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컷칼럼] 정진석 징역 6개월의 실체는?
대한민국 법정이 혼란스럽다. 방청석에서 배우자가 피고인 남편(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을 향해 “정신 똑바로 차려라”고 훈계를 하고, 재판 중 변호사가 사임하고 퇴장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신병처리를 지연하려는 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마피아식 사법 방해”라고 맹비난했지만 법원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 판결이 도마 위에 올랐다. 박병곤 서울중앙지법 판사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인 권양숙 여사에 대한 허위 사실을 페이스북에 올려 명예훼손한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에 대해 징역 6개월을 선고하자 비판이 쏟아졌다. 검찰이 벌금 500만원 약식명령을 청구했음에도 판사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 반영된 과한 형량이라는 주장이다. 일부 시민단체는 박 판사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며 국가공무원법 위반 및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형량만으로만 보면 박 판사의 판결은 양형기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정식재판하기로 결정한 것도 그가 아닌 전임 재판부다.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의한 명예훼손의 경우 양형위원회가 제시한 기본 형량은 징역 6개월∼1년 4개월이다. 다만 진지한 반성, 피해의 회복, 피해자의 선처 요구 등 감경 요소가 반영된다면 그보다 형량을 낮출 수 있게 돼 있다. 판결문상 이런 내용은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피해자 측이 엄벌을 주장한 측면이 커 보인다.
징역 6개월 선고 이유는 37페이지에 걸쳐 조목조목 기술됐다. 박 판사는 “부부싸움 끝에 권씨는 가출하고 그날 밤 혼자 남은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라는 정 의원 페이스북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근거로 사저 폐쇄회로(CC)TV 영상과 경호처 소속 경호원, 경찰서 조사 결과, 권 여사의 진술 등을 제시했다. 정 의원이 게시글의 근거를 제대로 대지 못한 점까지 더해 부부싸움과 권 여사의 가출을 거짓 사실로 결론 내렸다.
여기에 글이 올려진 2017년 9월 당시 이미 서거한 노 전 대통령과 권 여사를 완전한 사적 인물로 간주하고, 글의 내용도 공적 관심사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공적 인물도 아닌 사람들의 개인사적인 일에 대한 거짓 내용을 게시했으니 확실한 명예훼손이 성립한다. 잘 맞춰진 논리다.
■
「 500만원 약식명령 청구에 실형
판사 정치성향, 판결 영향 논란
과도한 비판인지 대법원 답해야
」
곧 박 판사에 대한 ‘신상털기’가 시작됐다. 이를 예상이라도 한 듯 박 판사가 법조인들의 신상명세가 기록된 한국법조인대관 등재 정보 삭제를 요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또 올 3월 정 의원 사건 재판부를 맡은 이후 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글을 지운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그 이전 글들은 정치적 판결을 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됐다. 현 여권 정치세력에 대한 반감, 법조계의 좌경화를 꾀한다는 학창 시절 글은 그렇다 치더라도 판사 임용 이후 올린 정치적 성향의 글이 문제가 됐다. ‘승패는 언제나 있을 수 있다. 피를 흘릴지언정 눈물은 흘리지 않는다’(2021년 4월 서울시장 선거 후)나 ‘이틀 정도 소주 한잔하고 울분을 터뜨리고 절망도 하고 슬퍼도 했다가 사흘째부터는 일어나야 한다’(지난해 3월 대선 후)와 같은 내용이다.
형량의 경중보다 크게 아쉬운 건 이런 글을 올렸으면서도 정 의원 재판을 진행한 박 판사의 처신이다.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로서 중립적인 판결을 내리기 어려웠다면 박 판사 스스로 재판을 회피했어야 한다”(전주혜 국민의힘 원내대변인)는 식의 비판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형사소송법(제24조)은 재판의 불공정 우려가 있다고 판단할 때 재판관이 스스로 재판을 맡지 않는 회피 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이를 박 판사가 몰랐을까.
박 판사의 판결이 정치적일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자 서울중앙지법은 반박했다. “SNS 활동만으로 법관의 정치적인 성향을 단정 짓는 것도 매우 위험하다”며 “헌법이 보장하는 사법권 독립이나 재판 절차에 대한 국민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다”고 했다.
논란이 커지자 대법원이 나섰다. 박 판사가 실제 게시글을 작성한 것이 맞는지, 어떤 이유인지를 따져보겠다고 한다. 법관윤리강령은 법관의 선거운동 등 정치적 중립성을 해치는 활동을 금하고 있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법관의 SNS 사용 시) 공정한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를 야기할 수 있는 외관을 만들지 않도록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이번 논란이 판사의 정치적 성향을 꼬투리 잡아 사법권 독립이나 국민 신뢰를 훼손한 위험한 일인지 대법원이 확실히 답해야 한다.
글=문병주 논설위원 그림=윤지수 인턴기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범 내려온다' 뛰어 넘었다...'5억뷰' 이정재 이 영상, 어땠길래 | 중앙일보
- 거긴 ‘죽음의 약국’이었다…해열제 대란 뒤 인도의 실체 | 중앙일보
- [단독] 조선일보에 "조민 삽화 자료 내라"…조국 손 들어준 이균용 | 중앙일보
- [단독] "대통령실 하자 우려"…공사비 모자라 경호처 자체설계 | 중앙일보
- "우리 어머니가 아닌데…" 국립대병원 장례식장 황당 실수 | 중앙일보
- 70대 노인 쓰러져 비명…9호선 급행 '퇴근길 탈출' 무슨 일 | 중앙일보
- 3800억 금광도 갖고 있다…이런 바그너 그룹, 푸틴 정말 버릴까 | 중앙일보
- [단독] "KBS 무보직 억대 연봉 1666명"…남영진 해임 사유 셋 | 중앙일보
- "무서워요" 디스크에 간염까지…길어진 출근길, 몸 망가진다 [출퇴근지옥④] | 중앙일보
- "과일 술 만들라" 박정희 특명 그후...금상 휩쓴 韓와인의 비법 [Cooking&Food] | 중앙일보