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한 끼라도 제대로…“드디어 먹어봤다” 게임처럼 즐긴다
식문화 흥행 이유 분석
베이글 먹으려 3~4시간 줄서기
힘들게 먹은 성취감 희열
'나만 아는' 식당·비밀 메뉴 과시욕
한국인에게 밥심은 몹시 중요한 가치다. 인사도 "밥 먹었니?" "식사하셨습니까?"라고 할 정도니 ‘의식주’를 ‘식의주’로 바꿔 불러도 가치 순서에 무리가 없을 듯싶다. 하다못해 가족도 함께 먹는 입이라는 뜻의 ‘식구’라고 부르지 않는가. 해외에선 이해 못 할 트렌드로 여겨지는 이른바 ‘먹방’도 국내에선 인기 콘텐츠다. 남이 먹는 걸 보는 것에서조차 ‘재미’를 찾는 한민족에게 먹거리는 매우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외식업 트렌드(목새)’는 국내 외식업 트렌드의 이모저모를 날카롭게 짚어낸다.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로 유명한 김난도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소비자학과 교수팀이 집필을 맡았다. ‘트렌드 코리아’가 사회 전반의 트렌드 유형을 분석했다면, 이 책은 "작은 가게 사장님들에게 꼭 필요한 트렌드 정보"만을 골라 정리했다. 계기는 외식업 핵심 트렌드를 자영업 사장님들께 전달하고 싶다는 배달 플랫폼 ‘배달의 민족’의 건의. 그간 배달의민족이 축적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외식업 트렌드 7가지를 도출했다.
첫 번째 트렌드는 ‘금쪽같은 내 한 끼’다. 식사는 생존을 위해 허기를 채우는 정도로 허용되기도 하지만, 집필진은 최근 ‘한 끼를 먹어도 제대로 먹겠다’는 트렌드가 엿보인다고 분석한다. 삶에 치여 끼니를 때울 때가 있을지언정, 그래도 가끔 한 끼는 제대로 챙기겠다는 심리다. 10만원에 달하는 호텔 망고빙수는 실제 사례다. 서울신라호텔의 ‘더라이브러리’에서 파는 애플망고 빙수는 지난 6월 기준 9만8000원으로, 1년 전 8만3000원보다 1만원 이상 올랐음에도 대기 시간이 1시간을 훌쩍 넘는다고 한다.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 서울의 ‘제주 애플망고 가든 빙수’는 12만6000원임에도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한 끼를 제대로 즐겼다는 만족감에 많은 이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압구정 중식당 ‘무탄’에서 맛볼 수 있는 탕수육보다 비싼 3만원짜리 짜장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도시락의 대명사 ‘한솥’의 프리미엄 고메이 메뉴도 같은 맥락의 사례다.
줄서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도 새로운 트렌드다. 줄서기는 목적 달성을 위해 감당해야 할 고난으로 간주되기 마련이지만, 유명 음식점 앞에 늘어선 줄은 ‘고진감래(쓴맛 뒤에 단맛이 온다)’에 가깝다. 서울 종로의 ‘런던 베이글 뮤지엄’이 대표적.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오랜 시간 기다려서 겨우 먹었다"는 내용의 글이 즐비하다. 집필진은 "3~4시간 줄을 서서 기다리는 행위를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그 식당을 이용하게 됐을 때, 역설적으로 더 큰 만족감을 얻는다"고 분석한다.
전국에 약케팅(약과+피케팅) 붐을 일으킨 장인한과가 경기도 포천에 문을 연 카페 ‘장인더’에는 아침 7시부터 생산과정에서 망가진 일명 ‘못난이 약과’를 사기 위해 인파가 몰린다. 이들에게 약과 구매는 미션을 달성해야 하는 게임에 가깝다. 집필진은 "줄서기는 사람들이 들이는 노력과 그로 인해 얻는 성취감을 직관적으로 시각화한다. 식당에 입장해 음식을 먹는 순간 내가 들인 노력이 드디어 성과로 치환되는 것"이라며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던 기성세대와 달리 ‘먹는 것 가지고 마음껏 장난치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 외식산업에도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온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만족감을 유지하기 위해 분점이나 가맹점을 내지 않거나, 손님이 많아도 일정 시간이나 준비 재료가 소진되면 문을 닫는 식당이 적지 않다. 돈을 조금 빨리 버는 것보다 오래 지속하는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식부심(食+자부심)은 취향에 따른 섭식에 동력을 제공한다. 과거 ‘편식’이 지적 대상이었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드러내고, 동조하는 이들과 연대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심리 유형 검사인 MBTI처럼 식성으로 유형을 분류하기도 한다. ‘대식좌(많이 먹는 사람)’ ‘소식좌(적게 먹는 사람)’ ‘맵찔이(매운 걸 잘 못 먹는 사람’) ‘맵치광이(매운 걸 잘 먹는 사람)’ 등이 그 예다.
이는 음식에 관한 지식을 과시의 소재로 삼는 트렌드와도 맥이 닿아 있다. 돈만 있다면 누구나 소비할 수 있는 곳이 아닌, 희소성 있는 식문화 식견을 지녀야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주목받고 있다. ‘너 이런 거 알아? 가봤어?’가 과시욕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오로지 치즈만을 다루는 전문점, 프랑스식 샌드위치 ‘잠봉뵈르’, 녹차나 김치만을 테마로 한 다이닝 공간 등 다양한 식당이 인기를 끌고 있다. 과시욕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온라인 언급을 일절 금지한 채 아는 사람만 찾아올 수 있도록 간판도 없이 영업하는 곳도 있다. ‘나만 아는 식당’의 욕구 자극이 입소문으로 이어지는 형태다.
메뉴판에 없는 비밀 메뉴를 주문하는 행위도 ‘나만 아는~’이라는 만족감을 충족한다. 단골손님 취향에 맞게 특별메뉴를 제공하는 느낌을 선사해 손님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핵심. 실제로 ‘스타벅스 더블 샷’은 정식 메뉴가 아님에도 2004년 출시 이후 2000만잔이 넘게 팔렸다. 아이스티에 샷을 추가한 ‘아샷추’도 마찬가지. 최근에는 보편화됐지만, 얼마 전까지 아는 사람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비밀 메뉴였다. 집필진은 "‘너와 나만 아는 시크릿 메뉴’는 그 존재 자체로 특별한 친절로 기능하곤 한다"고 설명한다.
집필진은 현시대의 식문화를 조목조목 짚어내며 그 맥락과 흥행 이유를 분석한다. 독자에게는 새로운 먹거리 탐험 기회를, 자영업자에게는 고객 흡인에 관한 통찰을 제공하는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대한민국 외식업 트렌드 Vol 1 | 김난도 외 9명 | 목새 | 216쪽 | 1만7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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