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술 만들라" 박정희 특명 그후...금상 휩쓴 韓와인의 비법 [Cooking&Food]

이세라 2023. 8. 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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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와인업계의 중요한 소비시장으로 급부상한 한국

세계 5대 국제품평회 금상 수상 등
한국와인의 기세 예사롭지 않아
마주앙, 진로 레드 와인 등도 인기
올해 ‘빈엑스포 미팅스’ 서울 개최

‘빅뱅’. 2021년 한국 와인시장을 설명하는 단어로 이만한 것이 있을까. 2억 달러에 머물렀던 국내 와인 수입은 2020년 3억을 넘기고, 2021년 5억5981만 달러를 찍었다. 전년 대비 69.6%의 증가세다. 2022년은 3.8% 증가에 그쳤지만, 그럼에도 6억 달러를 목전에 둔 상태다.

굳이 숫자를 들먹이지 않아도 체감은 어렵지 않다. 대표적으로 ‘빈엑스포 미팅스(Vinexpo Meetings)’가 10월 5일~6일 서울에서 열린다. 빈이탈리(Vinitaly), 프로바인(ProWein)과 함께 세계 3대 와인박람회로 불리는 행사다. 올 10월에 열릴 ‘빈엑스포 미팅스’는 급성장한 한국시장을 위한 맞춤형 행사다. 주제는 ‘라이징 코리아(Rising Korea)’. 주최사인 비넥스포지엄의 CEO 로돌프 라메즈는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빈엑스포 미팅스의 개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한국은 세계 와인업계의 중요한 소비시장”이며 “한국처럼 빠르게 와인문화가 자리 잡은 국가는 본 적 없다”고 말이다.


화려한 향과 적당한 산미의 한국와인


이 같은 성장세는 프로바인의 ‘비즈니스 리포트 2022’를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주요 명산지인 부르고뉴와 바롤로 와인을 수입하는 하이트진로 커뮤니케이션팀 윤바예 대리는 “와인생산자와 수출업자를 대상으로 한 2023년 기대되는 와인시장 주요국가조사에서 한국은 10위 안에 여러 번 이름을 올렸다. 미국은 한국을 1위로 꼽았으며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각각 6위와 7위에 한국을 올렸다”면서 “세계적인 와인평론가 제임스 서클링의 와인 테이스팅 행사(Great Wines of The World)가 홍콩, 방콕 그리고 서울에서 열리는 걸 봐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더불어 한국와인의 기세도 예사롭지 않다. 국제와인품평회에서의 수상 사례들이 좋은 예다. 세계 5대 국제와인품평회인 ‘베를린와인트로피 2022’ 하계 테이스팅에서 한국와인 3종이 금상을 받은 적도 있다. 경북 김천 수도산와이너리의 ‘크라테 미디엄 드라이 2018’, 경북 안동 이육사와이너리에서 만든 ‘264 청포도 와인 절정 2021’, 경북 영천 오계리와이너리의 ‘오계리 아이스 와인 2020’이다.

한국와인의 강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식용포도로 만든다는 점이다. 사실 식용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곳은 거의 없다. 와인컨슈리포트 위원장이자 와인소풍의 이철형 대표는 “양조용포도가 가지는 맛과 향의 스펙트럼이 식용포도보다 훨씬 넓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양조용포도는 국내 재배가 쉽지 않다. 기후가 달라서다. 다행히 1993년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품종 ‘청수’가 등장하며 상황이 나아졌다. 식용이지만 와인용으로 가능성을 보였다. 이 대표는 “우리 품종을 썼다는 점, 화려한 향과 적당한 산미가 있다는 점이 한국와인의 장점”이라며 “기존 화이트와인과 비교했을 때 익숙한 듯 새로운 맛의 세계가 차별점”이라고 말한다.

마주앙 2종

양조용포도로 만든 한국와인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1977년 동양맥주(현 롯데칠성음료)에서 출시한 ‘마주앙’이 대표적이다. 1960년대 곡물 대신 과일로 술을 만들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졌고, 당시 기업들이 양조용포도를 들여와 포도밭을 가꾸고 와인을 양조했는데, 동양맥주 역시 국내 기술진을 모으고 독일 전문가를 초빙해 마주앙을 만들었다. 포도는 리슬링 품종을 썼다. 추위를 잘 견디며 생산력이 강한 게 특징이다. 롯데칠성음료 홍성원 대리는 “양조용포도를 재배하기 적합하지 않은 국내 환경을 고려한 선택 같다”고 말한다. 마주앙은 출시 후 천주교 미사주에 봉헌됐다. 지금도 미사주로 쓰이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와인이다. 지난해는 간송미술관과 콜라보한 마주앙 한정판을 선보이기도 했다.

해외 와이너리와 공동제작한 국내 와인도 있다. 작년 11월 하이트진로가 선보인 ‘진로 레드 와인’이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카를로 펠레그리노’ 와이너리에서 토착 품종인 ‘네로 다볼라’를 사용해 만든 프리미엄급 와인이다. 포도를 나무에서 말리듯 늦게 수확한 뒤 부드럽게 압착하는 ‘선드라이’ 방식을 사용했다. “개발에만 3년이 걸렸다”는 하이트진로의 윤바예 대리는 “우리 소비자가 합당한 가격에 최상의 와인을 접하면 좋겠다는 취지로 만든 와인”이라고 설명한다.

하이트진로가 공식 수입하는 슈퍼 프리미엄 와인.


변화하는 와인 트렌드와 소비층


한국와인의 다음 스텝은 무엇이 될까? 이철형 대표는 “양조용포도와 식용의 블렌딩”이라고 말한다. 전통적인 와인생산국은 시도하지 못할 조합이다. 지역별로 원산지 증명제도에 의한 품질 관리가 엄격해서다. 등급을 인정받으려면 정해진 품종을 정해진 지역에 심어 와인을 만들어야 한다, 반면 신대륙은 구대륙에서 볼 수 없는 블렌딩이 가능하다. 그들에겐 전통이 의미 없기 때문이다. 덕분에 오히려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

예를 들면 과거에는 완숙하지 않은, 산도가 높은 상태에서 포도를 수확했다. 음식과 궁합이 맞게 산도와 타닌을 높게 만들어 장기 숙성하는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다. 지금은 어떨까. 하이트진로 윤 대리는 “바로 마셔도 맛있는 와인, 짧은 숙성을 거쳐도 마실 수 있는 와인이 시장을 이끌 것으로 본다. 와인을 사서 10년을 숙성하는 일이 소비자에게는 부담이기 때문이다. 또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와인을 선호하는 경향도 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화이트와인을 포도껍질에 담가(침용) 발효한 ‘스킨컨택티드 와인’, 양조 과정에서 사람의 인위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 ‘내추럴 와인’ 등이 틈새시장을 파고들었다.

트리벤토 리저브 2종

가장 최근의 트렌드는 ‘친환경’이다. 이에 발맞춰 유기농, 바이오다이내믹 등 친환경 농법을 내세우는 와이너리들이 등장했다. 또 와인 라벨과 병의 디자인이 예전보다 중요해졌다. 와인을 마시고 파는 공간도 진화 중이다. 롯데마트의 보틀벙커가 좋은 예다. 잠실의 제타플렉스점은 약 400평 규모의 매장에 5000여 종의 와인을 국가별·지역별로 친절하게 분류했다. 게다가 ‘테이스팅 탭’으로 시음할 수 있는 와인만 80여 종에 달한다. 2021년 오픈 당시 오픈런이 벌어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트렌드는 소비층과도 관련이 있다. 현재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른 세대가 와인에 선입견이 없는 20~40대다. 이들은 무심코 마신 와인이 맛있으면 국가·지역·품종에 상관없이 즐긴다. 또 개성과 취향을 추구해 다양한 와인을 시도한다. 이 대표는 “와인은 역사만 8000년이다. 젊은 세대가 받아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강조한다. “30년에 걸쳐 와인생산국 1인당 연간 소비량이 1/2~1/3 정도로 감소해왔다. 이걸 대체하는 게 아시아의 신흥 부국들이다. 덕분에 전 세계 와인시장은 매년 3~5%씩 신장해 왔다. 게다가 와인은 대체가 가능한 유사 가격대의 와인이 존재하는 완전경쟁 시장이다. 틈새를 노리고 새 와인을 빚는 양조가가 매번 나오는 이유다. SNS의 발달로 홍보도 쉬워져, 새로운 와인이 나올 가능성은 앞으로도 올라갈 것으로 본다.”

이세라 쿠킹 객원기자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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