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의 ‘무소유길’…그 길도 때론 무서울 수 있다 [문소영의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며칠 전 환한 대낮에 서울 신림동 공원 둘레길에서 방학 중에 출근하던 여교사가 성폭행 살해를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에 앞서 신림역 칼부림 사건도 있었다. 한국 사회가 큰 충격에 빠졌다.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끔찍한 일이기 때문이다.
크게 보면 어떤 비극도 ‘남의 일’이 아니다. 영국 시인 존 던(1572~1631)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평소 부조리한 사건과 선을 긋고는 ‘나는 괜찮겠지’라고 믿으려 하는 심리가 있다. 자신과 가족·친구도 희생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밤늦게 다니지 말았어야지’ ‘좀 더 조심했어야지’ 하는 식으로 피해자를 탓하기도 한다. 하지만 신림역 칼부림이나 둘레길 범죄처럼 ‘묻지마 범죄’ 앞에선 패닉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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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묻지마’ 범죄로 위험사회 실감
바스락 소리에도 놀랄 수 있어
사람·조건에 따라 다른 안전감
타인에 대한 공감·배려 키워야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신림동 둘레길 사건을 들었을 때다. ‘무소유길’에서 난데없이 불안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 길은 전남 순천 송광사 입구에서 불일암으로 가는 고즈넉한 산길인데, 불일암에 은거했던 법정 스님(1932~2010)의 수필에서 이름을 따 왔다. 길이 험하지 않고 갖은 나무 사이로 햇빛이 잔잔하게 비쳐 명상하며 걷기에 좋다. 무소유길이라는 이름이 참으로 어울린다. 몇 년 전 그곳을 방문했을 때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새기며 찬찬히 길을 걸었다.
그러다 길 중간에서 어떤 부스럭 소리를 들었다. 그 순간 차분한 마음은 흩어지고 극심한 불안이 몰려왔다. 홀로 산행하던 여성이 범죄의 표적이 됐던 예전 사건들이 떠오르면서 말이다. 그와 동시에 평화의 무소유길을 걸으면서도 이런 흉한 것에 마음을 뺏기는 상황에 분노가 치밀었다. 결국 무소유 명상에서 한창 벗어난 폭풍 번뇌에 빠지게 되었고, 폭풍 스피드로 암자를 향해 뛰어 올라가고 말았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헐떡거리며 당도한 암자 앞 대나무숲의 맑은 바람과 숲길 끝 환한 햇빛이 들끓던 마음을 씻어주었다. 하지만 가장 마음을 가라앉혀준 것은 암자에 미리 와 있던 방문객들의 평범한 목소리였다.
그 후로도 무소유길과 불일암은 종종 생각났다. 대나무숲 터널 너머로 환한 빛이 반기던 풍경의 강렬함뿐만 아니라 당시의 번거롭던 감정이 떠올랐다. “불안 없이 그 길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명상에 잠길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사람들은, 예를 들어 건장한 남성들은, 나 같은 사람들의 고충과 상대적 박탈감을 과연 알 것인가”하는 탄식도 밀려왔다.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질문도 있었다. “그렇다면 너는 네가 가진 조건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가질 사람들의 마음은 알고 있는가.”
대학 시절 친구가 “밤길에 달을 쳐다보며 여유롭게 걸을 수도 없다”고 한탄했을 때, 치안이 좋은 동네에 살고 있던 나는 친구가 “지나치게 걱정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친구는 그때 달동네를 돌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성별·신체에 따라 안전에 대한 체감이 다르듯 경제적 조건도 마음에 큰 영향을 미친다.
더욱이 ‘안전한 길’은 단순히 범죄의 문제만이 아니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이 길을 다닐 때 겪는 위험과 고충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이렇듯 각자의 조건에 따라 다른 안전 체감도와 그에 대한 이해 부족은 종종 사회적 갈등을 낳기도 한다.
지난달 신림동 칼부림 범죄 직후에 남성 소비자의 호신용품 검색이 급증했다는 뉴스가 잇따랐다. 그간 ‘묻지마’ 범죄들에서 상대적 약자인 여성이나 노인이 피해자가 됐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건장한 2030 남성들이 피해자가 됐기에, 그동안 신변 위협을 실감하지 못했던 남성들 중심으로 호신용품 수요가 급증했다.
그러자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뜬금없이 ‘이제 전효성의 심정을 알겠나?’ ‘전효성에게 달리던 악플 싹 줄었네?’ 등의 글이 올라오며 넷플릭스 ‘셀러브리티’의 여배우 전효성이 소환되었다. 그가 2021년 여성가족부 캠페인에 출연해서 ‘전효성이 꿈꾸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말하며 “어두워지면 집에 들어갈 때마다 항상 ‘내가 오늘도 안전하게 살아서 잘 들어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한다”고 말했던 게 꼬투리 잡힌 사건이었다.
일부 남성들이 ‘치안이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에서 유난 떤다’면서 2년 동안 끈질기게 배우의 소셜미디어에 악플을 달았다. “아직도 살아 계시네요. 위험한 대한민국에서 운도 좋으십니다” “밤이 무서우셨을 텐데 촬영이랑 퇴근은 괜찮으셨나요” 등등의 비아냥이었다.
배우 전효성 ‘안전 캠페인’ 논란
신림역 칼부림 사건 이후 남성 호신용품 검색 기사가 나오자 일각에서 전효성 배우의 사례를 꺼내 들며 “아, 이제 당신들도 집에 살아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되는 거냐?”며 남성들을 겨냥한 글들이 잇따른 것이다.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안전 체감도가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한 이해가 없는 조롱과 혐오가 다시 조롱과 혐오를 낳은 악순환의 상황이었다.
이러한 악순환은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안전한 사회, 편안한 일상을 위한 제도 확충과 개선이 필수적이다. 경찰력 강화 등 이른바 치안 인프라 확보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다. 다른 이의 불안과 불편에 ‘과민하다’ ‘까탈 부린다’ 식으로 깎아내릴 일이 아니다. 내가 불안하고 두려운 것처럼 타인에게도 나와 다른 불안과 고충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나와 같은 사람’이란 공감이 사회 안전시설의 확충의 출발점이다.
존 던의 시는 이렇게 끝맺는다.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내가 인류에 포함되어 있기에.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해서 울리는 것이기에.’
문소영 중앙SUNDAY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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