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1000만 명 시청, 대박 터뜨린 드라마의 비결

김성호 2023. 8. 25.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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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528] <닥터 후: 닥터, 미망인, 그리고 옷장>

[김성호 기자]

 
▲ 닥터 후: 닥터, 미망인, 그리고 옷장 포스터
ⓒ BBC
 
필요한 건 문짝 하나다. 런던의 평범한 아이 해리 포터가 마법의 세계에서 선택받은 영웅으로 자라나기까지 가장 중요했던 건 킹스크로스역의 9와 4분의 3 승강장이었다. 집안 곳곳을 탐험하던 아이들이 나니아의 세계에 발을 딛게 되는 것 또한 집안 구석에 놓여 있던 옷장을 통해서였다.

이러한 작품의 원전이라 할 만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주인공 소녀는 토끼를 따라 토끼굴로 들어간다. 그 굴을 통하여 일상과 동떨어진 신비한 세계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평범한 세계를 일순 뒤집어 이야기를 꿈과 환상의 세계로 이끄는 건 대개 평범하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작은 문 하나를 통해서다.

여기 한 아이가 있다.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이브 밤, 아이는 몰래 깨어나 거실의 트리 앞에 다가선다. 거기엔 내일이면 끌러질 커다란 선물이 있고 아이는 도저히 내일까지 기다릴 인내심이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이는 선물을 끄르고, 그 선물상자 안으로 들어가고야 만다. 그 선물상자가 바로 <해리 포터>의 승강장이고, <나니아 연대기>의 옷장이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토끼굴이다.
 
▲ 닥터 후: 닥터, 미망인, 그리고 옷장 스틸컷
ⓒ BBC
 
동시시청 1000만 명, 대박 터뜨린 스페셜 

<닥터 후>의 전성기라 해도 좋을 2010년대 초, BBC는 시리즈가 출발한 이래 열한 번째 닥터를 맡은 맷 스미스를 앞세워 모두 세 개의 시즌을 촬영한다. 이제껏 닥터를 맡은 다른 배우들에 비하여 경력이 짧다는 점이 우려되긴 했으나 그는 자신만의 매력을 살려 시리즈의 부흥을 이끄는 데 성공한 터다.

여섯 번째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인 2011년 겨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한 편의 스페셜 회차가 방영되니, 그 제목은 <닥터 후: 닥터, 미망인, 그리고 옷장>이 되겠다.

작품은 시청자수 집계에서 무려 1077만 명이 본 것으로 평가됐고, 시청률은 37%를 넘었을 만큼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그건 이 작품이 꿈과 환상의 세계가 등장하는 여러 동화의 핵심을 그대로 짚어내 반영한 덕분이며, 이를 SF라는 새로운 장르와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덕분이기도 하다.
  
▲ 닥터 후: 닥터, 미망인, 그리고 옷장 스틸컷
ⓒ BBC
 
<나니아 연대기>의 그럴듯한 변주

이야기는 언제나처럼 닥터(맷 스미스 분)가 낯선 시공간에 추락하며 시작된다. 우주선 타디스로부터 튕겨져 나온 닥터는 인근을 지나던 아줌마 마지(클레어 스키너 분)에게 도움을 청해 간신히 타디스를 되찾게 된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닥터는 마지와 재회한다. 마지는 2차 대전에 참전한 남편의 전사통보를 받아들고 슬픔을 누르며 아이들을 기르고 있는 상태다. 때는 마침 크리스마스 이브, 닥터는 마지의 아이들에게 줄 특별한 선물을 준비한다.

전술한 것처럼 아이는 선물이 제 앞에 도착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아침이 밝기 전 먼저 선물을 찾아 몰래 뜯기로 하는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제가 겪어본 적 없는 모험의 세계로 떨어지게 된다.

<닥터, 미망인, 그리고 옷장>이라는 제목이 노골적으로 가리키는 것처럼, 작품은 저 유명한 C. S. 루이스의 아동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를 연상시킨다. 모두 7권으로 구성된 시리즈 가운데 처음 출판된 책의 제목이 바로 <사자와 마녀와 옷장>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사자는 닥터가, 마녀는 미망인이 맡으나, 존경의 뜻을 담아 옷장은 선물이라 바꾸지 않은 듯 보인다.
 
▲ 닥터 후: 닥터, 미망인, 그리고 옷장 스틸컷
ⓒ BBC
 
어른이 아이에게 남겨줘야 할 유산

아이가 넘어간 세상은 수십세기가 더 흐른 미래의 어느 행성이다. 이 행성엔 거대하고 특별한 숲이 조성돼 있는데, 인간은 이곳의 나무들을 태워 에너지원으로 삼으려고 계획 중이다. 얼마 뒷면 숲 전체가 불타버릴 긴박한 시간, 닥터와 다른 가족들은 사라진 아이를 찾으려 동분서주한다.

닥터는 언제나처럼 위기를 극복하고, 사람들은 그로부터 상하지 않을 것을 안다. 보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이야기의 결말은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다. 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문을 열고 넘어간 세상이며, 그걸 가능케 하는 신비로운 문, 그리고 이를 가능하다 믿도록 하는 상상력이다.

작가들은 세대를 넘어 무한한 상상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아이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노력을 경주해왔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크리스마스면 산타 할아버지가 루돌프가 끄는 썰매를 타고서 착한 아이에게 가져다주는 선물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다.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는 특별한 곳으로 남겨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어른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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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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