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 입에 달던 교사입니다, 9월 4일 연차 냈습니다

김광선 2023. 8. 25.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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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공교육 멈춤의 날'에 참여하며... 서이초 선생님을 외롭게 두지 않을 겁니다

[김광선 기자]

 지난 7월 25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 사망한 교사를 추모하는 국화와 메모지가 붙어 있다.
ⓒ 연합뉴스
 
서울 서초 서이초등학교 선생님의 죽음 앞에서 내가 죽은 것처럼 슬프고 외로웠다.

사망 소식이 알려진 7월의 그날, 나는 멍하니 있다가 계속 눈물만 흘렸다. 다음날은 빨래를 개면서 울음을 터트렸다. 그 뒤부터는 관련 기사를 찾아보며 해결 방안과 구체적인 입법 내용을 모색했다.

여기저기서 나온 증언들

서이초 사건 이후로 "나만 겪은 일이 아니네" 하면서 여기저기서 선생님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나도 아동학대 신고를 당해봤다. 협의 없음으로 나오기까지 1년 동안 고통의 시간이었다."
"작년에 담임교체 요구를 받았다. 학부모가 '우리 애랑 선생님이랑 안 맞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표정을 지적받았다. '좀 더 웃으면서 얘기해 주세요. 우리 애가 선생님이 무섭대요'라고 했다."

나는 집에서는 늘어져 있다가도 학교에만 가면 에너지가 생기는 타입이다. 아이들은 여전히 귀엽고, 초롱초롱한 눈빛이라도 보면 뭐라도 주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잘 가르치고 싶고, 아이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아이디어를 짜고 연구를 했다.

무슨 사건이나 일이 생겨도 금방 해결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니까. 다툼이 생겨도 금방 화해하고 헤헤 하며 웃으니까. 계속 만나고 이야기하고 공부하면서 서로를 잘 알게 됐으니까. 눈에 아른거리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더러는 주말이 싫을 때도 있었다.

아이들 앞, 좁아지는 교사의 자리
 
  학교 복도 모습(자료사진). 기사 속 내용과는 무관합니다.
ⓒ 김광선
 
그런데 일부 학부모님들은 달랐다.

누가 누구랑 싸우는 등 문제가 생기면 많은 부모님들은 전쟁이라도 치를 듯 전투 자세를 취하곤 했다. 상대 아이를 아주 혼내줘야 한다고, 그 아이는 욕도 잘한다고, 그 애 전화번호 알려달라고, 피해를 보상해달라고, 상담을 시키라고... 어떤 경우엔 내게 "선생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몇 번을 당하고 나니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제가 더 살피지 못했어요"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때로는 "제가 더 잘할게요"라고 애교도 부렸다. 

별일 아니었기에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먼저 숙이고 들어갔다. 그러고 나면 참 비참하다. 자존심이 상한다. 자신감이 떨어진다. 애들 앞에 당당하게 서야 할 무대가 좁아진다.

"네~네~네~네~네." 한 번은 전화를 이렇게 받은 적도 있다. 계속 잘 듣고 있다는 리액션을 줬다.

"우리 남편이 많이 화났어요." 이런 말 들으면 정말 밉다. "내가 누구인데... 누군 줄 아느냐", 참 듣기 싫은 말이다. "교장실로 직접 가려다 참았어요", 눈물 나게 고마워 해야 하는가. 주변 선생님들이 하도 친절하니까 학습이 됐나 보다. "우선 말을 다 들어줘라. 같이 말하면 안 된다." 교장·교감선생님이 그러라고 하니까 대꾸도 못하게 됐나 보다.

아동학대 신고 당하고 담임 교체되고 사라지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교사 사회는 겁을 먹은 것 같다. 주변 학교도 민원으로 병가를 내고 휴직한 선생님이 계시다.

"왜 그런 거예요? 서로 얘기하고 풀면 되는데."
"이유는 없어. 그냥 그 선생님을 안 봤으면 좋겠대."

무섭다. 이유 없이 미움받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9월 4일
 
  교실을 들어서며(자료사진). 기사 속 내용과는 무관합니다.
ⓒ 김광선
 
사실 20년 전만 해도 학교는 별로였다. 학부모들을 동원해서 급식 도우미를 시키고, 외부에 발표하는 공개수업이라도 있으면 학부모도 동원해서 청소도 했다. 전교회장되면 회장 부모는 피자를 돌리고, 극성 부모들은 선생님이 힘들다면서 롤케이크를 아이들 손에 쥐어 학교에 보내는 일도 있었다. 이따금 선물을 받은 선생님은 "이거 우리 반 OO이가 보낸 거예요. 함께 드세요"라고 하면서 동료교사들에게 인기를 과시하기도 했다. 옆에서 얻어먹는 내 입장도 그리 편하진 않았다.

현재 이런 문화는 사라졌다. 전교조 선생님들이 앞장서 스승의날 선물을 받지 않기 시작했고, 김영란법 이후로는 싹 없어졌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무엇을 물어봐도 다정하게 답했다.

IMF 이후 우수 인재들이 대거 교직으로 들어오면서 실력 있는 선생님들이 많아졌다. 공부도 잘하고, 일도 잘하고, 인사도 잘하고, 멋도 잘 내는 사람들이었다. 경력 많은 선생님들도 덩달아 젊은 선생님들에게 자극받아 열심히 했다. 과학이 약한 나는 새벽에 일어나 EBS 강의를 들었다. 포토샵 작업을 매번 옆반 선생님께 부탁하다가 그냥 배웠다. 그뿐인가. 재봉틀을 다루지 못해 봉제학원도 다녔다.

그런데 2, 3년 전부터는 '학교 탈출은 지능 순'이라면서 이직하는 분들이 많아졌다. 누군가는 '이렇게 된 것은 다 너희들 업보야'라고 쉽게 말한다. 전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은 한국 사회에서 힘이 없고 사람들이 기피하는 직종이 돼버렸다. 

나는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 연가 신청을 냈다. 나 말고 우리 학교 선생님들 전원이 참여한다. 참을 만큼 참았다. 이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9월 4일은 서이초 선생님의 49재날이다. 하늘에 계신 선생님이 절대 외롭게 두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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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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