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호박잎 쌈을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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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생활할 때 호박잎쌈은 어른이 되면서부터 먹어볼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호박잎쌈은 흔한 들꽃 같은 존재감 정도로 생각이 들긴 했지만, 서민들에게는 특별한 음식을 보태지 않아도 호박잎쌈 하나로도 허김진 배를 채우기에 충분했다.
호박잎쌈은 어쩌다 먹으면 그만한 별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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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섭 기자]
캐나다에도 호박잎이 제철을 맞아 한국 마트에 나와 있다. 호박잎을 보는 순간, 한동안 잊고 지내온 아련한 추억이 소환되어 간다. 이민사회에서의 한국마트는 유일한 추억 창고와도 같다.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낯익은 물건 중 어떤 것 하나 추억이 묻어 있지 않은 것이 없다.
▲ 아내는 호박잎쌈과 강된장을 저녁 식탁에 준비해 놓았다. |
ⓒ 김종섭 |
퇴근하고 집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여는 순간 구수한 된장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한참 시장기가 맴도는 저녁시간 탓에 밥상 앞으로 다가서는 것 이외에 아무 생각이 없다.
아내는 어제 사온 호박잎쌈과 함께 강된장을 준비해 놓았다. 한국에서 생활할 때 호박잎쌈은 어른이 되면서부터 먹어볼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다. 어렸을 때 먹었던 맛의 기억만 존재하고 있었다.
옛날 시골집 울타리를 경계로 지천에 온통 호박 넝쿨이 널려있었다. 그 시절에는 호박잎쌈은 흔한 들꽃 같은 존재감 정도로 생각이 들긴 했지만, 서민들에게는 특별한 음식을 보태지 않아도 호박잎쌈 하나로도 허김진 배를 채우기에 충분했다.
과거에는 자연에 손상이 안 갈 정도로 순리에 순응하며 자연을 지켜냈다. 그 대가로 별이 쏟아지는 밤을 가질 수 있었고, 반딧불이 있는 여름밤이라는 극치의 낭만을 즐길 수가 있었다. 또한 혼탁한 도시에 비해 농촌의 여름밤은 가을을 돌려놓은 것처럼 시원하고 청량감이 또한 있었다.
저녁식탁은 집안에서 멍석이 깔린 앞마당으로 옮겨져 갔다. 저녁 음식은 조촐한 것 같아도 풍성한 밥상이 올려졌다. 여린 작은 손으로는 호박잎쌈을 싸서 먹기에는 항상 역부족이었다. 쌈을 두 손으로 감싸 입속 가득히 밀어 넣아도 반이상은 입 밖으로 밀려났다.
호박잎쌈은 어쩌다 먹으면 그만한 별미가 없었다. 예로부터 한국 음식은 장맛이라고 했다. 강된장이 호박잎 쌈 맛을 더욱더 맛있게 치장했다. 일종의 밥도둑과 같은 맛깔스러운 여름의 진미와도 같았다.
밥상을 미루고 나면 밥상 한쪽에는 옥수수가 후식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자연의 풍요로움이 가득했던 농촌 풍경이었지만, 먹을 것이 없어 보릿고개를 겪어야 했던 부모님 세대를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었다.
지금 해외에 사는 이민자들은 고국의 음식을 먹었을 수 있는 온갖 식재료가 넘쳐난다. 세계가 하나라는 시대를 맞이한 혜택이기도 하다.
올여름은 유난히도 무더위에 가뭄까지 겹쳐 혹독한 시련을 안겨주었다. 요즘 여름의 낮과 밤의 간격이 좁혀져 가면서 조심스럽게 가을로 접어 들어서고 있다. 오늘 먹는 호박잎쌈이 아마도 올해에는 마지막 먹는 음식이 될 것 같다.
음식 하나에도 값진 추억을 들춰낼 수 있다는 것, 오늘 저녁 밥상은 나에게는 잊지 못할 최상의 밥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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