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할머니가 되어서도 지팡이 짚고 만나자

2023. 8. 25.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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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마음 맞는 친구들과 독서 모임을 한다.

다소 무시무시한 '망나니'라는 뜻과 달리 잠망경 회원들은 대개 사려 깊고 차분하다.

첫 모임은 거의 10년 전에 시작했다가 흐지부지됐는데 재작년부터 모임을 재개해 적어도 두 달에 한 번은 만나는 사이가 됐다.

사진을 지우지 않고 간직한 친구의 마음이 은은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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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한 달에 한 번, 마음 맞는 친구들과 독서 모임을 한다. ‘잠망경’이라는 독서 모임인데, 뜻풀이하자면 ‘잠재적 망나니들의 경(經) 읽기’쯤 되겠다. 다소 무시무시한 ‘망나니’라는 뜻과 달리 잠망경 회원들은 대개 사려 깊고 차분하다. ‘망나니’는 운을 맞추려고 재미로 붙인 것이다. 첫 모임은 거의 10년 전에 시작했다가 흐지부지됐는데 재작년부터 모임을 재개해 적어도 두 달에 한 번은 만나는 사이가 됐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인생을 살아왔다. 책을 여러 권 출간한 친구도 있고, 출산한 친구도 있으며, 퇴사하고 독립 출판사를 차린 친구도 있다.

며칠 전 친구가 단체 모임방에 올린 사진이 화제가 됐다. 마치 다시 결성될 것을 예견이라도 하듯이 오래전에 다섯 명이 모여 찍은 사진이었다. 날짜는 2016년 10월. 맛집을 찾는데 일가견이 있는 친구의 단골집에서 우리는 맥주잔을 들고 쑥스럽게 웃고 있었다. 앳된 얼굴에 표정이 생생했다. 사진을 지우지 않고 간직한 친구의 마음이 은은하게 느껴졌다. 그때의 우리는 지금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거기서 우리는 얼마나 멀리 왔는지.

사진을 보는 순간 다섯 명을 이어준 인연의 끈이 눈앞에 바짝 당겨지는 것만 같았다. 아득한 시간을 살아온 친구들의 모습이 장하고 애틋해서 가슴이 뻐근했다. 옛날 사진이 뭐라고, 그리 고양되느냐고 시큰둥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뜻밖의 과거를 마주하는 기분이란, 뭐랄까. 한 시절이 끝나고, 천천히 휘장이 내려오는 무대를 보는 것처럼 쓸쓸하고 그립다. 되돌아갈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요원했던 시간을 지나 다시 모여 책을 읽고 감상을 진솔하게 나누는 친구가 있다는 건 얼마나 복된 일인가. 이제 ‘잠망경 파이브’가 된 친구들의 사진을 본다. 이 사랑스러운 모임을 오래 이어 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지팡이를 짚고 만나자.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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