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금 3개월만에 위태로워진 전재산 "피땀으로 모은 돈 날릴 판"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피해가 여전합니다. 특별법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대규모 월세 사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전국 주거형 오피스텔을 상대로 임대사업을 해온 업체가 임대인과 임차인의 보증금 등을 제때 지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피해규모만 수천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번 사태를 4회에 걸쳐 집중 조명합니다. <편집자말>
[이주연 기자]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 착실히 모은 돈으로 독립을 준비한 딸. 전세사기로 세상이 떠들썩해 월세를 구했다. 있는 돈 없는 돈 긁어모아 보증금을 마련했다. 보증금을 좀 더 주고라도 그만큼 월세를 아끼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월세집을 계약했던 게 지난 5월이었다. 보금자리가 된 인천의 오피스텔에는 딸의 직장생활 6년여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리고 불과 3개월만에, 그 6년이 위태로워졌다.
"딸이 고생해서 모은 돈인데... 보증금을 못 돌려받을까봐 그게 걱정이죠."
<오마이뉴스>에 피해 사실을 제보한 이아무개씨는 딸 걱정에 요즘 밤잠을 설친다고 했다.
이씨의 딸은 지난 5월, 인천에 본사를 둔 기업형 주택임대관리 업체와 월세 계약을 맺었다. ㈜더굿하우스다. 세입자와 집주인을 연결해주는 일종의 부동산 플랫폼기업이다. 더굿하우스는 세입자로부터 보증금과 월세를 받고, 집주인에게는 월세만 전달하는 형태로 계약을 맺어왔다.
더굿하우스는 "위탁계약을 통해 집주인의 권한을 수임받은 대리인"이라고 스스로를 설명했다. 대리인으로서, 더굿하우스와 세입자가 임대차계약을 진행하고 보증금 및 월세 수금 관리를 더굿하우스에서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증보험 또는 1금융권 협약을 통해서 지급보증서를 발급해드리고 있다. 임대차계약시 특약사항에 보증금 반환에 책임은 임대인이 아닌 더굿하우스가 책임지고 반환함을 명시하고 있다"라고 홍보해왔다.
▲ 더굿하우스 홈페이지에 소개된 임대인-더굿하우스-임차인간의 계약관계도 |
ⓒ 더굿하우스 홈페이지 갈무리 |
"가해자는 더굿하우스인데 피해자인 임차인-임대인 싸우는 구조... 정말 큰일"
<오마이뉴스>가 방문한 더굿하우스 사무실은 텅비어있었다 (관련 기사 : "수천억 '먹튀' 의혹, 불꺼진 사무실..."여기저기서 피해자 찾아온다" https://omn.kr/25ai0). 세대당 1000만 원에서 많게는 4000만~5000만 원에 달하는 보증금은 모두 더굿하우스가 갖고 있었다. 여기다 지난 6월 말부터 임대인에게 지급되지 않은 월세도 문제다. 이씨는 "임대인이나 임차인 모두 피해자"라고 했다.
"임차인 보증금을 들고 굿하우스가 잠적해버렸죠. 임대인들도 몇 달 째 월세를 받지 못했어요. 임대인들도 대출 받아서 오피스텔 산 분들이 많대요. 더굿하우스가 '월세 10년 동안 받도록 공실 보장해준다. 번거롭게 세입자 만날 필요 없다. 법인이 다 관리해준다' 이렇게 홍보했거든요. 대출이자는 월 임대료로 충당할 생각에 적은 돈을 투자해 계약했던 분들이 있는 거죠. 임차인들도 대다수가 저희 딸처럼 사회 초년생일 텐데, 20대부터 모은 피땀 같은 돈이 보증금일 거잖아요. 정말 큰일이예요."
그러면서 이씨는 "더굿하우스가 임차인과 임대인에 피해를 입힌 건데, 결국 피해자끼리 싸우게 생겼다"고 우려했다.
"임대인은 '내 통장에 보증금이 들어온 게 없고, 권리를 더굿하우스에 위임했으니 거기서 받아라' 할 거고, 임차인은 '이 집의 주인은 임대인인데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게 말이 되냐' 할 거예요. 법적인 책임이 애매하니, 피해자끼리 싸우는 구조가 돼버리는 거죠. 결국은 선량한 시민들만 싸우게 됐어요."
그러면서 이씨는 "더굿하우스가 임대인-임차인 사이에서 장난질을 치도록 만든 것인데, 장난질 치도록 만든 제도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임대인도 보증보험을 믿었을 거고, 임차인도 보증보험을 믿었어요. 그런데 지난 6월 말에 이미 보증보험이 해지됐더라고요. 임차인-임대인도 모르게 보증보험이 해지될 수 있다는 것, 그거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우리 쪽에) 아무런 고지가 없었어요. 보증보험 해지 시 적어도 임차인의 동의를 받도록 제도가 마련돼 있었으면 6월 말에 해지되자마자 다들 사건을 인지했을 거고 7월 초부터는 이런 짓을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 8월 말이 돼 가는데 아직도 월세를 입금한 사람이 있대요."
▲ 지난 17일 인천 연수구 송도동에 있는 임대관리업체 '더굿하우스'. 불은 꺼진 채 문은 굳게 잠겨있다. |
ⓒ 조선혜 |
"전세 사기에 월세 사기까지... 생존 걸린 문제"
이씨는 "요즘 청년들이 왜 결혼을 안 하려고 하는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한동안 전세 사기로 떠들썩했잖아요. 그래서 월세로 구한 거였어요. 월세를 낮추려고 모은 돈 탈탈 털어서 보증금을 올렸죠. 몇 년 전부터 이런 범죄가 계속 발생하는데, 왜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걸까요. 이런 일이 왜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걸까요.
청년들 돈은 정말 소중하지 않나요. 생존이 걸린 문제예요. 그런데 전세 사기에 월세 사기까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주거를 포기해야 하잖아요. 이렇게 불안한 세상에 결혼하고 애를 낳을 수 있겠어요? 사회 초년생을 이렇게 울리는데 앞으로 뭘 믿을 수 있겠어요."
"정말 열심히 모은 피같은 돈인데ㅠ." (임차인)
"전재산...인데." (임차인)
"왜 이리 돈 뜯어내려는 사람들 천지인지... 정말 세상이 무섭습니다. 순진한 것도 죄가 되어 벌 받는 거처럼 상황이 흘러간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어요." (임대인)
"잠도 안 오고 입이 써요." (임대인)
"주말이 두렵습니다... 일조차도 안 하면 하루종일 돈 생각만 듭니다. 월세는 못 받고 대출이자는 나가고..." (임대인)
"그러게요... 조금의 틈이라도 나면 바로 보증금 생각이 나네요. 정말 괴롭습니다." (임차인)
"20년 넘게 직장생활하면서 저도 처자식 위해 조금이라도 잘살아보려고 대출 안고 투자해본 건데... 대출에 세금, 수수료 비용...숨막힙니다." (임대인)
임차인과 임대인들은 더굿하우스는 물론, 주택임대관리 업체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지자체·정부에도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더굿하우스는 처음부터 사기를 치려고 시작한 거 같네요. 진짜 악덕 사기꾼 끝을 보고있네요." (임대인)
"늘 그렇지만 이런 사건 터질때까지 감독하고 관리해야 할 지자체, 기관, 공무원들 뭐했는지... 빌라왕 사건 때 원희룡 장관이 전국적으로 실태조사해서 불법적 운영 전수조사한다더니 말뿐이었다는 것이..." (임대인)
"유사한 사건이 2019년에 터졌을 때 정부가 재발 못하게 했을 거라는 안일한 믿음을 가졌던 거 같아요. 설마하고 ㅠㅠ. 나라에 내는 세금은 꼬박 내고 있는데..." (임대인)
※ 포털사이트에 '더굿하우스 피해자 모임' 카페를 개설한 임대인들은 다음과 같이 당부하고 있다.
1. 임차인과 임대인은 서로에게 상황을 전파하세요.
2. 임대인은 위탁계약해지, 임차인은 보증금 반환 내용증명을 (더굿하우스에) 보내셔야 합니다.
3. 더굿하우스로는 월세 입금을 중지해야 합니다.
4. 가까운 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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