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도서관 강연료 토막 사건

2023. 8. 25.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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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체력(‘걷기의 말들’ 작가·생활체육인)
도서관서 부르면 전국 어디든
가는데 최근 강연료 깎여 난감
문화계 예산 삭감이 현실로?

편집자 시절,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한 해에 몇 번 유명 인사를 초청해 강연을 듣곤 했다. 한 번은 현직 광고인이자 ‘책은 도끼다’를 쓴 박웅현씨를 모신 적이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답게 일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흥미로운 얘기들을 전해줬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당부가 가장 인상 깊었다. 일하랴 글 쓰랴 정신없이 바쁘지만 출판사에서 의뢰한 자리라 억지로 시간을 냈다고 했다.

“여러분이, 책을 만드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요지인즉슨 신문사나 방송국, 출판사 등엔 가급적이면 꼭 가려고 애쓴단다. 편집자, 기자, PD처럼 미디어에 종사하는 사람들 생각이 깨어야 세상이 바뀌는 데 영향을 끼친다는 말이었다. 시답지 않게 느껴지던 내 업무가 갑자기 한없이 고양되는 느낌이었다. ‘잘 기억했다가 언젠가 나도 꼭 써먹어야지’ 하는 메모를 별표와 함께 다이어리 귀퉁이에 남겨 뒀다.

10여년 후 뜻밖에 작가가 되면서 그 ‘언젠가’가 도래했다. 주로 도서관이나 책방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 이 에피소드를 곧잘 써먹곤 한다. 책을 만드는 사람만큼이나 책을 읽는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 역시 소중하다는 의미로 강연 서두를 시작한다. 같은 이유로 아무리 바쁘고 또는 길이 멀어도 도서관(혹은 책방)에서 부르는 자리면 전국 어디든 가겠다는 의지를 실천하고 있다. 책을 만들고 팔아본 편집자 출신 작가로서 독자들에게 특별히 고마운 마음을 표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덕분에 남쪽 끝자락 통영이나 고성의 도서관은 물론 동쪽 끝으로 울진 도서관까지 가봤다. 하나하나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2018년부터 동서남북을 가로지르며 50여 군데는 너끈히 돌아다니지 않았을까. 도서관을 옮긴 사서들이 다시 불러 주는 경우도 있고, 다른 도서관 포스터를 보고 연락을 주기도 한다. 각종 SNS를 활발히 이용하는 편이라 나와 접촉하기 수월하다. 먼 지역이든 상관 않고 도서관이면 쉽게 응하는 작가라는 소문이 퍼졌는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기차를 타고 여행 겸 가니 얼마나 좋으냐고 설레발을 친다. 하지만 먼 지역까지 내려가는 일이 늘 수월하지만은 않다. 특히 지난 코로나 기간에는 밥때를 놓치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기차나 버스 안에서 간단히 먹으면 되는데 그러질 못했다. 밥 먹을 여유가 촉박해 곧장 도서관으로 가야만 했다. 그렇다고 차를 운전하거나 전날 숙박까지 하기에는 시간과 비용을 많이 잡아먹었다.

그럼에도 공짜로 해달라는 요청이 아니므로 가계에 보탬이 되고, 내 책을 읽는 독자가 늘어나는 일이라 기쁜 마음으로 수락해 왔다. 그런데 올해 들어 처음으로 도저히 가지 못하겠다고 거절하는 일들이 자꾸만 생기고 있다. 톡 까놓고 얘기하면 강연료가 적어서다. 어떻게 된 일인지 올 하반기 들어서 의뢰가 들어오는 도서관마다 강연료가 다 토막이 났다. 교통비가 포함된 일종의 인건비인데, 치솟은 물가지수를 감안한다면 늘어나야 정상 아닌가.

유독 도서관만 가리지 않고 다 가려는 내가 만만해서 일어난 처사라면 감수하겠다. 그러나 강사나 작가에게 지불해야 할 예산이 도서관마다 전반적으로 줄어든 거라면 문제 아닌가. 가뜩이나 책도 팔리지 않는 시대에, 코로나 기간에는 대면 강의도 못했던 작가들이다. 실은 지금도 넉넉하지 않은 편인데 강연료가 더 하향 조정된다면 나보다 젊거나 생계로 일하는 작가들에게 돌아갈 피해가 심각하다. 내가 어쩔 수 없이 강연을 거절한 이유이기도 하다.

돈 얘기를 공개적으로 운운하는 것이 아직도 어색해 직접 묻지는 못했다. 하필이면 내게 강연을 의뢰한 도서관마다 비슷한 사정이 생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두 군데가 아니어서 오랫동안 도서관을 다니며 활동해온 내가 살갗으로 느껴질 정도다. 소문으로만 듣던 문화예술계 예산 삭감이 현실로 드러나는 중인가. ‘소중한’ 사람들에게 돌아갈 ‘하찮은’ 돈들까지, ‘어딘가’ 밑 빠진 독으로 줄줄 새고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마녀체력(‘걷기의 말들’ 작가·생활체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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