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의 3일
단 사흘의 뉴욕 여행이란, 긴 비행시간에 비해 너무 짧다고 모두 말한다. 그러나 서울에서 잃어버린 일상의 낭만과 기쁨을 찾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뉴욕은 나만의 속도로 걸을 수 있는 ‘지극히 사적인 도시’니까. 팬데믹 이후 새로운 스폿이 고개를 내밀고, 기존 랜드마크는 여전한 위용을 자랑하지만, 이번 뉴욕 여행에서 새롭게 포착하고 싶었던 건 변화한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바삐 움직이기 위해 두 가지 컨디션 조율이 필요했다. 불필요한 체력 소비를 삼갈 것, 이동 거리를 최소화할 것. 내 선택은 하이브리드 항공사 에어프레미아의 프리미엄 이코노미석이다. 비즈니스 석은 부담스럽고, 일반석으로 14시간의 비행을 견디기 힘들 때 훌륭한 타협점이다. 단 10인치 공간으로도, 3일의 컨디션을 좌우할 수 있달까.
곳곳에서 사람을 관찰했다. 뉴요커들이 가장 행복해 보인 곳은 여전히 도시 전역에 널린 아트 플레이스들이다. MoMA 분관이자 도심에서 퇴락한 지역을 개조해 만든 MoMA PS1은 ‘기존 미술관이 현대미술에 제대로 된 전시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설립 이념이자 메시지대로, 여전히 다양한 작가와 관람자를 포용했다. 빗자루를 가슴에 품고, 빵 덩어리를 머리에 끼고 ‘셀카의 미적 개념’을 뒤집는 여성 작가 리우 수시라자(Iiu Susiraja)는 물론 이민자와 유색 인종, 여성이라는 특성을 한데 품은 중동 출신 여성 공동체 말리카(Malikah)의 사진과 관람자 사이에선 침묵의 담론이 꽃피는 듯했다. 1930년대에 음침하고 흉물스럽다며, 도시 발전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낡아서 쓸모 없는 고가철로를 공중정원으로 재탄생시킨 하이 라인 파크는 전보다 더 많은 이들로 붐볐다.
가뭄에 강한 식물을 일부러 식재하고, 식물에 따라 급수를 조절하고, 모종삽마저 탄소 발생을 줄이는 지속 가능한 소재로 꾸려진 정원에서 호흡하는 사람들은 이 도시를 진정 사랑하는 듯했다. 길 양 옆으로 보이는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구경하는 재미는 물론, 매달 아이들과 예술, 디자인, 자연을 배우는 프로그램을 꾸려가는 사람들의 에너지는 그 자체로 아트였다.
그렇게 도시와 함께 걷다가 길 끝에 다다른 곳은 휘트니 뮤지엄. 살아생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도시는 뉴욕”이라던 에드워드 호퍼의 도시에서, 에드워드 호퍼가 포착한 빛바랜 20세기 뉴욕 풍경을 음미하다, 탁 트인 뮤지엄 루프톱에서 와인 한 잔과 함께 2023년의 뉴욕을 관망하는 낭만은, 단 10분만 즐겨도 충분했다. 뮤지엄 근처 맨해튼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른 물 위의 공원, 리틀 아일랜드는 그 정점이다. 지난 2013년 하리케인으로 부서진 선착장 ‘Pier 54’를 복원해 지난해 완공한 인공 섬. 이곳에서 35종의 나무와 65종의 관목, 270종의 풀과 교감하는 미래의 뉴요커들은 허드슨 강이 내려다보이는 ‘오픈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읽으며 감흥을 더 생생하게 만끽하는 듯했다.
팬데믹 이후 더욱 강렬해진 뉴욕의 얼굴.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들을 더 챙기고, 영영 잃어버린 줄 알았던 사소한 일상을 더 열정적으로 갈구하게 된 도시. 그 소소한 열정의 틈바구니에서 나 또한 가장 내밀하고 기쁘게 호흡할 수 있었다. 뉴욕에서나, 서울에서나 그 어디든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새로워진 뉴욕은 이 뻔하지만 어려운 문장을 실현시키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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