현장에서 장병과 직접 접촉하는 중대장이나 대대장이 안전을 챙겨야 하고, 자신의 권한을 떠난 사항은 상급부대에 건의를 하고, 건의를 받은 상급부대는 그에 맞는 조치를 해야 한다.
▲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지난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집중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다 순직한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외압 의혹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 유성호 |
여기까지는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번에 발생한 문제를 수사하는 전직 수사단장은 '외압'이라고 반발하고, '항명'이라는 혐의로 징계를 당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수사 과정이 공정하지 못하면 결과 역시 공정할 수 없다. 내 생각에 국방부의 가장 큰 실책은 장관의 지휘 하에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외부의 영향을 차단해야 할 사안이 쟁점으로 커졌다는 데 있다. 군 수뇌부가 우유부단하거나 조직 장악력이 부족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임성근 해병1사단장은 사고 현장 지휘권이 없었다. 하지만, 구명복을 챙긴 게 아니라 외부에서 보이는 '시각적 효과'를 강조했다고 알려져 있다. 해병대 수사단의 '채 상병 사망사건 조사 기록'에는 "임성근 해병1사단장이 '해병대 티셔츠가 잘 보이게 복장 통일'을 강조했다"는 증언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다. 임 1사단장 스스로가 이 사건의 책임 여부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도 아리송해졌다. 채 상병 사망 이후인 7월 28일 임 1사단장은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을 만난 자리에서 "책임을 통감한다. 사단장으로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고 8월 2일 해병대 관계자가 언론에 전했다.
그런데 박정훈 대령이 단장을 맡았던 해병대 수사단의 '채 상병 사망원인 수사 및 사건 처리 관련 보고서'엔 결이 다른 내용이 담겼다. 24일 MBC는 "임성근 해병 1사단장은 수사에서 '지휘관으로 무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사고 부대가 물에 들어간 것이 이번 사고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 생각한다'고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책임의 화살을 현장 부대로 향하게 한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차라리 자신을 믿고 따르는 대대장의 선처를 조치하면서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했으면 바람직했을 것이다.
사건의 쟁점화는 '긁어서 부스럼 만드는 격'이다. 마무리는 어려워지고, 달리는 말에서 뛰어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필자의 경험상 사고가 '사건'이 되면 뼈를 깎는 내부 성찰과 교훈 도출보다는, 일단 정치권·여론의 비판을 수습하는 게 주목적으로 변한다. 국방부 등 정부 입장에선 잘못한 것도 '문제 없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는 이야기다.
▲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지난 18일 오후 승인 없이 TV 생방송에 출연한 것과 관련해 열린 징계위원회에 출석하기 위해 경기도 화성시 해병대 사령부로 들어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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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병록씨는 예비역 해군 준장, 현 덕파통일안보연구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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