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묻지마’와 마인드 헌터

임성수 2023. 8. 25.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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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무장 장갑차가 너클을 낀 범죄자 한 명을 예방하지 못했다.

초기 멤버인 전설적 프로파일러 존 E. 더글러스는 '마인드 헌터'(Mind hunter·마음 사냥꾼)라는 책에서 "미래의 폭력을 예측할 수 있는 최고 지표는 과거 폭력(The best indicator of future violence is past violence)"이라며 "범죄자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범죄자가 말하는 것을 해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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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수 사회부 차장


중무장 장갑차가 너클을 낀 범죄자 한 명을 예방하지 못했다. 지난 17일 서울 신림동의 한 공원에서 대낮에 벌어진 강간살인사건은 너무 참혹해 현실감이 없을 정도다. 앞서 신림역에서 조선, 분당 서현역에서 최원종의 흉기 난동이 벌어지자 경찰은 권총과 테이저건을 주저 없이 사용하겠다고 했다. 다중밀집 지역엔 경찰 특공대와 장갑차까지 배치했다. 요란한 ‘특별치안활동’은 며칠 뒤 벌어진 끔찍한 사건 앞에 무력했다. 조선의 범죄 현장에서 멀지 않은 고요한 둘레길에서 강간 살인범 최윤종이 나타났다. 경찰은 당분간 산악순찰대를 투입하겠다고 했다. 공권력이 범죄보다 한발 늦게, 엉뚱한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든다.

최근 흉악범죄는 돈이나 원한, 치정이 개입한 전형적 강력범죄가 아니다. 조선 최원종 최윤종은 피해자들과 일면식도 없었다. 불특정 시민을 상대로,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동기로, 무차별적 범죄를 저질렀다. ‘묻지마 범죄’라는 통칭이 널리 쓰이는 이유다. 영국 BBC도 한국의 최근 강력범죄를 전하며 ‘묻지마’를 그대로 알파벳으로 옮긴 ‘Mudjima’로 표기했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이미 굳어진 표현이란 방증일 것이다. 하지만 ‘묻지마’는 오해를 부르기 쉬운 명명이다. 표면적 범행 동기는 ‘묻지마’지만, 동기 없는 범죄는 없기 때문이다. ‘이유가 없어 보이는 범죄’의 이유를 추적해 예방하는 것이 수사·치안 당국 역할이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1970년대 초 기존 양상과는 다른 이상잔혹범죄가 급증하자 ‘행동과학부(Behavioral Science Unit)’를 창설한다. 연쇄살인범 등의 범죄 동기, 패턴, 디테일 등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기 시작했다. 초기 멤버인 전설적 프로파일러 존 E. 더글러스는 ‘마인드 헌터’(Mind hunter·마음 사냥꾼)라는 책에서 “미래의 폭력을 예측할 수 있는 최고 지표는 과거 폭력(The best indicator of future violence is past violence)”이라며 “범죄자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범죄자가 말하는 것을 해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더글러스는 희대의 살인마 찰스 맨슨, 테드 번디 등을 인터뷰해 그들의 ‘마인드 헌터’가 됐다. “의사가 증상을 연구해서 질병을 진단하는 것처럼 가능한 많은 범죄를 연구해 범죄의 단서를 이해하려 하는 것”이라는 게 더글러스의 설명이다. 범죄자를 연구하는 것은 ‘그들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는 따위의 서사를 만들어내 죗값을 덜어주려는 것이 아니다.

묻지마 범죄자들도 ‘증상’이 있었다. 이들은 20~30대 초반의 좌절한 은둔형 외톨이였다. 조선은 “나보다 신체적·경제적 조건이 나은 또래 남성들에게 열등감을 느껴 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원종은 피해망상 등 정신질환에 시달렸지만 방치됐다. 최윤종은 배달음식 주문 외에는 외부 접촉이 거의 없었다. 이런 증상이 흉악범죄를 격발하기 전에 먼저 방아쇠를 찾아내 안전고리를 채우는 것이 근원적 대책이다. 수사와 엄벌과는 별개로, 심연 같은 범죄자의 내면을 체계적으로 연구해야 할 이유다.

경찰을 조롱하는 듯한 살인 예고와 흉기 위협은 지금도 계속된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무작위성’은 시민을 불안에 떨게 한다. 범죄자를 짓이겨버리는 형사가 주인공인 영화 ‘범죄도시’에 대한 열광, 사적 응징을 시도하는 ‘유튜버 자경단’의 등장은 시민 공포를 반영한 징후다. 현실에선 한 명의 슈퍼히어로가 범죄를 다 막을 수 없고, 사적 제재가 공권력의 대안이 될 수도 없다. 범죄가 변하면 치안도 변해야 한다. 장갑차와 산악순찰대만으로는 국민을 안심시킬 수 없다는 건 아마 경찰도 알 것이다.

임성수 사회부 차장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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