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의 마켓 나우] EU발 규제, 위기인가 기회인가
규제로 존재감 높이는 EU
지난해 국내 철강사는 60억 달러어치를 EU에 수출했는데, 탄소세 부과로 대(對) EU 수출이 20% 정도 감소할 것이라는 추정도 나왔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연구기관인 ‘카네기 유럽’이 최근 내놓은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탄소세 부과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10개국에 들었다.
EU는 2050년까지 세계 최초로 탄소중립(넷제로) 대륙을 만들겠다는 야심만만한 ‘그린딜’ 계획을 실행해 왔다. 2022년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 공급이 거의 중단되면서 그린딜은 이제 EU 27개 회원국의 절체절명 과제가 됐다. EU의 그린딜 발표 이후 미국이나 중국, 한국도 유사한 넷제로 계획을 공표했다. 이처럼 그린딜 달성 방안의 하나로 탄소세는 이제 글로벌 규범이 됐다. 1990년대 다자무역 협상(라운드)에서 환경과 노동이 새로운 흐름이 된 것처럼 말이다.
학자들은 글로벌 어젠다를 만들고 확산시키는 EU를 규제 강대국 혹은 규범적 권력으로 부른다. EU는 미·중처럼 군사대국도 아니고, 경제력도 G2에 이어 세 번째다. 그렇기에 국제 정치경제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정체성을 각인하려면 이런 규범 제정 능력이 EU에게 꼭 필요하다.
최근 급성장 중인 인공지능(AI) 규제도 마찬가지다. 두 달 전 유럽의회(EP)는 세계 최초의 포괄적인 AI 규제법 초안을 마련했다. AI가 제기하는 리스크를 ‘용인할 수 없는 수준’ ‘고위험 수준’ 등으로 분류하고 규제하는 게 핵심이다. 입법기구인 유럽의회와 회원국 장관들이 모이는 각료이사회에서 최종 법안을 협상 중이다.
규제 강대국 EU의 이런 움직임은 국내 기업에는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 기후위기 대응은 이제 세계적 추세다.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기업에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 터이고, 그렇지 못한 기업에는 리스크가 될 것이다.
워싱턴DC의 ‘K 스트리트’가 로비스트들의 집결지이듯이 EU 기구가 몰린 벨기에 브뤼셀도 로비의 총본산이다. 워싱턴DC뿐만 아니라 브뤼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계속될 EU의 신 규제에 뒷북치고서 후회하진 말자.
안병억 대구대학교 교수(국제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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