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한 나무로 뒤덮힌 산 사라지고... 용인의 10년 변화에 당황스럽다

용인시민신문 송미란 2023. 8. 2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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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고향으로 여기며 사는데,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부동산... 얼마나 더 바뀔까

[용인시민신문 송미란]

필자가 사는 곳은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이다. 10여 년 전 용인에서 가장 땅값이 싸고 낙후된 마을 중 하나였다.

절대 개발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며 이사 온 곳은 고즈넉한 절을 끼고 있는 5가구가 채 안 되는 작은 마을이었다. 그저 사람이 그리운 동네라 반갑게 맞아주는 이웃들 덕분에 시골 생활을 즐겁게 시작할 수 있었다.
 
 필자가 사는 용인의 고즈넉한 시골 마을
ⓒ 용인시민신문
아이들은 내 집 네 집 할 것 없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노느라 바빴다. 그 덕분에 조용했던 마을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작은 마당 한 귀퉁이에 텃밭을 만들어 직접 채소를 키우는 생산의 기쁨도 누렸다. '시골 생활은 이런 것'이라는 표본을 보낸 시간이었다.

세입자의 서러운 비애로 몇 년 살다 다른 곳으로 이사해야 했지만, 태어나 처음 시골에서 주택 생활을 하는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준 고마운 마을이었다.

시골 생활의 두 번째 마을은 건축업자가 전원주택단지로 조성한 마을이었다. 한창 작은 학교가 주목받던 시절이라 아이를 둔 가족들이 이사를 많이 오는 추세였다. 그에 발맞춰 단지 개발이 막 붐을 이루던 때였다.

이 동네에선 제법 큰 단지에 속하는 마을로 20여 가구가 넘게 사는 곳이었다. 마을 구성원 대부분이 근처 작은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초등학생 가족으로 이루어졌으며, 모두 비슷한 시기에 이사 온 신설 마을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 식사하고, 더운 여름날은 어느 집 마당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 들이키며 친목을 다졌다. 아이들은 함께 모여 자전거를 타고 등교했다. 형들이 동생들을 챙겨주고, 학교가 끝나면 동네 아이들이 마을 골목에서 모여 노는 너무나 이상적인 마을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마을 대청소를 하고, 중요안건이 있을 땐 함께 모여 회의를 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몇몇 집이 사소한 다툼으로 서로 등을 돌리는 상황이 생겼다. 그러면서 서로 맞는 가족들만 끼리끼리 모였다.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어 가자던 초반 분위기는 점차 옅어졌다. '문제가 생기면 집 팔고 이사 가면 그만이지' 라는 쉬운 마음도 자리 잡았다. 우리가 살던 마을뿐만 아니라 새롭게 조성된 전원주택단지 모습은 대부분 비슷한 과정을 거쳐 갔다.

마을 두 곳을 거치면서 일련의 과정을 겪은 전원단지는 우리 가족 스타일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오래된 마을에 정착하자고 결정하고, 본격적으로 집 지을 땅을 찾았다. 원삼면 일대 마을은 안 다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발품을 팔았다. 그렇게 긴 시간 고민 끝에 자리 잡은 게 현재 살고 있는 마을이다.

산책하며 마주치는 어르신들의 눈인사가 좋았고, 마을 어르신들이 정갈하게 가꿔놓은 길가 작은 꽃들이 좋았다.

오토바이로 길 막은 어르신, 문제 해결해 준 사람들

집을 짓겠다고 결심하고 난 뒤 마을 노인정에 찾아가 인사드렸다. 대부분이 60대 이상 70대가 주를 이루는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집을 짓는다고 하니 다들 반갑게 맞아주시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텃새에 대한 불미스러운 소식을 접하며 걱정했는데 괜한 기우였다.

그러나 막상 집을 짓기 시작하자 작은 문제가 발생했다. 공사를 위해 대형 트럭이 작은 마을 길을 다녀야 했고, 그에 불만을 품은 어느 어르신이 오토바이로 길을 막았다. "미안하다, 조심하겠다, 길이 망가지면 보수하겠다"고 말씀드려도 막무가내로 버티는 난감한 상황에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어르신들이 오셔서 길을 막고 있는 어르신한테 얼른 비켜주라며 나무라는 게 아닌가. 그렇게 마을 분들의 도움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집 짓기 전 마을 이장님과 어르신들한테 인사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이사 오니 길을 막았던 어르신이 가장 먼저 화장지를 주셨다. 얼굴도 모르는 마을 분들이 집 앞에 화장지며 세제 등 환영의 선물을 놔두고 가셨다. 이게 시골의 정인가 싶어 가슴이 뭉클했다. 아직도 그 정은 진행 중이다. 간간이 현관 앞에 쌓여있는 농작물이, 맛있는 음식을 했다며 가져가라 하시는 부녀회장님의 전화가 지금도 울린다.

함께 모여 대동제를 하고 특별한 날이 되면 다같이 식사를 한다. 마을 정원 가꾸기에 동참하고 마을을 내 집처럼 가꾼다. '이사 가면 그만이지'라는 가벼운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 진심으로 마을을 사랑하고 서로 위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변화의 바람 속에 사라진 야산 전경
ⓒ 용인시민신문
제2의 고향으로 여기며 정붙이고 사는 원삼에도 변화의 바람이 분다. 대형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 공사가 진행 중이다. 부동산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외지인들이 원삼면 주민보다 더 많아졌다.

대형 덤프트럭이 좁은 도로를 활보하며 도로가 막히는 일도 빈번히 일어난다. 10년을 살면서 주차난이라고는 경험해 본 적 없는데, 이제 면 소재지에 주차할 공간이 없다. 몇 달 전까지 울창한 나무로 채워졌던 산이 사라졌다.

공기가 달라졌다. 변화하는 마을 모습에 문득문득 화가 치솟기도 한다. 그래도 소심하게 기원해본다. 10년, 강산이 바뀌더라도 제발 시골 마을의 정만큼은 변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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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송미란 협동조합 숲과들 활동가입니다.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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