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컬처]나는 날씨의 이유를 모르지만

2023. 8. 2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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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태풍이 다녀가고 날이 개었다가 며칠 덥더니 다시 비가 온다.

긴 강에서 마주보고 울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까치들이 몰려와 다리를 만들었고, 두 사람은 만났고, 그들이 흘린 눈물이 칠월칠석의 비가 되었다.

칠월칠석이 지나고도 계속 비가 내렸다.

앞으로도 날씨의 이유는 모르고 살아가겠으나, 칠월칠석의 비를 보며 견우와 직녀를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나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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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음력 칠월칠석 내리는 비
상봉한 견우와 직녀의 눈물?

얼마 전 태풍이 다녀가고 날이 개었다가 며칠 덥더니 다시 비가 온다. 정확히 칠월칠석(22일)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나는 날씨의 이유를 모른다. 일기예보를 보고 태풍이 오면 오나 보다, 덥다고 하면 덥나 보다, 비가 내린다 하면 내리나 보다 할 뿐이다. 그러나 이번 비의 이유는 알 것 같아 친구에게 말했다. 견우와 직녀가 올해도 만나는 모양이라고.

옥황상제는 견우와 직녀에게 1년에 한 번 음력 칠월칠석에만 만나라는 벌을 내렸다. 긴 강에서 마주보고 울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까치들이 몰려와 다리를 만들었고, 두 사람은 만났고, 그들이 흘린 눈물이 칠월칠석의 비가 되었다. 요 며칠은 까치들도 모두 오작교를 만들러 갔는지 역시나 눈에 띄지 않는다. 평소에도 잘 보이지 않았던 것 같긴 하지만, 알아서 비를 잘 피하고 있겠지만, 그래, 오작교 만들러 간 것으로 하자.

지금 내리는 비가 견우직녀의 눈물이라는 말에 친구는 답했다. 네가 출장 간 서울엔 비가 오는 모양이지만 자신이 있는 강원도엔 비가 오지 않는다고. 그래서 그에게 다시 말했다. 도심 데이트를 즐기는 것 같다고. 그들도 오랜만에 만나 등산을 하거나 해수욕을 하진 않을 듯하다. 서울 도심 하늘 위에서 요즘 유행한다는 탕후루라도 하나씩 먹고 있겠지.

칠월칠석이 지나고도 계속 비가 내렸다. 8일(양력 23일)에도 내렸고 9일에도 내렸다. 우리는 말했다. 이번엔 옥황상제가 사나흘쯤 만나라고 한 것 아니냐고. 그러고 보면 세상엔 여러 형태의 부부가 있는데, 매일 보는 일일부부, 주말에만 보는 주말부부, 한 사람은 외국에 아이들과 나가 있는 기러기부부. 견우와 직녀도 어쩌면 그 한 형태인 듯하다. 1년에 한 번 정해진 날 며칠을 만나는 견우직녀부부. 어, 그거, 생각보다 괜찮은 거 아니냐, 라는 데 접어들 즈음에 서로 대화를 멈추었다.

견우와 직녀는 서로를 한눈에 알아보았다고 한다. 각자의 일을 잊을 만큼 사랑했고 그 벌을 받는 중이다. 사람에 대한 사랑과 다정의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는 오로지 언어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살면서 언어가 겹치는 사람을 종종 만나는 일이 있다. 사람은 하나의 사전을 만들어가는 존재다. 한 사람의 몸에는 그가 사용해 온 언어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그는 여러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그 사전의 페이지를 펼친다. 사람의 사랑이란 그 언어의 용례의 닮음을 확인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견우와 직녀도 서로의 말이 겹치는 데서부터 웃었을 것이다. 서로를 위해 한 즐거운 말들이 마치 자신의 말과 같아 놀랐을 것이다. 대화가 깊어지면서는 하지 않아야 할 말을 아는 데서, 그러니까 언어의 선이 멈추어야 할 지점이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면서 감격했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놓고 사랑하게 된 게 아닐까.

이게, 견우와 직녀의 눈물이 아닐 수도 있어. 그럼 뭔데. 계속 울기만 하진 않을 거 아냐. 그치. 오작교 만든 까치들도 힘들 텐데 이거 걔들이 흘리고 있는 눈물 아닐까. 앜ㅋㅋㅋㅋㅋ.

이런 쓸데없는 말의 용례가 비슷한 사람이 가장 사랑스럽다. 앞으로도 날씨의 이유는 모르고 살아가겠으나, 칠월칠석의 비를 보며 견우와 직녀를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나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볼 듯하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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