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타그램] 한때 시간이 흘렀던 골짜기

허영한 2023. 8. 2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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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나를 데려다준 세상의 구석구석에서 나는 수많은 종류와 형태의 시간을 목격하곤 한다. 카자흐스탄 탐갈리(Tamgalry)의 광활한 평원 사이 완만하게 솟은 산골짜기에 가득한 청동기 시대의 수많은 암각화들을 보면서도 그랬다. 계곡에는 수천 년 전의 흔적 위에 지금의 햇빛이 바위를 때리듯 내리쬐고 있었다. 유물은 과거의 흔적을 담은 사물에 그치지 않는다. 그 세월을 건너온 과거의 숨과 기운을 함께 담고 온 시간이란 그릇이다. 고개를 들어 보니 위쪽 낮은 산봉우리 능선의 완만한 직선과 곡선은 구체적 현재를 말하고 있으면서 과거가 현재와 견고히 닿아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소와 염소, 큰 산양의 몸을 하고 상아를 닮은 긴 치아와 뿔을 가진 야생 동물과 춤추는 사람들, 태양의 얼굴을 한 제사장(그림이 제의를 위한 것이라 보는 사람들의 해석에 따르면)들은 인간과 자연의 완전한 관계로서의 세계가 있었음을 말했다. 경이롭게 다가오는 것은 그사이 막중한 시간의 무게, 이곳과 그곳 사이의 깊고 캄캄한 골짜기라는 구체적인 막막함이다. 시간은 멈춰 있었다.

바위는 과거의 메시지고 능선은 현재라는 배경이었다. 카자흐스탄 탐갈리, 2017 ⓒ허영한

뙤약볕 아래 달궈진 바위에 손을 갖다 대니 손바닥은 물론 얼굴까지 뜨거워졌다. 오른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었고, 왼손에는 바위에 그림이 새겨지던 그 시간에 손 닿아 있는 듯한 환상이 보였으면 참, 극적이었겠다. 그냥 바위는 뜨거웠고 과거에는 오래 손대고 있을 수 없었다. 시간이라는 화두에 들러붙은 회의와 무위와 부재 따위의 허망한 단어들을 떠올리기에는 뙤약볕이 너무 열렬히 나를 환영했다. 멀리 5천 년 전 중기 청동기 시대 그 계곡에 살았던 조상들은 바위의 편평한 면을 쪼아 그림을 새겼다. 구릉성 산비탈과 골짜기마다 수백 수천 덩어리 바위 위에 가축과 사람과 짐승과 태양과 새의 그림들이 즐비했다. 그림을 그리면서 그들은 모두가 떠난 뒤 먼 훗날에도 사람들이 태어나고 살아서 바위에 새긴 그들의 '지금'을 목격하고, 자신들이 한때 이곳에 있었고 살았음을 기릴 것이라고 의식했을까. 보이는 것들을 기록하고 남긴다는 것은 시간을 의식하고 미래가 있음을 알고, 메시지의 수신자로서 먼 미래의 타인을 의식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남거나 감당할 수 없는 자아의 잉여를 해소하기 위해 사슴과 소와 춤추는 사람들을 그 바위에 그려 넣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지금 여기 내가 살고 있고,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자기를 대신해서 지금 이 시간을 저 멀리 누군가에게 전해줄 뭔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을 남긴다는 의미를 알았을 것이다. 아니면 종교적이거나 제의적인 행위로써 그들이 기르는 가축과 잡아먹은 짐승들, 그들이 먹고사는 것(출산과 춤추는 것 등을 포함해서 인생의 거의 모든 것)들을 기록함으로써 앞날의 복을 기원하기 위한 방편으로 바위에 그림을 새겼을 수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그들은 시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8월의 뙤약볕 아래 뜨거운 바위 옆에서 잠시 목이 메었다.

청동기 시대의 사슴

시간 감각은 세계가 유한한 존재들로 이어진다는 원리를 안다는 뜻일 텐데, 그 감각은 또한 감각 이외의 신체로 건너갈 수 있는 것이 고작 한평생을 넘을 수 없다는 비애를 인정하고 순응한다는 뜻도 포함할 것이다. 그래서 시간의 골짜기를 건너갈 배를 띄우고 거기 실어 보낼 수 있는 이야기로서 바위의 그림들을 분신 남기듯 했을 수도 있다. 그들의 의도가 복을 바라거나 과시로서 현세에 미칠 뿐이었더라도 결과적으로 그 유산들은 인간사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건너온 것이다.

나에게 그들은 과거이기도 하지만 현재이기도 하다. 나는 오로지 현재 속에서 그들의 현재를 목격한다. 수천 년이란, 우주적 시간에 비하면 한 걸음도 안 되는 얼마나 소박한 시간인가. 그러나 그 소박한 시간 속에서도 사라진 것들은 영원히 사라졌고 남은 것들은 이렇게 손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 시간은 선별적으로 그들의 현재를 보존해 미래로 전송한다. 남은 것들 속에서 사라진 것들을 함께 만진다는 것도 감각의 일이다. 만지는 것만으로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있는 것들을 물질적이지 않은 감각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정수리 바로 위를 열두 시라고 봤을 때 해는 두 시에서 그 빛의 포탄들을 시계의 중심부에 쏘아 대고 있었다. 여덟 시 방향에서 바위를 내려다보면 오후 두 시가 강조한 대비가 그림의 윤곽을 부각해주었다. 나는 여섯 시에서 아홉 시 사이를 오가며 카메라를 들이대고 그림이 선명해지는 각도를 찾아 몸을 이리저리 옮기고 뒤틀며 사진을 찍었다. 땀이 쏟아지고 정수리는 뜨거웠고 깎은 듯 평평한 바위에 반사된 햇빛은 열기도 고스란히 하늘로 되돌려주고 있었다. 아래위로 뜨거웠다. 까마득한 과거의 끝에서 뙤약볕만이 현재였다. 비스듬히 하강하다가 그보다 약간 가파른 각도로 상승하는 산등성이의 윤곽, 그것도 역사적이라면 역사적이었다. 동행한 이 나라 고고학자 보리스가 어느 그림 앞에서 그것이 출산 장면임을 설명해주었다. 원시의 그림으로 출산은 처연하고 엄숙하고 적나라했다. 다만 '출산'이라는 설명을 듣지 않고 보았다면 한참을 들여다보고 판독되지 않는 여백과 윤곽을 상상으로 채우는 일이 필요했을 것이다. 후세의 연구진들은 이름 하나를 붙였을 뿐인데 그 이름은 세월의 간극에 큰 다리가 되었다.

동행한 고고학자 보리스가 출산 장면이라고 말해준 그림

사람도 가축도 모두 떠나고 돌 판의 그림과 산천만이 남아 묵묵히 또 수백 년 아니면 수천 년, 세월로부터 고요하게 외면당한 채 흘러가는 시간만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곳에 함께 살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마지막으로 남은 한 사람 혹은 한 가족이 떠난 날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짐을 싸서 가축의 등에 싣고 가족들을 앞세워 이사하듯 떠났을까? 먹을 것이 없어서 떠났을까, 다급하게 뭔가에 쫓겨 갔을까? 아니면 그냥 그 자리에서 조용히 마지막을 맞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풀과 나무와 바위뿐인 계곡을 내려갔다. 멀리 초원의 비스듬한 언덕 중간쯤에서 고삐도 안장도 없는 크고 작은 갈색 말 여럿이 바람에 갈기를 날리며 마른풀을 뜯고 있었다.

현재의 말들이 청동기 시대와 다를 바 없는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바람에 날리는 말의 꼬리는 현재로 돌아오는 이정표였다. 다시 시간이 흐르는 감각이 돌아왔다. 문득 까마득히 먼 언덕이 바다처럼 보였다. 언덕의 경사는 파도처럼 보였다. 나의 뒤편 계곡에서부터 시간의 물결이 출렁출렁 흘러내려 바다로 향하고 바위의 그림들은 지금이라는 뗏목을 타고 다시 떠내려가는 듯했다.

편집자주 - 사진과 보이는 것들, 지나간 시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씁니다. ‘언스타그램’은 즉각적(insta~)이지 않은(un~) 사진적(gram) 이야기를 뜻하는 조어입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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