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목소리를 통해 타인들에 도움 되고 싶었어요"
[권혜지 기자]
▲ 아카펠라그룹 아카시아 멤버(왼쪽부터 송순규, 구예니, 김영, 홍원표) |
ⓒ 권혜지 |
악기 없이 오로지 인간의 목소리로 음악을 구현하는 것. 바로 '아카펠라'다. 세상의 불협화음에 자신들만의 화음으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아카펠라그룹 '아카시아'다.
'4·16 참사 추모제', '최저임금 올리고 불평등 없애고 투쟁문화제', '이태원 참사 49재 시민추모제' 등 우리가 기억해야 할, 우리가 바꿔야 할 사회의 일들에 '아카시아'는 잊지 않고 참여한다.
아카시아의 소프라노 김영, 알토 구예니, 테너 홍원표, 바리톤 송순규는 지난 19일, 경기 고양 '2023 대한민국 애국찬가 드라마콘서트 동고동락' 무대에 섰다.
<2023 애국찬가 드라마콘서트 동고동락(사이트)>은 일제강점기부터 현대까지 대한민국 역사의 현장에서 나라와 겨레의 혼을 깨운 30여곡의 노래를 극 형태로 선보이는 드라마콘서트다. 근현대사 발자취를 따라 '애국가' 탄생에 얽힌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가는 여행기를 담았다. 노래와 춤, 영상, 퍼포먼스로 엮어 총 3부로 구성해 조국 광복에 대한 간절함, 민족의 비극인 6.25 전쟁, 민주주의 쟁취 등 한국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들을 되돌아본다.
▲ 아카펠라그룹 아카시아 멤버(왼쪽부터 송순규, 김영, 구예니, 홍원표) |
ⓒ 아카시아 |
- 그룹이 처음 결성된 과정이 궁금해요.
홍원표: "제가 2003년도에 이 팀을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5명으로 시작했어요. 원래 구예니(알토) 친구가 없었고 저희 3명(김영, 홍원표, 송순규)이랑 다른 2명의 친구가 더 있었어요. 한 10년 정도 흐른 후에 2명의 친구가 나가고 구예니가 들어와서 지금의 4인조 아카시아가 완성됐죠. 그 후로 다시 10년 이상 활동하고 있어요."
- 그룹명 아카시아의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홍원표: "원래는 아카시아라는 그룹 이름에 큰 의미가 없었어요. 원래 팀 이름 없이 2년 동안 연습만 했어요. 어느 날 첫 공연 제의가 들어왔는데, 팀 이름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아카펠라니까 아…아카…아카시아? 그렇게 이름이 정해졌죠. 그런데 몇 년 후에 저희 음악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옛날 생각이 난다'라면서 '이름을 잘 지었네' 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 위의 이유를 말하고 다닙니다. (웃음)"
송순규: "절묘하게 타이밍이 맞아서 네이밍이 된 케이스죠. 사람이 이름에 맞춰서 따라간다고 하잖아요? 아카시아를 추억, 회상으로 생각해 주셔서 저희 음악 색깔도 점점 추억할 수 있는 쪽으로 향하는 거 같아요."
- 아카펠라는 화합이 중요하잖아요. 아카시아의 팀워크 비결이 있을까요?
홍원표: "저랑 김영 친구는 결혼한 사이예요. 여기서는 사이가 좋아 보이는데…"
김영: "집에서는 잘 싸워요. (웃음)"
송순규: "이 부부가 그룹 팀워크에 큰 기둥이죠."
구예니: "맞아요. 말씀은 저렇게 하지만, 실제로 두 분이 소통을 정말 잘 해요. 그러다 보니 멤버끼리도 두 분을 중심으로 소통이 이뤄져요. 막내인 저에게 많은 조언도 해주고요."
송순규: "초창기 연습할 때는 서로 자기가 맞다고 그랬어요. (웃음) 다들 음악적 색깔도 뚜렷하고 발성도 달라서 많이 싸웠죠. 아카펠라에서 화음이 잘 섞이는 걸 '블렌딩'이라고 표현하는데, 저희는 각자 목소리 색을 유지하되, 실력을 갈고 닦아서 블렌딩 하기로 했어요. 멤버 중에 성악도 하고 록도 한 친구들이 있어서 목소리가 크게 들리더라도 차라리 마이크를 덜 쓰고 소리를 멀리 전달하는 걸 선택했죠. 20년이 된 지금도 아카펠라는 어렵지만, 아카시아만의 소리를 내기 위해 꾸준히 연습해요."
"이태원 참사, 구조적 모순 탓에 발생"
- 아카시아 활동 전에는 무엇을 하셨나요?
송순규: "저는 록 밴드를 했어요. 그러다가 좋은 기회로 몇 편의 뮤지컬에도 참여했고요. 학생 때는 민중가요도 했어요."
홍원표: "저도 송순규와 같이 20대 때 '조국과 청춘'이라는 노래패 그룹에서 민중가요를 했어요. 음악 활동을 하다가 김영 친구를 만나 결혼도 했죠."
김영: "저는 성악을 전공했어요. 교수님이나 가족은 제가 유학 가는 걸 당연히 생각했는데, 저는 별로 흥미가 없었어요. 음악에서 새로운 길을 찾고 싶었죠."
구예니: "저는 대중 가수들 세션으로 공연이나 방송도 하고, 녹음도 계속 했어요. 강의도 했고요."
- 아카시아가 세월호 추모제, 이태원 시민추모제 등 사회 활동에 늘 참여해요. 90년대 민중가요 활동의 연장선인가요?
홍원표: "저희보다 사회 활동에 더 적극적인 분들이 많지만, 태생적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음악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20대에 민중가요로 활동했고 그렇게 계속 음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회에 도움이 되고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섭외가 들어오면 승낙했어요. 멤버들도 당연히 어떤 조건을 바라지 않고 이런 활동에 참여하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했죠.
아카시아는 '음악적 지향'이 있어요. 음…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를 절대 단순한 사고로 보지 않아요. 시대적 권력이나 구조적인 모순에서 비롯된 사건이에요. 이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은 다른 사건이 또 발생할 거라 생각해요. 이런 상황에서 입을 닫고 있을 수는 없죠. 이런 생각이 저희 음악적 색으로, 활동으로 나왔어요. 이것이 아카시아의 '음악적 지향'이라고 봐요."
- 유튜브를 보면 음악의 스펙트럼이 넓다고 느껴져요. 다양하게 시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김영: "유튜브를 시작하기 전에는 지금보다는 덜 다양했던 거 같아요. 그러다가 유튜브를 시작한 초창기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곡을 올렸는데, 이게 생각보다 어려운 거예요. 편곡, 연습, 촬영, 녹음을 일주일 만에 해내야 하니까 부담감이 컸었죠. 그래서 하고 싶은 거,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올려보자고 하다가 지금의 다양성이 형성된 거 같아요."
홍원표: "이제 그 다양성, 예를 들면 국악, 클래식, 대중가요, 민중가요 등 다른 장르의 노래를 부르지만, 그것이 아카펠라로 표현되면 아카시아만의 블렌딩이 곧 아카시아의 장르가 된다고 생각해요."
- 유튜브에 민족적 색이 담긴 노래도 많이 올라와 있어요. 대중가요에 비하면 민중가요의 대중성은 약한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홍원표: "저희 젊을 때는 사회가 군부 독재 정치 등으로 혼란스럽고 노래의 가사 내용도 딱 선이 그어져 있는 분위기였어요. 하지만 저는 민중가요가 어떤 음악적 형태나 장르적인 특성이 아니라 내용적인 특성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현재 젊은 친구들이 즐겨 듣는 힙합과 댄스 음악 역시 내용으로 의미가 있다면 민중가요라고 생각해요. 지난 박근혜 탄핵 촛불시위에서 소녀시대 노래가 들렸는데, 계속해서 민중가요의 흐름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 아카시아의 아카펠라로 읽는 만화명작 <인생의 숙제> 공연 모습(2023.07.28) |
ⓒ 아카시아 |
한편, 아카시아의 음악 공연 중 <인생의 숙제>는 서울로 상경한 지 11년 된 유나의 일상을 담은 이야기다. 직장에서는 과다한 업무에 시달리고, 삼 년쯤 사귄 동갑내기 철민은 유나에 대한 애정보다는 집안 어르신들의 성화에 못 이겨 결혼하자고 한다. 시간에 쫓기듯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 사회. 이런 사회 속에서 아카시아는 목소리를 계속 내고자 한다.
- 백원달 작가의 <인생의 숙제>라는 공연을 최근에 하셨네요. 어떤 공연인가요?
송순규: "원래는 웹툰이었어요. 작품을 바탕으로 저희가 공연을 했어요. 지금의 2030세대들이 공감할 만한 내용들이 많아요. 결혼에 대한 고민도 담겨있고요."
- 그렇다면 특별히 2030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홍원표: "저희 세대가 정치적 불안의 시대에 살았다면, 지금의 2030세대는 그동안 쌓여온 사회 구조 문제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젊은 세대가 견디고 버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바꿀 수 있다 믿고 작은 것이라도 목소리를 내고, 문제 의식을 생각하며 살기를 바라요."
- 최근 아랍에미리트로 해외 공연을 다녀오셨어요.
송순규: "네, '2023 중동, 아프리카 세종학당 워크샵' 자리에 초청 공연으로 다녀왔어요. 한글 박물관과 오랜 인연으로 하게 된 공연이에요. 세종학당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글과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재단이죠."
- 앞으로 활동 계획은 무엇인가요?
송순규: "스토리텔링이 있는 아카시아만의 공연을 계속 창조할 예정이에요. 음악과 퍼포먼스 관련해서 따라오는 모든 것들에 늘 열린 마음으로 배울 생각이고요. 열심히 배워서 실력 향상도 꾸준히 해서 활동할 예정입니다."
스스로를 믿는 힘. 세상을 변화하는 힘은 나의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 2030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지만, 결국 아카시아 그룹에게 하고자 하는 말인 것 같다. 아카시아의 노래로 세상을 당장 바꿀 수는 없지만, 그들의 화음이 울려 퍼지는 한 바뀐 사회의 모습에 대한 긍정적 상상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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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아카시아 채널은 유튜브에서 검색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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