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독립의 논설집필

김삼웅 2023. 8. 2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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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 잊혀진 선각자, 묵암 이종일 평전 8]

[김삼웅 기자]

『제국신문』은 타블로이드 반절판 4면을 발행하였다. 3단 종서로 본문 활자는 12포인트, 각 면별 기사 배정을 보면 1면은 논설, 2면은 관보, 3면은 잡보, 4면은 광고로 채웠다. 초기의 타블로이드 절반 판형이 1904년 9월부터 타블로이드판으로 넓히고, 1905년 12월 1일부터 지면 배정의 혁신을 통해 1면을 전면광고, 논설 2면, 3면 관보, 4면 잡보를 실었다. 사설과 논설은 대부분 이종일이 썼다.

제국신문의 논설은 국민들에게 개화사상과 자강의식을 고취. 계몽시켜 우리 민족의 새 역사의 장을 열어보겠다는 옥파의 집념과 의지가 새겨져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종일 선생이 창간한 <제국신문>
ⓒ 묵암 이종일 선생 기념사업회
 
제국신문은 당시 계몽적인 기능면에서 국민들에게 새롭고 큰 힘을 부여했다. 논설을 통해서 국민의 진로를 계도하고 정치·국제·군사·경제·외교·사회·언론·문화·교육·종교· 여성 문제 등은 물론 정신문화 등 각 부문에 걸쳐 경종일세의 집필을 휘두르지 않은 곳이 없었고 따라서 그의 논설은 올바른 비판과 대안의 제시로 국가의 흥륭의 추진적 의견을 담당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주석 17)

『제국신문』 초기에 이종일이 쓴 정치분야 논설의 제목을 살펴본다. 「국민비판은 국정에 유리하다」(1898.8.15), 「우국충성의 그 절개를 본받자」(8. 23), 「풍전등화격인 대한의 위기」(8.25)」, 「독립권은 남이 갖다주지 않는 것」(9. 29), 「인구조사 통계는 정확성을 기해야」(10.4), 「7대신 파직은 유례없는 영단」(10.14), 「대관들의 편당싸움 근절할 때」(10.29), 「충애심 없는 군대는 신뢰 못 받는다」(1899.1.6), 「혁신기운에 충만한 우리의 형세」(1.16), 「구미(歐美)에의 관비유학생 파견에 찬의」(1.23), 「정부와 민회(民會) 대립은 큰 유감」(1.25), 「구습타파는 순리따라 점진적으로」(1.27), 「열강의 각축과 대한의 형세」(2.2).

논설 몇 편 중에서 주요 대목을 골랐다.

지금 우리나라의 형편이, 정부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고 국민은 도탄에 빠져 말이 아닌 즉, 이렇게 된 책임이 거의 권세와 지위를 가진 고관 몇 명에게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 국민들의 시비하는 소리를 듣고 정부는 깊이 깨달아야 한다.

국민이 경우없이 무조건 정부의 처사를 시비하는 것이 아니다. 요 몇 년간의 일을 살펴보더라도 국민 여론의 힘으로 여러 가지 일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처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러시아 고문관을 해고하여 재정과 군권을 회복했고 정부 계획에 반대하여 절영도를 외국의 침범으로부터 구했으며, 신문을 발간해서 국민을 각성시키고 참된 국민적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 

외국인이 정부를 공연이 비판하면 우리 정부는 역성들어서, 외국 공관들도 이 신문의 위력을 군사 몇만보다 더욱 두렵게 여기게 만들었다. 여론이 반영되어 의회원(議會院)도 곧 설치될 터인데 이런 모든 결실이 정부의 역할도 컸으나 결과적으로 국민의 힘과 여론의 소산이라고 할 것이다.(「국민비판은 국정에 유리하다」)

대한은 위치상 동양의 요충지대가 되어서 아시아를 지배하려는 여러 제국들의 관심이 끊일 날이 없다. 러시아는 대한을 손아귀에 넣어 아시아를 지배하는 발판으로 삼으려 하고 있으며, 일본은 대한을 저희 나라의 방패로 삼으려하고 있다. 이러한 대한의 운명은 영악한 사자와 사나운 매가 노리는 도마 위의 고기 신세와 흡사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부 관원들은 이들의 속셈을 모른 채 때로는 일본과 관계를 맺고, 때로는 러시아에 의지하여 자주 독립을 공고히 다져야 할 민족적 대업에 역행하고 있으며, 국민들은 도탄에 빠져 미처 나라의 위급함을 생각할 여유가 없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위급한 때를 당하여 정부 관리들은 부디 구습을 때치고 충의와 애국심을 발휘하여 나라의 독립을 지키고, 문명·부강한 나라를 건설하는데 노력해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국강병이 이루어지고 국민들이 도탄에서 벗어나 안락한 생활을 누리는 것이 좋은 줄은 알고 있으나 어떻게 해야 나라를 위급한 처지에서 구할 수 있는가. 그 방법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풍전등화격인 대한의 위기」)

지금 우리나라의 독립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해 있는데도 백성들이 걱정할 줄 모르는 것은 마치 남이 얻어준 재물을 아낄 줄 모르고 허비해버리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언제든 대한 사람이 피를 흘려 독립을 굳게 다져놓고 세계에 공표해야 진실로 대한독립이 완성된 것으로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지금껏 독립을 위하여 피 흘릴 게재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정부는 물론 시민대중들까지도 저마다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며 조금이라도 생명의 위협을 받는 곳으로는 가지 않으려고 하니 아무 일도 성취되지 않았다.

우연히 독립관이 설치된 후로 정부비판도 활발해지고 정책에 대한 반대론도 공개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대한에서 처음으로 이념과 목적을 함께한 편당이 생긴 것을 뜻한다. 정부에 팔팔한 관인이 몇 명이라도 있었다면 독립관을 절대 반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관인들은 타인의 주장을 따르지도 않을 뿐더러 반대도 않고 망신까지 당하고 벼슬마저 내놓았다가도 벼슬에 연연한 나머지 머리를 숙이고 다시 그대로 다니려고 한다.

무슨 기미를 눈치 채고 협회를 걸어 상소하고 또 없앨 궁리도 조금 하다가 얼마 후에는 엉뚱하게도 원조금을 내놓는가 하면 협회 일에 참여까지 하고 있으니 대적하여 시비할만한 위인들이 못된다. 남의 나라에서는 민권을 찾기 위해 몇십 년간 걸쳐 정부와 싸워서 성취하는 것이 보통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불과 몇 달 동안에 민권은 억압하기 어려울 만큼 성장했다. (「독립권은 남이 갖다주지 않는 것」)

주석
17> 김용호, 『옥파 이종일 연구』, 93쪽, 교학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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