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물안개 위 1096m 벼랑길, 순창가면 꼭 간다
특산물 고추장은 알아도, 그윽한 섬진강과 우람한 산세가 조화를 이루는 풍경은 미처 알지 못하는 이가 많다. 전북 순창에 관한 이야기다. 최근 순창에 전국구 명물이 생겼다. 섬진강을 굽어보는 용궐산(645m) 암벽에 조성한 아슬아슬한 벼랑길, 이른바 ‘용궐산 하늘길’이다.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10만 명 넘게 다녀간 신흥 명소인데, 지난달 코스를 두 배 넘겨 연장했다.
암벽 거슬러 오르는 용처럼
순창 읍내를 빠져나와 섬진강변 북쪽으로 15㎞가량을 달리다 보면, 송곳처럼 우뚝 솟은 산 하나가 눈앞에 나타난다. 용의 전설이 내려온다는 용궐산(龍闕山)이다. 산 아래 거느린 고을의 이름도 내룡마을(어치리)이다. 사실 용궐산은 순창에서도 크게 대접받던 산이 아니었다. “워낙 가파르고 험한 바위산이어서 동네 사람도 맘 편히 오르지 못했다”고 양갑영 내룡마을 이장은 설명했다.
하늘길을 조성한 2020년 이후 용궐산은 지역 스타로 거듭났다. 코로나 여파에도 줄 서서 산을 오르는 풍경이 흔했단다. 순창군 산림공원과 정영호 팀장은 “순창군 인구가 2만7000여 명에 불과한데, 작년 3월 정식 개장한 이후 1년 만에 15만 명 이상이 다녀갔다”고 말했다.
용궐산 하늘길은 벼랑에 선반 형태로 길을 이은 ‘잔도(棧道)’다. 길을 내는 건 당연히 쉽지 않았다. 헬기로 자재를 나르고, 중장비로 산길을 다진 다음, 용여암(龍女岩)이란 가파른 암벽에 철심을 박고 나무 데크를 깔았다. 원래는 534m에 불과했으나, 최근 562m를 더 연장해 지난달 1096m 길이의 잔도가 완성됐다.
용궐산에 올랐다. 들목인 ‘용궐산 치유의숲’ 매표소에서 30여 분 산길을 오르자, 하늘길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1.5m 폭의 벼랑길이 정상을 향해 지그재그로 뻗어 올라간 모양이 영락없이 용틀임하는 용이었다.
물안개 위의 산책
하늘길이 놓인 용여암은 나무가 거의 없는 암벽이었다. 아직은 해가 내리쬐는 기운이 강해, 땀이 줄줄 쏟아졌다. 하나 불평하기엔 장점이 워낙 컸다. 쭉 뻗은 하늘길과 섬진강의 거칠 것 없는 풍경이 걷는 내내 시야에 들어왔다.
산 아래서 올려다본 하늘길은 아찔했지만, 벼랑에 올라서 굽어본 순창은 아늑했다. 유유히 흘러가는 섬진강 물줄기도, 강을 끼고 옹기종기 모인 마을의 풍경도 고왔다. 운이 좋았다. 마침 물안개까지 어우러져 분위기가 더 근사했다. 물안개는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증거다. 정영호 팀장이 “요즘 일교차가 커서인지 물안개가 자주 핀다”고 일러줬다.
용궐산 인근 채계산(342m)에도 신흥 명물로 떠오른 출렁다리가 있었다. 최대 높이 90m 길이 270m의 현수교로, 2020년 3월 개장해 벌써 50만 명 이상이 다녀갔단다. 전국에 흔하디흔한 것이 출렁다리라지만, 섬진강과 너른 들판을 내다보는 탁 트인 풍경은 흠잡기가 쉽지 않았다.
채계산 출렁다리는 무료지만, 용궐산 하늘길에는 입장료가 있다. 4000원을 내니 2000원짜리 ‘순창사랑상품권’이 돌아왔다. 지역 내 음식점이나 카페, 농산물 장터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이다.
산행을 했으니, 음식이 빠질 수 없었다. 산행 후 허기를 채우기에는 순대 골목으로 이름난 순창시장이 딱이었다. 대를 이어오는 한 순댓집에서 꽉 조였던 신발 끈을 풀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순대국밥을 먹고 나니, 더위가 한결 가신 것 같았다.
순창=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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